마음을 부르는 발자국
토끼의 마음이 사라지고 있는 건 단순한 아픔이 아니라—누군가 이 아이의 마음을 ‘부르고’ 있다는 신호라는 걸 깨닫는 순간, 제 손끝이 서늘하게 식었어요. 품 안의 아기 토끼는 작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떨고 있었어요. 은빛 털은 새벽빛처럼 희미하고, 귀 끝에 묶인 작은 리본은 아주 약하게 흔들렸어요. 손바닥 위에 있는 듯 없는 듯한 체온은 무언가가 이 아이를 계속 끌어당기고 있다는 증거였어요. 저는 토끼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더 꼭 안았어요.
“토끼야… 네 마음을 부른 게 누구였지?” 제가 속삭이듯 묻자, 토끼는 두 귀를 살짝 접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어요. 귀가 떨렸다 멈추기를 반복했고, 작은 숨이 가슴 안에서 끊어질 듯 흔들렸어요. 그러다가, 아이는 조그마한 소리로 말했어요.
“… 그림자처럼 생긴 아이였어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말랑숲에서는 몸의 색은 변해도 ‘그림자만 남는 동물’은 없어요. 그런 존재는 오래된 전설 속에서만 등장했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 색을 잃고, 그림자만 남았다는 이야기. 모두 잠시 무서워하다 잊어버리는 옛날이야기였죠. 그런데 지금—토끼는 그 존재를 ‘봤다’고 했어요.
“어떤 모습이었어?” 저는 최대한 부드럽게 물었어요.
토끼는 귀의 리본을 떨며 작게 숨을 삼켰어요.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근데 그 아이가 가까이 올수록… 바닥에… 발자국처럼 보이는 어두운 흔적이 생겼어요. 하지만—발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토끼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얇았어요.
“그리고… 제가 움직이면, 그 그림자도 따라왔어요.”
루루가 숨을 삼켜 작은 소리도 내지 못했고, 쿠쿠는 제 앞치마를 꼭 붙들었어요. 저도 말없이 토끼의 등을 쓰다듬었어요. 작은 털 아래서 떨리는 심장이 손끝으로 전해졌어요.
“그림자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제가 조심스레 물었을 때, 토끼는 고개를 들어 저를 봤어요. 커다란 눈동자는 눈물에 젖어 수채화처럼 번졌어요.
“힘들면… 어두운 곳으로 오라고 했어요…”
토끼의 귀가 파르르 흔들렸어요.
“밝은 데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고… 거긴 더는 필요한 곳이 아니라고…”
저는 바로 아이를 안았어요. “안 돼. 다시는 가지 마. 어둠은 네 마음을 잡아먹어.” 제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단단히 말했어요.
토끼는 제 품에서 몸을 숨기며 말했어요. “근데… 그 아이가… 울었어요.”
“울었다고?”
“네… 저처럼… 혼자서… 소리도 없이…”
그 말은 제 마음 한가운데 날카롭게 박혔어요. 울 수 있다는 건 완전히 사라진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마음의 잔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는 신호. 그렇다면 그 그림자는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누군가가 여전히 살아서, 사라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존재일지도 몰랐어요.
그 순간, 바닥에서 작은 조각이 짤랑— 울렸어요.
토끼에게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지금 제가 쥐고 있던 조각도 아닌—새로운 조각.
색은 은빛과 어둠의 중간. 마치 ‘빛이 되려다 실패한 어둠’ 같은 색. 조각을 손에 올리자, 조각 한가운데에 아주 희미한 그림자처럼 금이 번졌어요.
루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어요. “미미 선생님… 이건 누구의 마음이에요…?”
저는 조각을 바라보며 느꼈어요. 너무 차갑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고—희미한 울음이 그 금 속에서 잔잔히 진동하고 있었어요. 마치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나도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
그때, 문이 톡— 하고 두드려졌어요.
이번엔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의 문에 귀를 대고 속삭이듯 울리는 소리였어요. 리듬도 없고, 힘도 없고, 마치 손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두드린 것처럼 불규칙했어요. 문틈 아래에는 아주 짙은 어둠이 스며들었고, 그 어둠은 방 안의 빛을 살짝 끌어당기듯 흔들었어요. 제 심장이 같은 속도로 흔들렸어요.
저는 토끼를 안은 채 천천히 일어났어요. 쿠쿠와 루루는 제 뒤에서 떨며 서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문을 바라보며 한 번 깊게 숨을 들이마셨아요.
“누구든… 이번엔 반드시 만나야 해.”
왜냐하면—
이 문을 두드리는 존재가, 토끼의 마음을 부른 그 그림자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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