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의 여진
그리고 그녀의 세계는
예고 없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잠시 멎었다.
공기 전체가 얇아지고,
몸을 지탱하던 무언가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
해윤은 가슴을 부여잡은 채
겨우 숨을 다시 들이켰다.
심장은 이미 정상적인 박동을 잃은 듯 뛰었다.
떨림이 손끝에서 시작해 팔과 어깨, 목까지 올라왔다.
“이게… 뭐야…”
난간에 기대어 한참을 버티고 나서야
해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발이 바닥에 붙지 않는 것처럼 가볍고 이상했다.
옥상 문을 밀고 내려가며
해윤은 고개를 숙였다.
아까 목소리가 들린 자리,
난간 너머 그림자가 있던 방향이
계속 눈앞에서 겹쳐졌다.
출근 복도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며
해윤은 떨리는 손을 억지로 잡아 쥐었다.
왜 나를 부르는 거지.
왜 이 목소리가…
왜 지금…
하지만 답은 없었다.
대신 심장 속 어딘가에서
기억 아닌 기억,
감정 아닌 감정이
부드럽게 부풀어 올랐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익숙한 소음들이 들려왔다.
키보드 소리, 프린터, 전화벨,
그리고 팀장의 목소리.
그런데 모든 소리가 반 박자 뒤늦게 들렸다.
마치 한 겹의 얇은 필름을 사이에 둔 것처럼.
“해윤 씨, 괜찮아요?”
지수가 스치듯 지나가며 물었다.
“네… 오늘은 좀 피곤해서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해윤 스스로도 이건 ‘피곤함’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
가방 속의 AI 스피커가 작게 진동했다.
보통은 일정한 패턴인데
지금은 탁, 탁— 하고 불규칙한 간격이었다.
해윤은 값싼 볼펜을 쥔 손으로
가방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제발… 지금은 아니야…”
그러나 AI는 더 강하게 한 번 진동했다가
바로 멈췄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틀어막힌 것처럼.
심장이 한 번 크게 요동쳤다.
그 순간,
짧은 기억 파편이 번쩍했다.
습기 어린 밤공기.
쏟아지던 빗소리.
손끝에서 느껴지던 따뜻함.
그리고 누군가가 떨리는 숨으로 내뱉은 말.
“해윤아… 이번엔 내가 먼저 찾을게.”
해윤은 숨을 들이켰고,
문득 손등에 소름이 돋았다.
누구지.
누구길래…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플 만큼 익숙하지.
점심시간이 되어
해윤은 조용히 일어나 회사 복도 끝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창가 자리.
햇빛이 큰 창을 통해 들어와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보려던 찰나,
화면이 스스로 깜빡였다.
그리고 단 한 줄의 알림이 떴다.
[새 녹음 파일이 저장되었습니다]
“녹음한 적 없는데…”
해윤은 손가락을 떨며 재생을 눌렀다.
——“… 해윤.”
——“기억… 나고 있지…?”
——“시간이… 곧…”
목소리는 중간이 끊겨 있었고
전파가 몇 번씩 튀듯 왜곡되었다.
그러나 단 하나는 너무나 명확했다.
그 목소리가 이헌의 목소리라는 것.
손에서 힘이 빠져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심장이, 이상했다.
두근거림이 아니라
누군가 안쪽에서 꽉 움켜쥐는 통증.
“왜…
왜 나한테…”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었을 때,
창가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 뒤로
아주 짧게—
남자의 어깨선이 흔들렸다.
실체는 아니었다.
그저 빛이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해윤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 존재는 해윤을 보고 있었다.
바람도 없는데
머리카락 한 가닥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귀 바로 옆,
공기를 울리는 속삭임이 떨어졌다.
“… 해윤.”
숨이 멎었다.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해졌다.
단 한 문장이 이어졌다.
“곧… 다 열린다.”
해윤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가슴 깊은 곳이 떨리고
뜨겁게, 아프게 뛰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목소리도,
단순한 착각도 아니었다.
누군가 정말로 그녀를 향해 오고 있다.
시간을 가르고, 기억을 흔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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