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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낮에도 지워지지 않는 기척

by Helia

별사탕 우체국의 하루가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 햇빛이 들어오자마자, 새벽에 머물던 떨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루네는 곧바로 느꼈다. 창문틀에는 마치 누군가 지나간 듯 희미한 빛의 가루가 남아 있었고, 그녀의 손끝에는 아직 식지 않은 감각이 남아 있었다. 포노가 조용히 다가와 창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루네, 새벽에 왔던 기척… 지금도 남아 있어. 낮인데도 안 사라지는 건 처음이야.”

루네는 숨을 고르듯 창문에 손을 얹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아마… 오늘은 끝내지 못한 답장을 마저 써야 할 것 같아.”

루네는 원래 틈틈이 편지를 쓰는 사람이었다. 누구에게 닿을지 모르는 이야기들을 조용히 적어두곤 했고, 기척 없는 새벽에도 잉크는 종이 위에서 천천히 흐르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래전 떠나보낸 기억이 다시 문을 두드린 날이었고, 그 답장은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점심 무렵, 루네는 우체국 외투를 걸치고 문을 나섰다. 길모퉁이 문구점의 종소리가 울리자, 포노가 뒤따라 들어오며 한숨을 흘렸다.

“또 이렇게 많이 사는 거야? 이번엔 무슨 편지를 쓰려는 건데?”

루네는 여러 무늬의 편지지와 봉투를 고르며 말했다.
“늘 쓰던 것들과 조금 다른 걸 써보고 싶어서. 오늘은… 오래 묵은 마음을 위한 답장이니까.”

빛이 닿을 때마다 금박이 번지는 달 모양 편지지를 집어 들고, 파란 잉크가 묻은 얇은 문장지까지 바구니에 얹었다. 그녀는 이런 문구들을 고르는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 포노가 물었다.

“루네, 매번 답장을 써왔잖아. 그런데 오늘은… 느낌이 좀 다르지 않아?”

루네는 바구니를 꼭 쥐었다.
“응. 오늘은 누군가가 정말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우체국에 돌아온 오후, 책상 위에는 새로 산 편지지들이 층층이 놓였고, 달빛 잉크병은 낮에도 은은하게 반짝였다. 루네는 펜을 쥐고 잠시 손을 멈췄다. 그때 포노가 작은 발로 그녀의 팔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루네, 편지 말고… 간식도 넣자. 마음을 쉬게 해주는 간식 말이야.”

루네는 웃음을 삼키듯 미소 지었다.
“기억이 간식을 좋아할까?”
“기억도 배고플 때가 있지. 길을 오래 돌아왔잖아.”

그 말에 그녀는 어제 선반에 올려둔 별 모양 젤리 사탕을 꺼내 작은 종이 봉지에 담았다. 포노가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마음이 잠깐 쉬라고 넣어주는 달콤함.”

루네는 편지지 위에 첫 문장을 적었다.

“잘 지냈니. 나는 그때보다 덜 아픈 사람이 되었고, 이제는 너에게 천천히 안부를 전할 수 있을 만큼 숨이 고르게 돌아왔어.”

글씨가 종이 위에서 잔잔히 번졌다. 봉투에 간식 봉지를 함께 넣고 달 모양 우표를 붙인 순간, 포노가 창밖을 응시하며 갑자기 말했다.

“루네… 방금 하늘 끝에서 또 깜빡였어. 이번엔 편지랑 별사탕 반응이 아니야. 뭔가 더… 가까이 오는 느낌.”

루네는 봉투를 들고 창가에 섰다.
햇빛 아래에서 봉투가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거기 있어?” 하고 묻는 것처럼.

“포노… 누군가 돌아오고 있는 게 맞아.”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낮인데도 우체국의 종이 스스로 울렸다.
조용하고 길게—마치 다음 이야기가 문 바로 뒤에서 숨을 고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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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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