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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달빛 아래 되돌아온 그림자

by Helia

그 밤, 세상 어딘가에서 또 한 통의 편지가 깨어났다는 마지막 문장이 아직도 공기 속에 남아 있었고, 별사탕 우체국의 창문은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미세하게 떨렸다. 루네는 그 떨림에서 오래전에 끊긴 줄 같은 기척을 느꼈다. 포노가 꼬리를 세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루네… 뭔가 오고 있어. 이번 건 좀 달라.”

루네는 대답하지 않은 채 문틈으로 걸어갔다. 바닥에는 은빛 잉크가 스스로 길을 그리듯 흘러내려 있었다. 잉크병에서 새어 나온 것이 아닌데도, 달빛이 만든 듯한 흔적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들어 올렸다. 아주 미세한 순간, 숨이 한 박자 늦게 쉬어졌다. 봉투 표면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적힌 글씨는 단 한 줄이었다.

“보내는 사람: 기억의 그림자에서.”

포노가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루네, 혹시… 네가 지우고 싶어 했던—”

루네는 말이 이어지기 전에 봉투를 열었다. 그 안의 글씨는 달빛을 닮아 조용히 번져 나왔다.

“루네, 나는 네가 끝내 놓았다고 믿었던 기억의 조각이야. 아무도 부르지 않아도 나는 네 마음의 어두운 새벽에서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문장을 따라가던 루네의 눈가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잊었다고 말했던 이름과 내려놓았다고 여겼던 감정이 한순간에 살아나는 듯했다. 포노가 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아직… 남아 있었던 거야?”

루네는 고개를 숙인 채 짧게 숨을 골랐다.

“기억이 돌아올 때는 이유가 있어. 내가 붙잡지 않아도 스스로 길을 찾아오겠다는 신호겠지.”

편지는 계속해서 그녀의 마음을 건드리고 있었다.

“너는 마지막 순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지. 그래서 나는 떠나지 못했다. 네가 덜 아파질 때까지 그림자 속에 머물며 기다렸다.”

루네의 손끝이 가늘게 흔들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포노는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루네… 지금 너 조금 흔들리고 있어.”

루네는 낮게 웃듯 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오래된 마음이 돌아온다고 해서 다시 아픈 건 아니야. 그 마음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

바로 그때, 책장 위의 별사탕 병이 스스로 흔들렸다. 반짝임을 잃었던 조각들 사이에서 파란빛 하나가 깨어나듯 떨며 떠올랐다. 포노가 놀랐다는 듯 외쳤다.

“루네! 별사탕이… 깨어났어!”

루네는 그 파란 조각을 손바닥 위에 받았다.

“이 별사탕은… 내가 보내지 못한 마음을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지금 반응하는 거야.”

그녀는 작은 투명 병을 꺼내 별사탕을 담았다. 그리고 달빛 잉크로 짧은 문장을 남겼다.

“돌아온 기억에게, 네가 쉬어도 좋은 자리로.”

새벽의 빛이 우체국 안으로 스며드는 순간, 병은 스스로 가볍게 떠올랐다. 포노는 창밖 하늘을 주시하며 말했다.

“루네, 방금… 저기서 또 하나 깜빡였어. 편지가 아니야. 무언가 더 큰… 울림 같은데?”

루네는 그 빛의 여운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누군가 길을 다시 기억해 낸 거야. 그리고 그 기억이… 우리 쪽으로 오고 있어.”

새벽의 경계가 열리기 전, 우체국 내부에 설명할 수 없는 떨림이 번졌다. 마치 다음 이야기가 문 앞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듯한 기척. 루네는 포노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오늘… 무조건 새로운 편지가 도착할 거야.”

그리고 새벽종이 울렸다. 별사탕 우체국의 하루가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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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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