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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업자와 양복쟁이간의 불편한 관계

by 사마의

무더위가 기승인 지난 주, 정 부장은 다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한 평생 든든하게 잘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회사는 경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정 부장이 회사를 정리하기를 바랬고 정 부장은 공식적으로는 경기가 어렵다는 내용이지만 그 이면에는 본인이 줄타기에 실패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45살의 나이에 집에는 이제 초등학교를 다니는, 양념치킨을 좋아해서 매일같이 치킨먹자고 조르는 예쁜 딸 둘이 있고 특별하게 기술이나 능력이 있어서 직업적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태껏 나 하나만을 믿고 의지하면서 함께 세월을 보내 준 아내가 있다.



일주일 전 권고 사직서에 서명을 할 때, 그리고 그 날.. 그 다음날도 정 부장은 집에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 것이 분명했고, 아이들은 무슨 이야기 인지 알지 못하지만 분명 무거워진 집안 분위기에 첫째는 같이 슬퍼할 것이고 호기심 많은 둘째는 무슨 일인지 분명 하나하나 물어보려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집안 모습들은 분명 아내에게 더 많은 슬픔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에서인가 뉴스에서 들었던 이야기.. 양복쟁이들이 퇴사 후 집에는 말 하지 못하고 출근하듯 정장을 입고 산과 공원으로 간다던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어차피 오랜 시간 일만 보고 달려온 정 부장이었다. 이렇게 생각도 정리할 겸 어떻게 얘기를 풀어갈 지 정리할 겸 산이든 공원이든 잠깐 바람쐬러 나오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늘 또한 여느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는 척 집을 나와 무더운 여름 날씨에 공원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더 현실이 와닿고 이게 뭐하는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준비된 무언가가 없었고, 평생 사무실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기술도 없었다. 당장 퇴직금과 저축한 돈이 전부였으며 이마저도 점점 줄어가던 차 나름 대책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문뜩 회사 앞 식당들은 맛도 없고 가격도 비싼데 항상 사람들로 번잡하고 줄까지 섰어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맛없던 식당도 줄을 서는데.. 내가 한다면? 아니면 나보다 음식 솜씨가 더 뛰어난 아내가 한다면? 대박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모르면 요즘 프랜차이즈도 많겠다. 수익률도 20~40%라 하겠다 한번 사장님 소리 들으며 일을 해보자는 마음과 함께 무언가 마음 속 희망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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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발걸음을 옮겼다. 막상 어디가 좋은지 어디서 식당을 해야하는지도 몰랐지만 어차피 자리 소개는 부동산 사무실에서 해 줄것이기 때문에 고르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지금 살고있는 아파트를 구할 때도 중개사와 한참 찾아다니며 씨름한 끝에 지금과 같은 좋은 집을 찾을 수 있지 않았는가? 이번 역시 그때와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딱히 어디서 식당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회사 근처에서 손님이 많은걸 봤던 기억으로 우선 회사 근처로 가 보기로 했다. 자신 역시 그 근처에서 식당 하나만 내도 보란듯이 성공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멀찍이 부동산 한군데가 보였고 가까이 가 문을 열었다.

사무실 안에는 50은 족히 되어보이는 사장인지 직원인지 모를 남성이 있었다.

첫 가게 알아보기인 만큼 얼마나 친절하게 잘 알려줄까 내심 기대도 되었다.



"안녕하세요? 가게 자리 좀 알아 보러 왔는데요."

"나가!"

"네? 저 말씀이신가요?"

"그래! 나가!"

"저 식당자리 알아보러 온 손님인데요?"

"식당 자리고 나발이고 그런거 없으니까 나가!"



황당한 일이었다. 왜 저사람은 나한테 나가라고 저리 소리를 지르는지....

그래도 부동산 사무실이 여기 뿐이랴? 다른곳에 가면 그만이었다.

근처 또 다른 부동산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식당 자리 좀 알아보러 왔는데요."

"뭐 하실껀데요?"

중년의 여성은 아까처럼 내쫓지는 않았지만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글쎄요.. 아직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전 회사에서 짤리고 공원으로 출근하다가 식당이나 해보자는 생각에 어딜갈까 하다가 익숙한 회사 근처로 와서 가게 하려면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보러 다니는 중이었거든요."

실직하고 공원으로 출근한다던 말이 안쓰러웠던건지 어쩐건지 경계하는 기색이 이내 누그러지더니 직원이 말을 이어간다.

"보니까 식당해보신 경험이 없으신것 같은데 체인점이라도 알아보셔야 하는거 아니세요? 면적이라든지 임대료는 어느정도 생각하세요?"

"임대료는 시세를 모르고.. 그래도 40~50평은 되어야 장사 하는 맛이 있지 않나요?"

"40~50평이면 마침 근처 1층에 보증금 2억 5천에 월세 1300만원 짜리가 있긴 하네요. 권리금이 좀 있는데 4억 정도 붙어있구요."

"네? 보증금이 2억 5천이요? 권리금은 또 뭔데 4억이나 붙어 있는거죠? 그럼 얼마가 필요하다는건가요?"

"처음 들어가는 돈만 6억 5천만원 정도? 기타 비용은 별도로 들어가구요."

"엄청 비싼 동네였네요.... 아참 그런데 아까 요 옆 부동산은 제가 문 열고 들어가기만 했는데도 나가라고 소리를 막 지르시던데 .. 원래 그런가요?"

"아~ 그집이요? 아마 물건 따러 온 회사 직원이나 작업 부동산 같은 느낌이라 그러신것 아닌가 하네요. 얼마전에 거기 사장님이 물건 때문에 당하셔서 많이 화나신 상태거든요. 아마 그래서 였을꺼에요."

"저는 잘 모르지만 또 많은 일들이 있으신가 보네요. 알겠습니다, 물건은 여유자금 상황 보고 다시 찾아뵐께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무실을 나섰다.

6억? 말도 안되는 큰 가격이다.. 가격도 비싼데 맛도 없던 회사 근처 식당들이 왜 그랬나 아주 약간은 이해가 가는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제는 무언가 하기위해서는 집에 실직사실을 알려야 할 때가 온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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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끼리든 회사가 체인점 회사가 얽히든 아니면 개인이 얽히든간에 지역 부동산을 통해서 알게 된 점포를 가지고 수수료를 안 내거나 가로채려는 심산으로 가게 점주와 뒤로 몰래 직거래를 하기도 한다. 때문에 이런일에 대한 위험 노출이 있는 지역부동산 관계자들은 소위 양복쟁이나 부동산 꾼 느낌이 나는 사람에 대해서 경계심이나 적대감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이라면, 개인답게 하고 방문하거나 사전에 전화통화로 방문 약속을 잡고 방문하는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개인도 지역 부동산에서 물건 받아놓고 뒤로 몰래 빼가기도 한다. 개인은 개인이 영업하기때문에 금방 들통난다지만 한두사람 끼어서 소위 "작업"을치면 알아내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식당 창업을 하면서 묘한 협상관계에 있는 사이들이지만 첫 인상부터 굳이 감점먹고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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