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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영 Aug 02. 2024

치매가 오더라도  팬미팅은  갈거야

늦게라도 나만의 내면의 기쁨을 꼭 찾기로 해

요즘 한번씩 뇌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건 예삿일이고,  며칠전엔 백화점에서 받은  향수 시향지의 향을 맡기 위해  반대편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의 냄새를 킁킁 맡기도 했다. 또 한번은 언니와 식사메뉴를 고르던 중  메뉴판의 먹음직한 돈까스 사진을 가리키며  "우리 냉면먹자"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 이쯤되니 치매보험을 미리 들어놓아야겠다는 불안함에  콜센터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사는 마치 ai로봇이 말하듯 일정한 톤으로 빠르게 설명 했다.  내가 파악한 핵심 내용은 경증진단에도 천만원을 본인에게 제공하고. 중증 이상일 땐 천만원의 진단금과 함께 매달 백만원의 생활비도 지원된다는 것.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저기...  어차피 치매가 중증 이상이면  보험을  들었다는 사실조차  다 잊어버리지 않나요??"


그러자 상담사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중증 이상이면 기억을 못할 수 있죠. 그래서 치매보험은 가족을 위해서 드는 거예요~~"


이어진  그녀의  다음 질문을 듣고서 나는 잠시 대화의 방향을 잃었다.


"혹시 중증 치매로  본인 수령이 어려울 경우에, 대리인 수령도 가능한데  미성년자가 아닌  대리인은 누구로 설정하시겠습니까?보통은 남편으로 ... "


"....."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인간이란
누구나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ㅡ양귀자의 '모순'책에서ㅡ


외로움과 침묵의 시간, 그리고  내 기억력에 한몫 했을 그이보다는.  미성년자인 초등아들이 보험 대리 수령인이 되는 그 날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그 사이에 치매라는 불청객이 나를  찾않게 스스로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다는 다짐 뿐.   우선  유튜브를 켜고 치매에 안걸리는 법, 뇌의 노화속도를 늦추는 법,  스트레스 덜 받는 법 등 수십개의 영상을 었다.  그리고 최종적인 결론은 역시 꾸준한  운동, 독서, 글쓰기,  일상대화 나누기, 우울해 하지 않기 등등 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그중에서도  '새로운 활동하기'에 대한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침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11년만에 팬미팅을 연다. (참고로, 나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연예인의 팬미팅을  가본적은  없다. 예전에 언론관련 일을 했을 때도  시사회나 간단한 프레스 공연만 갔는.  우울할 때마다 듣게 된  그의 노래 '좋아''를 인연으로 나는 지금도 제이팍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의 팬미팅 소식을 듣던 날,  기대없이 예약대기만 걸어두 포기상태로 던  나에게 갑자기 팬미팅 좌석이 딱 한자리 생겼다문자가  것이) 기쁨과 동시에 고민이 시작었다.  아가씨도 아닌 초등 아이까지 있는  주부가, 더군다나  자주 깜빡깜빡하는 기억력을 장착한 채  ktx와 택시를 갈아타면서까지 오직 그를 보기 위해 낯선 공연장을 홀로 찾아가려  당연히 고민될 수밖에.


그런데..   참  신기하다.  팬미팅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갑자기 엔돌핀이 솟는듯  심장이 두근거리고 막 설렌다ㅎㅎ  남편 아닌 사람에게 '오빠'라고 수백번  외칠생각을 하니 잔뜩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통쾌해지는 것 같다.  sexy하면서 holy하고.  매사에 성실근면한 그를 떠올리니 그동안 웃음을 잃었던 얼굴에  미소가 활짝  만개하는 나를 보며. 나는 어느새  ktx 왕복기차표를 예매하고 


 언젠가  진짜 치매가 오더라도.  내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연예인의 팬미팅에 가는 일.  그 기쁘고도  설레는 과정들은  아마도 내 기억에서  가장 또렷한 신경회로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8월 11일 오후 5시 .  박재범의 팬미팅을  조용히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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