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배낭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년 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당시 30만원대의 서류가방은 내가 일하는 매장에서 상당히 고가의 물건으로 취급되고 있었는데.
이미수많은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미소와 친절을 겸비하고 있던 나는, 매장에서 친절사원으로 뽑힐 만큼 싹싹한 말투 덕분에단골 고객도많았다.. 그렇게 아르바이트생으로 나름 승승장구하던 어느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듯한 남성고객의 컴플레인을 받았다
그것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그는 온라인 게시판으로 나에 대한 컴플레인 글을 남겼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는 자유게시판에 올라온글을 확인했다.
"지인과 서류가방을 보러 00매장에 갔는데 여자직원이 <비싸다>고 말해서 너무 무안했어요. 옆에 지인도 함께 있었는데.. 순간 저를 무시하는 기분이 들어 불쾌했네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모든 생명체는 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또한 당시에는 배낭여행비를 벌기 위해 밤이면 퉁퉁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아르바이트를 하는입장인데. . 고가의 서류가방을 사러 온 그를 내가 감히 무시했을리가 ! 그렇다면 왜? 그는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가방이 "비싸다"는 내말에 그가반감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비싸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다를테니.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30만원대 서류가방이많이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돈이 풍족한 사람에겐 300만원이 아닌 30만원이 비싸다는 말이 마치 자신의 재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그것도 지인이 동행한 자리였으니 더 무안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 남들이 비싸다고 말하는 가방은 H로고가 있는 주황색 쇼핑백에 들었거나 흰꽃 포인트를 둔 블랙쇼핑백에 든 것처럼 수백, 수천만원대 가격을 넘나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여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난다면 이 말은 꼭 전하고 싶다. 그때 내 통장엔 100만원도 없었다고.. 그래서 30만원대 가방을 보며 '정말~ 비싸다' 한 것이니 . 그건 당신을 절대 무시한게 아니라고 오해를 풀고 싶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은 든다. 돈과 마음의 여유가 꼭 비례하는 건 아니라고.
만약누군가 내게 " 이 가방이 비싸요" 라고 했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아. 그래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나는 가격보다 가방의 디자인이나 퀄리티를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에요. 비싼만큼 물건의 가치가더 있을테니까요.."
우리는 내가 한 잘못보다 다른 사람이 내게 한 잘못을 더 예민하게 느끼고 오래 기억한다 ㆍㆍㆍ
어쩌면 나와 타인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지는 일
이 너그러움을 배우는 과정이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ㅡ김혜남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책에서
그도 어른이고 나도 물론 어른이지만. 우리는 앞으로 좀 더 너그럽게 어른이 되는 과정을 함께 배워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타인의 잘못을 또렷이기억하기보다는 내게 좋았던 사람들과 행복했던 순간들을 더 많이 더 오래 간직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