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렇게 계속해봐.
너는 결국 중간 인생밖에 못 살 거야.
뭐 하나 진득하게 못 하면 앞으로 공부는 어떻게 할래?
아무 생각 없이 살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인생을 살겠지.
꾸준히 그렇게 쭉 놀기만 해. 나중에 부모 원망하지 말고.
이런 말을 하는 엄마가 될 거라고 나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이를 따뜻한 말로 키우겠다고, 마음을 먼저 읽는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수많은 밤들이 무색하게
나는 오늘도 마귀할멈처럼 말하고 있었다.
내 아이의 인생에 악플을 달고 있는 건 바로 나였다.
왜 이렇게 말하게 되는 걸까.
무엇이 그렇게까지 나를 화나게 만드는 걸까.
돌아보면, 그 순간의 분노는 아이 때문이라기보다
내 안에 가득 찬 불안 때문이었다.
하나는 지금의 불안, 다른 하나는 미래의 불안.
지금의 불안은
남들보다 조금 더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러면 ‘아이가 잘 크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과,
내 노력도 헛되지 않았다는 위안이 따라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생각보다 어긋나 있었다.
애써 준비해도 예상하지 못한 구멍들이 자꾸만 보이고,
탄탄대로 대신 이상하게 돌아가는 길목에 서 있을 때
조급함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 조급함은
언제나 아이에게 향하는 말로 터져 나왔다.
미래의 불안은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아이만큼은 피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에서 출발했다.
뭐가 됐든,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그런데 가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
덜컥, 불안감이 고개를 든다.
이러다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 생각이 스치면 입에서는 칼 같은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잘한다고 더 사랑하고
잘 못한다고 덜 사랑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 말투는,
마치 그 반대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사랑이 조건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건 내가 바라는 엄마의 모습과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이었다.
무서운 건 분명히 그 말들이 아이 마음속에
작은 가시처럼 박혀 오랫동안 남는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실수투성이였던 나는
너의 한계는 결국 90점이라 100점짜리가 될 수가 없다는 말보다는
완벽하고 싶었던 너의 마음을 알기에 가장 속상한 건 너일 거라고
좌절한 나를 다독이는 말을 듣고 싶었다.
부모가 되면 따뜻한 말로 안아주겠다 생각했지만
지금 나는 내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들을
그대로 재생하고 있다.
말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한 마디로 아이를 움츠러들게 만들 수 있고
한 마디가 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마음을 찌르고 있었다.
물론, 사랑하니까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랑은 다정해야 진짜다.
아이의 인생에
악플이 아닌,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는 엄마.
그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이제는 조금 더 천천히 말해보기로 했다.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는 잠시 멈춰보는 연습부터.
미간이 찡그려지면 잠시 눈을 감아보기로.
어금니를 꽉 물게 될 때는 기지개를 켜기로.
지금 바꾸지 않으면 내 아이를 불행에 가두게 될 것이다.
나의 불안이 아이를 망치지 않도록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