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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비 Dec 03. 2019

팩소주와 보름달빵

    공중 화장실 변기 커버에 묻어 있는 것들에는 꼬부랑털이나 드물게 갈색의 무언가가 있다. 그중에서도 정체 모를 노란 방울은 상당히 불쾌한 존재다. 필히 다른 사람의 오줌 자국일 것이며, 커버에 두세 방울 튀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지간히 비위가 약한 나는 커버를 한번 확인하고 휴지를 뜯어 커버를 닦고, 다시 휴지를 길게 뜯어 커버 위에 덮은 다음 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덩이에 알 수 없는 불쾌한 물기가 느껴지고 닦아 내려해도 이미 피부에 스며들어 집에 갈 때까지 비위가 상한 채로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준다. 차갑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아직 따뜻하다면 육성으로 “아. 진짜 너무하네.” 라고 혼잣말을 하게 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오줌 자국을 보게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대학교 4학년 겨울에는 졸업전시 때문에 시간을 많이 뺏기는 알바를 할 수 없어서, 주말 오후에 편의점 알바를 했다. 모텔촌 가운데 있던 큰 편의점이어서 그런지 주말 오후 시간에는 장날을 방불케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그들 가운데에서 이번에 이야기하고픈 사람은 매번 팩소주나 플라스틱 소주를 한두 시간에 한 번씩 사러 오던 손님이다. 점장님과 알바생들은 그 손님을 팩소주 아줌마라고 불렀다. (단골손님들은 별명으로 불렀는데, 민들레 아저씨, 프린스 사장님 등 이 있었다.) 손님은 얼마 안 남은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묶지도 않고 풀어헤치고 다녔다. 머리숱이 얼마 없어서 두피가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새치 염색을 한 지 조금 되었는지 일정하게 흰머리가 조금씩 보였고, 늘 기름에 떡져 있었다. 입술 근처와 입은 옷 위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막걸리 마른 자국이 희뿌옇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녀가 오면 코를 찌르는 찌린내가 풍겨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들에게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그녀가 건네주는 꼬깃거리는 지폐나 동전을 아무렇지 않게 받고 펼쳐 보인 손바닥에 잔돈을 쥐어 주는 것뿐이었다. 쳐다보는 눈빛이 어쩐지 ‘나를 더럽게 여기지 말아줘!’라고 쏘아붙이는 거 같아서가 이유일 것이다. 가끔은 나 자신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오바해서 친절하게 굴던 시절이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우고 나서도 편의점을 가득 채우던 고약한 냄새에 나는 어쩐지 찜찜한 마음에 카운터 안에 있던 싱크대 물을 틀어 동전을 씻어 말려 놓았다. 지폐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른 돈은 맨 위에 올려놓았다가 다음 손님에게 거슬러 주곤 했다. 그녀의 한 움큼씩 빠진 머리카락에 보이는 회색 두피 사이에는 나의 무례한 상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을까, 집은 있을까 아니면 알콜 중독일 수도 있다.’와 같은 상상이었다. 그 손님은 도통 웃는 법이 없었는데, 늘 어딘가 정신이 팔려 있어 보였다. 하루는 점장님과 함께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말쑥한 옷차림과 뒤로 단정하게 질끈 묶은 머리를 하고는 나에게 웃음을 보이며 보름달 빵을 계산대에 올리고 던힐 라이트 한 갑을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점장님은 그 손님이 나간 후 웃는 얼굴을 처음 보았다며, 손님들이 내가 온 이후부터는 웃음이 좀 많아진 거 같다 하셨다. 나는 그걸 지금도 순전히 기분 좋으라고 해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 손님은 깔끔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묘한 냄새를 남기고 갔다. 그게 그 손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퇴근을 하고 편의점 문 밖에 나가니 던힐 라이트의 빈 갑과 다 먹은 보름달 빵 껍질이 나뒹굴어져 있었다. 아마 편의점 앞에서 앉아 담배를 피우며 먹었던 거 같다. 며칠 후 점장님은 나에게 팩소주 아줌마에게 개인적으로 다시는 자신의 편의점에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때 땀이 삐질하고 났다. 뭐라고 대꾸해 드려야 할지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답을 고민하고 있으니 점장님이 잘 돌려서 얘기했다고 말하며, 다른 손님들에게 불만을 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때에 나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던 거 같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웠고, 또 화가 나고 슬펐다. 그렇지만 여전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아주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특이하고 이상한 손님은 그 이후로도 많았다. 하지만 편의점 알바를 그만두면서 기억이 흐릿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 손님만큼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녀의 쏘아보는 눈빛이, 회색빛의 두피가, 말쑥한 모습이, 그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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