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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비 Dec 10. 2019

PB & J Sandwich

피넛버터 한 겹 딸기잼 한 겹


“엄마, 나는 샌드위치가 축축해지는 게 싫으니까 샌드위치에 토마토는 따로 주세요!”


  매일 아침 이모와 엄마는 학교 런치 타임에 먹을 간단한 간식과 점심을 싸주었다. 처음에는 삼각김밥이나 김치볶음밥 김밥을 싸주었지만, 서양애들이 몰려와서 김밥의 끄트머리, 꽁지를 손가락으로 쿡 누르며 이게 뭐야?를 일주일 내내 물어보니 대답해주기 귀찮았다. 무엇보다 알파벳도 겨우 배우고 있던 다섯 살 때라 김밥이 뭔지 설명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엄마와 이모에게 김밥이 뭔지 김치가 뭔지 설명해주기 귀찮으니 내일부터는 샌드위치를 싸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그렇게 해주었다. 닭고기 햄이나 칠면조 햄, 베이컨 같은 햄 두장에 상추와 토마토 그리고 마요네즈와 머스터드 소스를 넣은 간단한 샌드위치였다. 우선적으로, 지금도 그렇지만 식빵을 데우지 않고 먹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 마치 날것을 먹는 느낌이다. 식빵의 겉면을 보기 좋은 갈색으로 태우지 않아서 그런지 토마토의 과즙이 더 잘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갈색 페이퍼 백안에 지퍼락으로 한번 더 쌓여 있는데도 종이봉투가 축축했다. 샌드위치를 꺼내면 식빵이 흠뻑 젖어 짓무르고 찢어져 있었다. 토마토와 한 몸이 된 빵은 햄을 겨우 쥐고 있었고, 상추는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하고 너저분하게 튀어나왔다. 상당히 역겹다고 생각했다. 며칠을 참고 축축한 샌드위치를 먹었다.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토마토를 따로 싸 달라고 했다. 옆에서 사촌언니는 샌드위치가 축축해지는 게 싫으면 빵에 잼만 발라서 가라고 했다. 그때 처음 Peanut butter & Jelly 샌드위치를 처음 맛보았다. 꾸덕한 땅콩버터에 눅진할 정도로 단 딸기잼을 같이 바른 샌드위치의 맛은 충격이었다. 건강과는 거리가 먼 그런 미국인들만의 맛이었다. 나는 내일 점심은 PB & J Sandwich 주문을 하며, 빵의 겉면은 골드 빛이 나게 토스트 해달라고 했다. 엄마와 이모는 갈색 종이봉투를 가방에 넣어 주며 오늘은 네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주었으니, 맛있게 다 먹고 오라 하셨다. 하루 종일 런치 타임만을 기다렸다. ‘종이 한 번만 더 치면, 세상 무엇보다 고소하고 달콤한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 모아놓은 코인으로 애플주스를 사 곁들여 먹어야지.’ 런치 타임에 꺼내 든 갈색 봉투는 축축했다. 사촌언니와 점심이 바뀐 것이다. 미국에 나고 자라면서 질리도록 먹은 PB & J Sandwich 대신 자신은 그대로 햄 샌드위치를 싸 달라고 한 것이 이유였다. 축축해도 좋으니, “진짜” 샌드위치를 만들어 달라고 했기에, 점심 샌드위치는 두 종류였고, 하필이면 그게 바뀐 것이다. 나는 집에 돌아가는 이모의 자동차 안에서 점심이 바뀐 것을 알려 주었다. 나만 제외한 가족 모두는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다시 메뉴가 햄샌드위치로 돌아왔다. 다시 메뉴를 김밥으로 변경해달라고 변덕을 부린 것도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김밥이 무엇인지 제대로 영어로 설명하지 못했던 나는 자라서 뮤지컬 대사를 따라 할 수  없는 괴짜 한국 아이가 되어 있었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한 학기 동안 가있던 미국에서는 썸머 캠프로 뮤지컬 상영하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는 여덟 살보다는 나이가 많았고 열세 살보다는 나이가 적었다. 돌아왔을 때 빅뱅이라는 가수가 새로 데뷔했다는 것만 기억난다. 김치가 뭔지 김밥이 뭔지 설명할 수 있게 되었지만, 비트가 빠른 음악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기란 아직 버거웠다. 그때 나의 파트였던 가사는 Oh I took a train, took a train to another state. The flora and the fauna that I saw were really great. 와 I took a ferry to the Statue of Liberty. My best friend was waitin' there for me. (He took an early ferry.)였다. 정확하게 발음을 하는 것은 글렀으니 그냥 투카투카투카 거리며 따라 하려 애썼다. 곱슬거리는 금발이 풍성했던 초록눈의 통통한 백인 여자애는 나에게 알파벳을 읽지 못하냐고 물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만 울어 버렸다. 선생님들은 왜 우냐고 물어보았지만. ‘인종차별’이 영어로 무엇인지 떠올릴 수 없었다. 애초에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도 몰랐던 때였다. 그때 그 일은 후에 음치였던 백인 여자애와 나와 파트를 바꾸며 일단락되었다. 파트를 바꾸는 날의 점심은 PB & J Sandwich였다. 썸머 캠프에서는 점심을 배달 급식으로 해결했다. 늘 햄버거나 브라우니 피자가 왔어서 어린 나이에도 “Foods are too gassy.” 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좋아라 하던 햄버거와 피자를 질려하게 될 때 즈음에 그 샌드위치가 나왔다. 나는 오랜만에 ‘건강한’ 음식이 나왔다 생각했다. 알파벳을 읽지 못하다고 무시받던 괴짜 한국 꼬마애가 음치 백인 여자애와 파트를 바꾸어, 뮤지컬의 첫 번째 곡의 첫 번째 파트를 바꾸게 되어 기분도 좋았고, 간만에 보는 건강한 점심에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게 되었다.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있는 요즘에는 아침마다 PB & J Sandwich를 먹는다. 일하면서 받은 보너스 파리바게트 오만 원 쿠폰으로 다른 사람들은 선물할 초콜릿을 살 때 나는 냉장고를 채울 수 있는 딸기 잼과 피넛버터를 샀다. 아침에 토스터기에서 꺼낸 따끈한 빵에 피넛버터를 바르며 축축했던 햄샌드위치를 담았던 지퍼백의 습기가 떠올리고, 딸기잼을 위에 덧바르며 알파벳을 모르냐고 물어보았던 여자애의 눈동자가 떠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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