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 기록자 Mar 22. 2018

이케아 사장이 납치된 이유

이케아 사장을 납치한 하롤드 영감_프로데 그뤼텐

오사네라는 동네에서 2대째 룬데 가구점을 운영하던 룬데 영감님이 이케아 사장을 납치하는 이야기이다. 


가구를 사 오고, 진열하고, 판매하고, 설치하며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잘 가꾸도록 도움을 주는 걸 진정 행복으로 여기던 영감님은 어느 날 동네에 들어온 '가구 공룡' 이케아로 인해 평생직장의 문을 닫게 된다. 그리고 가구점이 쇠퇴의 길을 걷는 그 비슷한 시기에 평생을 함께해 온 반려자 마르니 역시 요양원으로 떠나보낸다. 아마도 영감님은 갑자기 자신의 삶에 찾아온 불행에 대해 죗값을 물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어찌어찌 잉그바르 캄프라드를 납치하는 데 성공하지만, 통쾌한 복수를 하기는커녕,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매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삶에 배신당한 노인의 후회 아닌 후회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항상 예의 바르고 이성적이며 인내심을 지니고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다른 이들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며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왔다. (...)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일, 내가 살아온 방식은 내게 상처만 남겨 주었으니 말이다. 할 수 없다. 그게 바로 나라는 사람인걸. 인간으로 산다는 건 정말 이런 걸까. -57p


정직하게 가구를 팔던 꼬장꼬장한 영감님의 눈으로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 변화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 이케아가 생긴 후, 사람들은 더 이상 룬데가구점에서 가구를 사지 않았다. 더 큰 매장에서 더 저렴한 가구를 찾아 헤매는 동안 개인과 개인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개성은 사라진다.


이 모든 가구, 이 모든 집. 집은 서로서로 너무나 닮아서 이제 내 눈으로는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차를 타고 오사네를 돌다가 이제 저 집 안의 내부도 서로 닮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서로 닮은 가구, 서로 닮은 침실, 서로 닮은 거실. 어쩌면 그들의 꿈도 서로 닮지 않았을까. -178p


꿈마저 서로 닮아버린다는 말이 무시무시하게 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영감님은 이런 신문 기사를 읽게 된다. 이케아 오사네 점에서 한 고객이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졌는데, 그 고객을 누군가 발견하여 조처하는 데까지 5~6분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영감님은 실제로 실험을 해보기로 한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어제와 다른 가게로 들어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 구멍가게, 소매업자, 슈퍼마켓, 쇼핑센터, 백화점 그리고 이케아. 가게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도움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졌다. 가족이 경영하는 작은 구멍가게에서는 바닥에 드러눕자마자 누군가 달려와 도움을 주곤 했다. -83~84p


작가가 이 작품을 위해 실제로 이 실험을 진행했는지는 모르겠다. 이 내용이 사실인지도. 하지만 굳이 해보지 않더라도 알 것 같다. 


이처럼 작품에서는 변해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다양한 문제들을 보여준다. 난개발, 독점, 환경오염, 해체되는 가정, 치매, 고독한 노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케아 쇼룸처럼 알록달록한 동화 속 세상 같던 이야기가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쓸쓸해지는 이유이다.




Photos by Jon Flobrant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이 유독 초라하게 느껴질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