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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기록자 Feb 23. 2017

인생이 유독 초라하게 느껴질 때

빗나간 내 인생_주세페 쿨리키아

유독 그런 날이 있다. 세상에서 나만 뒤처진 듯한 느낌이 드는 날. 내 인생만 별 볼 일 없게 느껴지는 날. 


난 별 일도 아닌 것에 공포를 느껴왔다. 종종 꾸었던 꿈에서처럼, 내 손으로 직접 감옥의 열쇠를 내던져버리고 난 뒤 감옥 안에 혼자 내팽개쳐질까 봐 두려웠다. -20p


저 멀리 유럽 대륙에도 '빗나간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한 이탈리아 청년이 있다. 이름은 발테르.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다. 형편이 어려워 대학엔 못 갔고, 점원이 되고 싶지도 출세를 하고 싶지도 않은, 말 그대로 세상에 '기대할 것 하나 없는' 사람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공익근무(봉급을 더 많이 줌)를 했는데, 기껏 고른 직장에서는 까탈스러운 교사들의 끈질긴 전화에 응대하거나, 태연자약한 부랑자들로부터 제대로 된 서류를 꾸리는 게 주 업무였다. 상사는 복사 강박증, 동료는 무임승차자. 점심시간을 할애하여 청강한 문학-철학과 수업에서는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두 번이나 어이없는 이유로 낙제한다(점심시간이 3시간이나! 주어진다는 대목에서 동질감이 반쯤 사라짐..). 관심 있는 여자에게는 자꾸만 이용당하고, 되려 남자들로부터 원치 않는 관심을 받는다.


작가인 주세페 쿨리키아는 소비주의, 허무주의, 냉소주의가 지배하던 1980년대 말의 사회를 '가볍고 경쾌하게 풍자하고 싶었다'고 한다. 더불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젊은이가 부딪히게 되는 모든 문제들, 즉 취업, 군대, 이성 문제를 다루는 통속적인 이야기', '청소년기를 벗어났지만 어른들의 세계와는 아직 단절되어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세상이 기대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의 현실에 절절이 공감했던 난 역시 아직 철이 덜 든 걸까. 스무 살 이탈리아 청년의 고민과 불안, 불만이 가득한 이 책을 읽으며 서른에 가까운 내가 공감하고 있다는 게 화가 났다. 


왜 아직도? 

<빗나간 내 인생>이라는 비관적 제목의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물론 인생주기에서 특정 시기에 특정한 고민이나 행동을 하는 건 자연스럽다. 예컨대 지금 떠올려도 이불킥 하게 만드는 사건으로 가득한 사춘기처럼.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내내 놓아서는 안 되는 그런 질문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스무 살 즈음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내가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고,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은 어떤 모습이며, 무의식적으로 거부한 경험들은 어떤 것일까? -139p


지나간 n년을 떠올리며 궁금해지는 이런 가능성들에 대한 고민은 비단 스무 살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매 순간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무엇인가를 소모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지금 스무 살이든 환갑이든 똑같이. 


<빗나간 내 인생>, 주세페 쿨리키아


이 불운한 청년은 결국 자신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우리'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난 그가 언젠가 다시 무언가에 홀리듯 '당장 떠나기로 결심'하게 될 거라고 믿고 싶다.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게 하는 소설'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쓰기를 바란다. 그 소설이 빛을 발하게 되면 더 좋고!


인생이 유독 초라하게 느껴져서 이 글을 읽기 시작한 사람에게, 감사하게도 끝까지 읽고 있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발테르의 삶을 통해 자조를 하든, 위안을 얻든,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다 보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다. 게다가 이 친구,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도 마냥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사람들의 행동을 조정하는 데 광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나는 버스 안에서 깨달았다. 예를 들면 겨드랑이 냄새를 제거하는 '데오도란트'의 소비는 매우 낮은 게 틀림없었다. -72p
기름때를 벗기는 세제 통에는 커다란 검은 해골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자살 대신 내 방을 청소하기로 마음먹었다. -95~96p


이런 (유머)감각은 너무 내 스타일이기만 한가? 허허


그나저나 빗맞은 내 인생은 언제쯤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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