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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혼자 남은 나

신 사업부 발령

by 마음을 잇는 오쌤
Osam Life Journey Map




새로운 등장인물



정팀장 (LEVEL 4)

“쿨하고 날카롭고, 거리는 딱 적당히.”

고지능 엔지니어 출신, 디자이너는 문제 덩어리로 보는 타입.

기분 따라 ON/OFF 스위치 발동. 설명은 생략하고, 디테일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냉철 리더.



신 사업부 인사 발령



KM사와 합병으로 BL사는 덩치가 커졌다.

사측에서 추진했던 김포 이전이라는 강수에 직원들이 버텨냈고

희망퇴직자는 기업이 기대한 만큼의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회사는 BL 사옥을 400억에 매각했고, 김포 이전은 직원들의 반대로 생산부만 가게 되었다.


본사에 있던 인원들은 쪼개어 사업부 체제로 운영이 되었고

사업부가 독자적으로 매출을 일으켜 사업 및 인사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다시 말해 “각자 팔아서 잘 벌어. 본사에 일정 비율 주고, 나머진 니들이 가져가.”


나는 신사업부로 발령이 났다.

이름은 되게 거창했는데, 현실은 뭐…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따로 떨어진 거였다.


사무실도 따로. 팀도 따로.

결국 나 혼자 남게 됐다.


나를 챙겨주던 사람들도 다 사라졌고,

뭔가 이제부터는 진짜로 ‘나 혼자 버텨야 되는구나’ 싶었다.




그나마 지 사원이 있어서 그 시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같이 뒷 담화도 하고, 일 끝나면 커피 한 잔 하면서 웃픈 얘기라도 할 수 있었다.

그 친구 없었으면… 진짜로 힘들었을 것 같다.




신사업부 팀장은 정 팀장. 기구설계 출신이다.

이름만 들으면 완전 칼각일 것 같은데, 의외로 웃기다.

센스도 있고, 묘하게 허 찌르는 농담 잘하고, 그래서 처음엔 좀 믿음도 갔다.


근데 뭐랄까... 묘하게 긴장되는 사람이랄까?

이 사람 기준에서 내가 '디자이너'로 보일까? 싶은 그런 느낌?

웃음 뒤에 느껴진 공기가, 어쩐지 낯설었다.


나는 하루에 하나씩 디자인을 뽑아냈고,

심지어 퇴근 전에 영업 부장에게 디자인 검사를 받기도 했다.




하루에 한 개 의 디자인이라니..

이제 나도 과장인데 사원, 대리 때보다 더 많은 디자인을 찍어냈다. 공장처럼.

영업 부장은 학교처럼 내 디자인을 평가했다.


아... 그때는 진짜로 주먹질 나올 뻔했다.

이때 스트레스로 생긴 역류성 식도염이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힌다.

지금도 그 순간만 떠올리면, 속이 울컥한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넘겼다.

나는 그렇게까지 참았다. 왜? ‘이겨야’ 했으니까.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

그때 내가 하는 일은 디자인을 찍어내는 기계였고 모델러였다.

도면 뽑고, 치수 조정하고, 설계자 눈치 보고...


속으로 자괴감이 들었다.


“아니, 나 석사까지 공부 했다고.”


논문 쓰고, 밤새워 스케치하며 싸웠던 그 시간들이 있었는데.


근데 지금은?

‘제안서용 그림 그려주는 사람’처럼 돼 있었다.

디자인 감각도 사라진 것 같고,

툴만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때 일기를 내용을 보면


“2주간 디자인이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저, 도구를 다룰 뿐이었다.”


이건 무서운 말이다. 디자인이 안 되는 게 아니라,

‘디자인 감각이 사라진’ 거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아무도 그걸 문제 삼지 않았다.


“그냥 그거 해줘요~”
“툴은 잘 다루시네요”


칭찬 같지만, 칭찬 아냐. 디자이너 없어도 되는 구조였다.


그 시절이 참 이상했다.

한편으론 약간의 전성기 있었는데 말이다.






TV 방송도 나가고, 진급도 하고,

회사에서도 분위기 좋고, 사람들도 나를 잘 따랐고.


근데 정작 난 내 역할이 뭔지 몰랐다..

디자이너는 나였는데,

디자인이 내 손에서 멀어지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다 어느 날,

해외사업부 이사님이 매출회의 목적으로 신사업 부서로 오셨다.

회의실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


“신사업부 매출이 저조해.”
“해외 사업부는 이란 수출건으로 150% 상승했는데”
“여긴 뭐.. 이래서 밥벌이되겠어??? 매출이 꼴랑 20억이 뭐야??”


그 회의 이후 신사업부 본 부장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뭐가 바쁜지 며칠 동안 사무실에 잘 나오지 않고 외근 업무가 많았다.


그리고 얼마 후 신사업부 부서 인원들이 다른 사업부로인사발령이 나고 곧 신사업부는 해체됐다.

2년도 안 돼서.




그때부터는 진짜 ‘고립’이었다.

다른 부서 누가 “쟤 써도 돼요” 이 말 한마디 안 해주면,

“쓸모없으니 그냥 나가세요”였다.


내 실력, 경험, 성과?

그런 거 아무 의미 없었다.

결국 누군가가 날 써주느냐 마느냐의 문제.

어쩌면 실력보다 ‘관계’였는지도.


존재 이유가 내 선택이 아니라,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 줄에 걸려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그런 분위기가 진짜 나를 조금씩, 서서히 갉아먹었다.


그렇게 나는, 존재를 증명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회사에 남아 있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너는 지금, 괜찮냐”라고.



(다음 편 : 12화 짧은 동행)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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