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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짧은 동행

디자인팀이 다시 생겼다, 단 6개월 동안

by 마음을 잇는 오쌤


새로운 등장인물


용 과장 (LEVEL 5)
“남다른 배경, 남다른 스케일.”
명품으로 무장한 금수저 출신. 현실 감각은 살짝 오프라인.
근데 신기하게도 해낸다.
로맨스라 우기고, 결국 관철시키는 집념형 드리머.










해외 사업부 발령



나와 지 사원은 해외사업부로 발령이 났다.
연초부터 인력 충원을 계획하던 그 부서에, 우리가 들어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원했던 인력이 ‘우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건 개발 인력인데,
디자이너를, 그것도 두 명이나 충원한다고?”


지 사원은 소프트웨어팀, 나는 하드웨어팀으로 흩어졌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했다.

해외사업부는 이란 수출건으로 바빴다.
우리는 디자인적으로 필요한 요소를 찾아, 재능과 노하우를 갈아 넣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그들에겐 ‘미운 오리’ 일뿐이었다.


개발자들에게 우리는, 그냥 민폐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란 수출은 수금이 되지 않으며 문제가 불거졌다.
수주와 협약 과정이 엉망이었고, 결정적으로 그 모든 보고가 누락된 채 진행된 일이었다.


“개발은 했지만, 돈은 못 받았고, 제품도 팔 수 없었다.
해외사업부 본부장의 ‘독단’이었다.

그 여파는 컸다.


“해외사업부 본부장은 좌천됐고,

회사는 다시 예전 체제로 되돌아갔다.”
사업부 운영은 실패였다.







기술연구소 통합 - 디자인팀 부활



개발자들은 다시 기술연구소로 복귀했고,
우리는 ‘상송’이라는 낯선 동네로 이사했다.
일산 끝자락, 편도 한 시간 반.
이번엔 물리적으로도 ‘주변’이 됐다.


더 혼란스러웠던 건 팀이었다.

디자인팀이 다시 만들어졌다는 말에, 솔직히 기대했다.
정리된 조직, 공식적인 팀, 협업 시스템.
그 모든 게, 우리에게도 필요했다.

구성원은 지 사원, 도 대리, 나, 그리고 한 사람.



합병된 회사 출신의 디자이너, 용 과장이었다.
그는 ‘팀장’이 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이가 많으니까.”


실력도, 리더십도 아니고… 나이.
참 웃기다.
나도 이대로 나이만 먹으면 팀장이 될 수 있을까?


도 대리는 “같이 일하기 싫다” 라고 선언했다.


이유는 묻지 말란다. 그냥 싫단다.

결국 도 대리는 소프트웨어팀으로 빠졌고,
디자인팀은 용 과장, 지 사원, 나. 셋이 됐다.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지 사원은 그나마 뜻이 맞는 동료였다.
하지만 용 과장은 협업 경험이 거의 없었고,
잦은 충돌을 감당해야 했다.

나는 디자인할 때 기준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
사용자를 생각한 흐름,
감각과 논리 사이의 균형.

그런데 용 과장은 달랐다.
자신의 감각과 감정, 거기에 스스로 붙인 의미가 전부였다.

누가 뭐라 해도,
그가 한 번 주장한 건 반드시 끝을 본다.
논리보다 버티기, 설득보다는 반복.


“그게 맞든 틀리든 상관없다.”


그의 제안서는 늘 비슷했다.

“LESS IS MORE.”
“감성.”
“사랑.”

관적 데이터는 없고,
예술가의 감각만 가득했다.

반박하려 하면 이렇게 말한다.

“그게 미학이죠.”

나는 말할 줄 아는 디자이너였고,
그는 듣지 않는 팀장이었다.




분위기는 싸늘해졌고,
지 사원도 점점 거리를 두었다.

용 과장은 팀장의 권한으로
우리 위에 군림하려 했다.


“이게 진짜 팀장이 할 짓인가?”


팀 도서를 집으로 배송해 자기 구독으로 돌리고,
회사 복지 혜택은 공유하지 않고 혼자 누렸다.

디자인팀은 그렇게, ‘팀’이 아니게 되었다.









디자인팀 해체


“그렇게, 삐걱이며 출발한 팀은… 딱 6개월 만에 끝이 났다.”
디자인팀은 해체되고 지 사원은 소프트웨어로 오쌤과 용과장은 하드웨어 팀으로 흡수되었다.

애초에 함께 가는 길이 아니었던 걸까.


“그래도 팀이 있으니 낫다”던 내가
“차라리 팀이 없는 게 낫겠다”라고 느끼기까지,
딱 반년이 걸렸다.


함께였지만, 또다시 나 혼자였다.

소진된 에너지,
갉아먹힌 자존감,
그리고 쓸쓸한 퇴근길.



오늘도 지하철에서 누군가 내 옆에 앉는다.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디자인은 결국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과,
나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함께 만든다’는 말의 무게를,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다음 편 : 13화 회사가 갈라졌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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