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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회사가 갈라졌다.

분리된 회사, 남겨진 질문

by 마음을 잇는 오쌤



연 부장 (LEVEL 1)

“권모술수의 마스터, 끝까지 밀어붙인다.”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목표가 생기면 돌진.

자기 확신에 빠져 방향 수정은 절대 없음.

덕분에 팀원은 탈출러시, 본인은 승진. 인생이 시뮬레이션.



신규법인 출범

디자인팀이 해체된 지 6개월.

끝인 줄 알았던 그날은,

시작이었다

우리는 몰랐던 걸까, 아니면 알고도 외면한 걸까.

그날은 그렇게, 변화의 전조로 기억된다.


그날 아침 회의실은 이상하게 하얬다.

형광등 불빛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오늘부터 신규법인이 출범합니다."
“이름은 JBL입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전에 합병했던 KM사의 전신과의 합작.

겉보기엔 상생, 실제론 분리.

회사는 둘로 나뉘었다.


알고 보니, KM사와의 합병은 흡수도 인수도 아니었다.

국내 점유율 1위를 위한 전략적 제휴,

BLUE LAKE가 운영하고, KM의 모회사와 수익을 나눠 갖는 구조였다.

하지만 그 신뢰는 오래가지 않았다.

KM 모회사는 BLUE LAKE의 경영 방침을 불신했고,

결국 양측은 합의 끝에 ‘신규 법인’ JBL를 출범시켰다.

한국에서, KM의 부활을 꿈꾸는 방식으로.


BLUE LAKE는 신규법인 JBL에 핵심 기술과 인력을 넘겼고,

KM사의 전신은 경영과 방향을 가져갔다.




용 과장은 신규법인으로 편입되었다.

나와 지 사원은 BLUE LAKE에 남았다.

나는 ‘BLUE LAKE 하드웨어 팀장’이 됐다.


팀원은 단 세 명.

기구설계 한 명, 하드웨어 한 명, 그리고 지 사원.

사람들은 ‘왜 남았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우리를 봤다.



용 과장


용 과장은 신규법인의 일원으로 전략 회의도 참석했다.

애플워치 알림을 슬쩍 확인하고, 아이패드로 자료를 넘기며.

하지만… 마음은 이미 떠난 사람 같았다.


그는 늘 말했다.


"난 사소한 것도 공유하잖아. 너도 알지?"
“나는 성격상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스타일이 아니야”


처음엔 달라졌나 싶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그가 말하던 '공유'는 늘, 자신이 먼저 챙긴 후에야 나오는 여유였다.


그리고 KM 일본 본사에서 파견된 JBL 신임 사장이 첫 회의를 소집했다.

편입된 핵심 인력들의 자기소개 시간

한 명, 두 명, 통역을 통해 소개가 이어졌다.

그리고, 용 과장의 차례.



“こんにちは?

新規法人JBL社デザイナー向け課長です。

社長の就任を心からお祝いします。

また、こうして社長を迎えることを光栄に思います。

お任せいただければ最高のデザインをお見せします。“

해석 : “안녕하세요?
신규 법인 JBL사 디자이너용 과장입니다.
사장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또한 이렇게 사장을 맞이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맡겨 주시면 최고의 디자인을 보여드립니다.”


직원들은 적지 않게 놀랐다.

일본어를 못해서 안 한 게 아니었다.

사전에 합의된 내용이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연 부장은 용 과장의 행동에 불만이 있는 듯했다.


“아니 누가 일본어 못해서 안 하는 줄 알아?”
“신임 사장님에게 잘 보이려고 저러는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하지만 아무도 그를 뭐라 하지 않았다.

나도 신경 쓰지는 않았다. 늘 그랬던 사람이니까.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


나는 이렇게, 회사에서 무뎌지는 법을 배웠다.




식민 회사 (주도권 없음)



JBL사 와 첫 회의는 어색하고 조용했다.

아이디어를 내면 돌아오는 말은 이랬다.


“그건 납기가 안 나와요.”
“자재 수급이 어렵습니다.”
“그거 왜 하죠?”


질문은 많았지만, 디자인을 위한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가장 황당했던 회의.


“앞커버 곡률이 왜 이렇죠?”
“사용자의 시선을 고려한 곡선입니다.”
“…근데 이 곡률, 도장 공정에서 불량률이 높아요.”
“그럼 그냥 직선으로 하죠.”


그래, 결국 직선이 됐다.

사용자보다, 공정이 우선이었다.

그건 미적인 패배였고, 감성의 사망선고였다.

그리고 나는, 그게 너무 익숙해진 나 자신이 더 슬펐다.


같이 있던 직원이 속삭이듯 말했다.


“용 과장은 예전엔 이런 걸로 한 시간은 싸웠잖아요…”


나는 웃었다.

웃긴 건지, 서러운 건지 모를 ‘씩-’ 하는 웃음이었다.


나는 팀장이었지만, ‘디자인’을 위한 팀장은 아니었다.


회의실에서, 메신저에서, 누구도 묻지 않았다.

“디자인은요?”

그 말은 내게만 남겨진 질문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JBL사는 ‘같은 회사’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다른 회사를 다니는 기분이었다.

쓸만한 인력은 그쪽으로,

남은 우리는 형식적인 잔류팀이 됐다.


디자인을 하려면 JBL 신규 법인에 요청서를 써야 했다.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인 같은 무언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허가받은 것을 그려야 했다.



디자인은?



용 과장의 말은 여전히 협력적인 것처럼 들렸고,

미소도 여전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항상 ‘공유한다’고 말하면서

왜 혼자서 좋은 건 다 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괜찮은 사람 코스프레’는 어느 날은 진심 같았고,

또 어느 날은 가식 같았다.


"내가 그런 사람이냐?"


그가 내게 했던 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넌 그런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남겨진 나는

매일 회의실에서 외로운 질문을 던졌다.


“디자인은?”


이젠, 아무도 그걸 묻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디자이너였다.


“왜 해야 하죠?”라는 질문 앞에서,


“그게 디자인이니까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회사를 바꾸진 못했지만,

나 자신을 잊게 두진 않았다.


(다음 편 : 14화 네 번째 위기)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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