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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단순하게, 복잡한 사람

나는 슈퍼맨

by 마음을 잇는 오쌤


새로운 등장인물



동팀장 (LEVEL 2)

말은 많지만 정작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많다.

웃는 얼굴로 “아저씨~” 부르며

기분 상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지시도 본인 감정도 전부 즉흥인데, 책임은 정확히 남긴다.

절대 양보 안 한다고 각 세우다가, 위에서 시키면 또 다 한다.

자기는 단순하대서 믿었는데, 알고 보니 감정의 미로였다.









새로운 빌런?


처음엔 무난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동팀장.
말투는 차분했고, 표정도 과하지 않았고,
딱 필요한 말만, 딱 필요한 지시만 했다.

괜찮은 사람 같았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주 부장이 말했다.


“오쌤, 동팀장이 퇴근 전에 처리 안 했다고 하던데요?”


순간, 멍해졌다.
이미 회의 시간에 보고했던 내용이었고,
퇴근 전까지 하라는 말은 없었다.

그 말 한마디로, 나는
‘지시를 어긴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곳에도… 빌런이?
새로운 빌런인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
말을 안 했던 건가?
했는데 내가 놓친 건가?
아니면, 머릿속에서만 말한 셈이었을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나는 틀린 사람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모든 지시를 복명복창했다.
결론이 나면 반드시 다시 확인하고 기록했다.


“동팀장, 이거 이렇게 하라는 말씀이시죠?”
“네, 맞아요.”


그렇게 받아 적은 말들이
내겐 방패였다.

기구팀 문서는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어떻게 하지... 생소하다.”


문서 하나하나가 내 생존이었다.
아무도 날 보호해주지 않으니까.
경력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를 증명해야 했다.
매 순간.

감정은, 더 복잡했다.


동팀장은 가끔 말했다.


“내가 감정조절이 좀 안 돼.”


그 말은 늘,


‘미리 말했지? 나 욱할 수도 있어.’


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회의 중에도, 밥을 먹다가도,
말없이 있다가 툭.


“그 일 말인데…”


그건 대화가 아니었다.
그냥, 자기감정을 나에게 쏟아붓는 시간이었다.

나는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 웃는 척하고,
가끔 죄송하다고 했다.

그런데 속으론 늘 외쳤다.


“나한테 왜 이러는데요, 진짜?”


웃긴 건,
그가 나를 싫어하는 걸
너무 쉽게 티 낸다는 거다.

밥 먹다 말고,
업무 얘기하다 말고,
문득,


“아저씨, 오늘도 늦게 나왔죠?”
“이 아저씨, 좀 고집 있어 보여.”
“이 아저씨 자꾸 자기 생각대로 하려 하네.”


그는 나를 ‘아저씨’라 부른다.

나는 그냥,
내 리듬대로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까지 공격당할 일이었을까?












경고!! 고혈압


어느 날, 그는 물었다.


“혈압약 먹는다며? 수치가 얼만데?”
“누구 때문이야? 중국 이사? 품질팀 명팀장?”


웃으며 넘겼지만,
속으로는 대답했다.


“동팀장, 너 때문이야.”


진심으로.
당신의 그 ‘단순한 듯 복잡한 말투’가,
‘배려인 척 옭아매는 말들’이,
‘감정 다스리지 못하고 부리는 짜증’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지치게 만든다.


이런 사람과 매일 밥 먹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보고를 올려야 한다는 것.

이젠 스트레스 그 이상이다.


그와 대화할 땐
내 말에 감정이 실려선 안 된다.
표정에도, 눈빛에도, 아무것도 묻어나면 안 된다.
자기 검열을 두 겹으로 켠다.


왜냐하면, 그는 말할 테니까.
내가 뭘 했고, 뭘 안 했고,
왜 그게 ‘그의 기준’과 다르며,
그래서 그가 왜 불쾌한지를.

나는 그가 두렵다.
그의 단순한 말 한마디가
내 하루를 완전히 망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하지 않다.
복잡한 감정을,
단순한 말투로 은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단순함’에 지쳐간다.














슈퍼맨이 돼야 하는 이유


잘 나가던 디자이너였던 내가
설계라는 낯선 곳에 와 있다.

내 자아만으로는 버텨내기 어려웠다.


이곳에서 나는 감정을 숨기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슈퍼맨이 되기로 했다.




영화 속 슈퍼맨처럼.
회사에선 클라크 켄트.
퇴근하면, 본연의 나로.

그리고 그렇게,
나 자신을 위로했다.


너무 힘들다.
이곳에… 내가 왜 왔지?



(다음 편 : 19화 말보다 의미가 앞서는 사람)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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