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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말보다 의미가 앞서는 사람

말이 조심스러워지는 사람

by 마음을 잇는 오쌤




주 부장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말이 없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의미를 먼저 던지고, 그 위에 말을 얹는다.

그래서 그와의 대화는,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의도와 감정의 단서들을 해석하는 일에 가깝다.



점심시간 1분 늦게 나온 날이었다.

그날은 팀장이 자리에 없었고, 사람들은 조금 일찍 나갔다.

나는 코트를 챙겨 입고 나오느라 조금 늦었다.

밖에서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와? 빨리 뛰어와!"


말투는 장난스러웠지만, 얼굴엔 웃음이 없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먼저 가세요. 평소엔 안 기다리시면서…"


그 순간,

그의 표정이 아주 작게 일그러졌다.


아, 이건 농담이 아니었구나.


잘못 건드렸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자마자,


“오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그는 나를 휴게실로 데려갔다.

그렇게 1시간 동안,

우리는 ‘그날의 1분‘ 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쌤, 내가 좀 일찍 나오라고 한 게 뭐가 문제야?”

“왜 먼저 가라고 해? 같이 가자고 했는데…”

“네가 그런 반응 보이니까 내가 더 불쾌하잖아!”


나는 당황했다.

’ 내가 더 불쾌하다고???‘

불쾌하다는 말은 한 적 없었다.

그렇게 말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했어. 너 분명 불쾌하다고 말했어. 난 들었어.”


나는 그 순간, 완전히 멈췄다.

그가 들었다면, 내가 말한 것이다.

그에게 ‘사실’이란,

그가 느낀 감정의 기억으로 구성된다.


그는 ‘말’보다,

기억된 감정을 믿는 사람 같았다.

그게 정확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가 그렇게 느꼈다는 사실이다.


그는 내가 “변했다”는 말을 쓰는 것도 싫어했다.

아예 쓰지 말라고 했다.


"누구나 변해. 오쌤도 변하고, 나도 변하고.

그러니까 그걸 문제 삼지 마."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럼 왜 네 감정은 나에게 이렇게 무겁게 쏟아지는데,

나는 왜 너의 말 하나하나에

스스로를 변호해야 하지?”


이야기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는 예전 소프트웨어 술자리에서

내가 늦게 도착한 일도 꺼냈고,

상무님이 기다렸던 적도 들춰냈다.










그날 이후,

나는 주 부장의 대화에서 감정을 하나씩 덜어냈다.

‘그가 듣고 싶은 말’을 찾으려 애썼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삼켰다.


그의 대화는 질문이 아니라 진단이었고,

나는 점점, 해석당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날 이후,

나는 주 부장의 대화에서 점점 감정을 뺐다.

‘그가 듣고 싶은 말’을 찾으려 애썼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삼켰다.


그의 대화는 질문이 아니라 진단이었고,

나는 점점, 해석당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제는 그 말에 감정을 담지 않는다.

나를 지키기 위해

천천히 정리하기로 한다.


그게,

내 감정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술 프다...



(다음 편 : 20화 오쌤, 너는 책을 너무 많이 봐 )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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