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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나누고 싶었지만, 그는 늘 정리했다

답정너, 근데 왜 물어봐?

by 마음을 잇는 오쌤






“근데 오쌤, 너는 결국은…

너무 자기 안에서 결론을 내려.”


그가 말했다.

늘상 회의 끝나고 커피 타러 가는 길,

나는 그저 “이번 프로젝트는 좀 애매해요”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 말에 왜,

그렇게까지 해석을 덧붙이는 걸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닌데.

근데 오쌤은 뭘 말할 때 항상 그 틀이 있어.

틀 안에서 결론을 내고, 딱 그렇게 가두는 느낌이랄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수록

그 말조차 다시 정리되어 돌아올 게 뻔했으니까.


그는 늘 그랬다.

무언가를 같이 이야기하자고 꺼내면

그는 ‘듣기’보다 ‘정리’를 먼저 했다.


“그러니까 오쌤은 지금 좀 지친 것 같아.”

“이건 오쌤이 감정적으로 예민해서 그래.”

“결국 그렇게 생각하는 성향인 거잖아.”


말할수록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가

결국 본인이 답하고 끝냈다.


내 말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고,

결국 나는 점점 말을 줄였다.





나누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랬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니까.

함께 버티는 사이니까.

서로 다른 관점을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말 사이의 여백을 못 견디는 사람이었고,

나는 말을 덧붙일수록

왜곡된 내 얼굴을 보게 되는 사람이 되어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건 말해도 괜찮을까?” 가 먼저 떠올랐고,

결국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대화 중간마다

말하는 내가 아니라,

그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 나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그 시선이 불편했다.


“그냥 말한 건데요.”

“의미 없었어요.”


나는 그렇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왜 이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그냥 두질 못할까.”


그와의 대화는 결국 나를 지워갔다.

나는 점점 말이 줄어들었고, 결국 침묵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을 배우게 됐다.


그리고 어느 날, 출근길 사무실 문 앞에서 스스로 다짐했다.

이 다섯 가지는, 무너지지 않기 위한 내 생존법이었다.


1. 통제 가능한 일 만 하겠습니다.

2. 계획대로 살겠습니다.

3. 사실만 말하겠습니다. (당당하게)

4.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겠습니다.

5. 문제를 만들지 않겠습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고, ‘그냥 존재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와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는 것.

그게 내가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선이었다.


(다음 편 : 22화 나는 회사의 미래를 본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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