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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나는 회사의 미래를 본다.

이런 조직도 있구나...

by 마음을 잇는 오쌤


디자인을 떠나, 지금은 설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도 똑같다.

아니, 어쩌면 더 이상하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변하지 않을까?



나란 놈은 분석적인 인간이라

기구 설계와 잘 맞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안 맞았다.







디자인을 하면서,

설계의 벽에 부딪친 적이 많다.

그래서 기구설계를 배워보고 싶었다.

디자인을 더 잘하고 싶어서.


디자인만 하던 손으로,

이젠 구조를 짓고 부품을 설계하고 싶었다.




근데 내가 뭘 기대했던 걸까.

문제는, 그곳이 ‘한 테라 노인정’이었다는 사실이다

도면보다 회상이 더 많은, 그런 곳이었다.


대기업인 효성도 철수했던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벤처기업.

그 자리에 지금 계신 부장님들은

한 테라의 매출 신화를 함께 만든

성공 역사의 산증인들이다.


“그래서 다들 자존심이 센 건가??”








기구팀 업무는 처음엔 생소했다.

용어도, 툴도, 프로세스도.


하지만 진짜 적응이 어려운 건

‘도면이 아니라 조직문화’였다.


이곳은 이상하리만큼 폐쇄적이다.

나이 많은 분들이 많아서 그런 걸까.

여긴 도면은 자주 오가지만,

대화는 없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보다 ‘범인’이 먼저 호출된다.


“누가 그랬어?”


문제는 있지만

잘못한 사람은 없다.


유체이탈 화법,

소통 대신 눈치,


그래서 회의보다

표정 읽기가 더 중요한 스킬이 됐다.


그렇게 오늘도

일은 슬쩍 덮이고,

원인 없는 결과만 남는다.


여기서의 설계 프로세스는 이렇다.


팀장이 3D 모델링을 하고,

우리는 그걸 받아 도면을 그린다.

발주하고, 조립하고, 테스트하고, 평가받고 합격되면 제품 등록까지 한다.


중간에 뭐 하나라도 꼬이면?

모델링한 팀장은 멀찍이 있고,

도면 그린 사람이 혼난다.




책임은 항상 아래를 향한다.


그럼에도 월급은 잘 나온다.

젠테라라는 든든한 미국 고객이 있기 때문이다.


위기감 없는 회사.

도전 없는 분위기.


그 안에서 나는

‘굴러온 돌’이었고,

점점 ‘튀는 돌’이 되어갔다.


이상한 건 그뿐이 아니다.

문제 해결보다 회피가 먼저,

기록보다 기억에 의존하고,

회의보다 뒷말이 많다.


한 번은 복잡한 설계 변경이 있었고,

타 부서와 팀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 자료를 만들어 공유했다.


돌아온 피드백은 이랬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그 시간에 다른 일 했으면 좋았잖아.”


그 자료가 팀에 도움이 되더라도,

다음에 누군가 또 요구할까 봐 배포를 막는다.


예외를 만들지 않기 위해,

예외를 짓밟는 문화.

그게 이곳의 룰이었다.


여기서는 창의적인 건 환영받지 않는다.

창의는 변수고, 변수는 귀찮음이다.

그러니 잘라낸다.

적당히,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그런가 먼저 한 테라를 경험한 주 부장 나에게

“책과 같은 이상적인 것은 이곳과 맞지 않는다”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고민했다.

내가 여기에 맞춰야 할까?

아니면 내가 이곳을 바꿔야 할까?


지난 직장 경험을 돌이켜보면

답은 간단하다.


“못 바꾼다.”




그래서 나는 바꾸는 걸 포기했다.

대신, 관찰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 콘텐츠로,

내 그림으로,

내 언어로 브론치 스토리에 기록해 두기로 했다.


비록 그 결과가 긍정적이지 않을지라도 나의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누군가는 보고 공감할 테니까.










이곳에서 배운 건

기구 설계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둔감한 조직에서도,

예민한 사람은 끝까지 예민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


그 예민함을 어디에 쓸지는

내 몫이다.





조직이 바뀌길 기대하는 대신,

나는 내가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이제는 안다.

기구 설계를 배운다는 건,

단지 부품을 설계하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의 다음 챕터를 조립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조직도 있구나…



(다음 편 : 23화 지금은, 떠나는 중입니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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