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이면 힘든 회사
그날은 퇴근 40분 전이었다.
그가 나를 지나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음… 커피 한잔하지.”
그 말에는 지친 얼굴이 묻어 있었다.
나는 잠시 쉬고 싶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도 있었다.
처음엔 그랬다.
그의 말은 느렸고, 조용했고,
별다른 주제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일 이야기, 사람 이야기, 회사 이야기…
그러다 문득,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쌤은 책을 너무 많이 봐.
그게… 이 회사에선 오히려 적응을 방해할 수도 있어.”
나는 웃지 못했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농담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진지했고,
그 말은 곧 ‘단정‘처럼 들려왔다.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책을 많이 보면, 적응을 못한다?
나는 되묻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생각했다.
책은 내게
이해의 도구였고,
질문하는 훈련이었고,
나 자신을 복구하는 언어였다.
버텨야 할 때마다 펼쳐든 페이지였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돌아가 찾던 좌표였다.
그런데 그건,
이 회사에선 ‘독’이 된다니…
그는 말했다.
“책은 이상적이고 발전적인 얘기만 하잖아.
근데 여기는 그런 세상과 거랑 거리가 멀어.”
나는 그 말에 담긴 ‘여기’를 생각했다.
이 회사. 이 조직. 이 분위기.
"아래 직원들은 발전적이거나 이상적이면 안된다.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
그는 지금,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 여기서 그런 이상적인 태도는 통하지 않는다 ‘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묘하게,
그 말은 마치
“내가 뭔가 과한 사람, 낯선 사람‘처럼 들리게 만들었다.
그 순간, 작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책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사람은 책을 읽고, 마음을 다잡고,
결국 다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나에게 책은 망가진 마음의 회복이었다.
그리고,
그 책으로 나는 버텨왔고,
그 책으로 나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
나는 질문을 멈춰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여기선 묻는 사람이 아니라,
따르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듯한 분위기.
그는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사람이었고,
나는 그에게 빚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용히,
아주 조용히,
속으로 단 한 문장을 썼다.
“나는 책을 많이 봐서 문제인 게 아니라,
책을 보지 않아도 괜찮은 조직이 문제다.”
(다음 편 : 21화 나누고 싶었지만, 그는 늘 정리했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