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고, 그리니 기회가 왔다
처음엔 그저 그런 기회였다.
‘전주대학교 실기대회’—정식 입시는 아니고, 일종의 대외 행사였다.
담임선생님이 “한번 나가볼래?” 하고 슬쩍 권유했을 때도,
나는 별 기대는 없었다. 그저 “내 그림이 실전에는 어떨까”
뭐,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입선.
입선이라고 해도, 예상보다 훨씬 높은 점수였다.
나는 그 종이를 받아 들고 잠시 멍해졌다.
"어, 나 진짜 되는 건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 하나.
“이거… 진짜 해볼 수 있는 건가?”
그때부터 내 방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돕기 위해 실업계를 선택했고, 그림은 그냥 ‘그나마 잘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내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현실처럼 다가온 순간이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대학에 가려면 입시미술학원을 다녀야 했고, 한 달에 45~50만 원이라는 수강료는 우리 집 형편에선 꿈같은 숫자였다.
“아, 그냥 여기까지인가 보다.”
운이 좋았던 작은 해프닝쯤으로 치부하려는 순간, 담임선생님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내 아는 동생이 학원을 하는데… 가서 상담 한번 받아보지 않겠니?”
그렇게 찾아간 길동의 한 학원에서, 내 인생의 두 번째 미술 선생님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삼하나고 담임선생님 소개로 왔습니다.”
원장님은 내 얘기를 듣더니 잠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림 좋아한다며? 좋아하는 건 해야지. 수업료는 걱정하지 말고 와서 그려.
하지만… 다른 애들에겐 말하지 마.”
그 한마디가, 내겐 구원의 밧줄 같았다.
나는 고마움에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일찍 와서 학원 청소를 하고, 남들보다 늦게 나가며 학원 정리를 했다.
선생님이 시킨 적은 없었다.
그냥 내가 스스로 했다.
어딘가 미안했고, 동시에 감사했으니까.
지우개 가루를 쓸고, 이젤을 정리하고,
그 작은 행동들이, 내 마음의 빚을 갚는 방식이었다.
앉아서 그리고, 또 그리고.
연필심이 닳아 없어지고, 새끼손가락 손톱이 종이에 닳아 사라질 때까지.
하루 여덟 시간, 쉬는 시간도 잊고 그렸다.
종이에 빵꾸가 나기도 했다.
그게 뭔가 대단한 의미는 아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그 시절의 나는 진심이었다.
그림을 ‘사랑했다’ 기보단, 그림에 매달렸다.
어느 날 원장님이 내게 말했다.
“넌 성실해서 좋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열 배는 더 그렸다.
원장님도 더 열정을 쏟아 나를 가르쳐 주셨다.
나는 가진 게 없었다.
집도, 돈도, 배경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넌 괜찮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게 곧 살아갈 이유가 됐다.
그 시절,
내가 배운 가장 큰 진리는 이거다.
재능보다 꾸준함. 감각보다 엉덩이.
디자인은 앉아 있는 시간 위에 세워졌다.
그림은 결국,
시간이 그려주는 선이었다.
(다음 편 : 5화 내가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