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서클 D-Boys
처음엔 나 혼자였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업 끝나고도 혼자 남아서 그림을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아도 정물과 자리를 정리했다.
그게 내 자존심이었고,
누구에게도 티 내지 않는 방식의 고마움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학교 친구들이 “너 어디 학원 다녀?” 하고 묻더니
하나둘씩 내가 다니는 학원으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입시 미술학원 한쪽 구석,
우리는 자연스럽게 모이게 됐다.
스터디 이름은 D-BOYS.
"DESIGN BOYS"
불량 서클 같은 이름이지만,
내용물은 성실, 노력, 그림뿐인 착한 무리였다.
정원은 다섯 명.
다들 돈을 벌기 위해 낙오자처럼 학교에 들어왔지만
그림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아이들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중심이 됐다.
대단한 리더십을 발휘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우두머리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를 보고 따라온 아이들이 있었고
내가 움직이면 같이 따라 움직였다.
학원에서 내 그림은 점점 눈에 띄었다.
선생님들도 인정했고,
다른 반 친구들도 한두 마디씩 말을 걸어왔다.
“야, 너 그림 되게 잘 그린다.”
“그거 어떤 연필 써?”
“스케치 저렇게 하는 거 어디서 배웠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몰려오는 감각.
처음이었다.
그림이 나를 앞세우고 있다는 게.
나는 그걸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겼다.
내가 만든 분위기 안에서
친구들이 열심히 그리는 걸 보며 뿌듯했다.
어릴 적엔 늘 혼자였고,
누군가를 이끄는 역할은
늘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내가 앞장서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얘는 뭐든 시키면 해온다.”
선생님들의 눈에 나는
그나마 믿을 만한 학생이었고,
그 신뢰가 부담이면서도
나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실업계에서 공부 잘해봤자 뭐 해”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 말에 속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었다.
내 방식으로, 내 속도로.
그때 나는 철이 들었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오쌤’이라는 사람이
천천히 만들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세상은 몰랐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림이, 나를 그려주고 있다는 걸.
(다음 편 : 6화 끝을 가봐야 안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