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사탕의 기쁨

요양원 이야기

by 하이

"아이고, 우리 애기 너무 잘했네" 의사 국가고시 합격 후, 요양원 할머니들께 따뜻한 축하를 받았다. 나는 시골에 있는 작은 요양원의 큰 딸이다. 요양원에는 평균 연령 95세, 9분의 할머니가 계신다. 그중 몇몇 할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외갓집 동네의 할머니들이시다.

외할머니댁 바로 윗집에 사시던 은영할머니는 (여기서 은영은 할머니 성함이 아니고 손녀이름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마당에 뛰어놀면 매번 업어주셨다면서 업어준 보람이 있다면서 너무 장하다고 하신다. 뒤돌아서면 여기가 어디냐고 하시고 내가 의사가 된 걸 잊어버리시지만 다시 이야기할 때마다 너무 장하다고 해주신다. 좋은 의사가 되게 기도도 해주신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축하는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데 올 초 국시가 끝나고 카페에 앉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신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어느덧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싶은 계절로 바뀌었고 인턴을 시작하려 짧게 자른 단발머리도 금세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가 되어버렸다. 사직 후 요즘은 요양원에서 할머니 식사를 준비하고 말벗도 해드리면서 부모님을 도와드리고 있다. 매일 할머니들께 손을 흔들며 손인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회장님!!! 내가 누구여?”
"얼굴은 아는 이인디”
“백례 손녀 아니여”
“아이고, 그렇구먼 허허허”
“백례가 누구여, 끝으머리 사는 이 아니여”


매번 비슷한 레퍼토리로 대화를 하고 할머니한테 다른 맛의 막대사탕 2개를 한 번에 드린다. 사과맛 하나, 딸기맛 하나 아니면 초코나 바닐라맛 딱히 정해진 규칙은 없고 그냥 드리고 싶은 맛 2가지를 드린다.
할머니는 항상 사탕을 받고 “아이고, 같이 먹지 못하고선”이라고 하나만 달라고 하신다. 그럼 나는 “할머니 다 잡수셔” 하면서 손사래를 친다.

백례는 우리 외할머니이다.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갓집에 놀러 가면 동생이랑 같이 회장할머니 집에 항상 놀러 가곤 했다. 회장할머니는 우리 외할머니의 베프, 베스트 프렌드, 가장 친한 친구이셨다. 그래서 그런 지는 몰라도 어린 우리도 회장할머니를 외할머니처럼 느끼고 따랐나 보다.
어렸을 때라 다 기억이 나는 건 아니지만 회장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할머니가 벽장 속에 있는 서랍에서 사탕을 한 줌 꺼내주시던 기억은 어렴풋이 떠오른다.
할머니가 사탕을 드시면서 좋아하시는 표정을 보면서 7살의 나도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탕을 먹었겠지? 하고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할머니가 주시는 사탕을 받고 얼마나 행복해했을까, 슈퍼 하나 없는 외갓집 동네에서 달달한 간식들이 가득 차 있는 보물창고 같은 회장할머니네 집을 얼마나 많이 들락날락했을까 생각을 해보니 웃음이 지어진다.
회장할머니는 상상이나 하셨을까.. 7살의 내가 이렇게 30대 중반이 되어 할머니에게 사탕을 드리는 모습을

올해 회장님은 99세가 되셨다.

생각해 보니 매년 100살까지 사시라고 하면 환장하것네라고 하셨는데 올해부터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도 해봐야겠다.

막대사탕 껍질은 여전히 까기가 어렵다. 2024년에도 작은 사탕 껍질은 왜 이리 까기가 어려운 지…… 만들 때 조금만 약하게 껍질을 동여매어 회장님이 사탕 껍질 까는 걸 조금 덜 기다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회장님 드리려고 사탕 껍질을 까고 있던 중 옆에 계신 이금할머니가 뉴스를 보시더니 나보고 언제부터 출근하냐고 하셨다. "그러게 말이여 할머니, 내가 출근해서 첫 월급 타면 맛있는 거 사드릴게, 뭐 드시고 싶으셔?" 할머니는 짜장면이 좋다고 하셨다. 언제 출근할지 기약이 없지만 월급을 타면 요양원 할머니들에게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한 턱 제대로 사드리고 싶다. 할머니들께 받은 무한한 축하에 비하면 아주 작은 보답이지만 말이다.

어느 날은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이 든 채로 하루를 보내기도 하지만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할머니들과 하루하루 잘 보내봐야겠다. 그냥 시간을 보내기엔 바람도 선선하고 날이 너무 좋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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