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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Jan 06. 2021

코로나 시대 카페 사장의 특권

feat. 코로나 2.5단계 : 카페는 포장, 배달만 가능함


  코로나 19 때문에 카페에서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요즘, 나는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있을 수 있다.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도 있고, 책을 볼 수도 있으며, 노트북을 켜놓고 밀린 작업을 할 수도 있다. 그뿐인가. 옆 가게에서 떡볶이를 사 와 먹을 수도 있고, 나의 최애 빵집에서 빵을 사다 펼쳐놓고 먹을 수도 있다. 배달음식을 시켜먹어도 된다. 마시고 싶은 음료는 그때그때 취향에 맞게 더 달게 하거나 덜 달게 해서 먹을 수 있다. 한 잔 더 먹고 싶으면 그냥 먹으면 된다.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다. 이 카페는 내 카페이므로. 나는 카페 사장이다. 







  원래 나는 커피를 먹지 않는다. 나는 커피를 내 돈 주고 사 먹지 않던 사람이다. 커피가 맛이 없었다. 카페에서 먹는 커피든, 커피믹스든 별로 내키지 않았다.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난 이미 삼십 대 중반이 되었고, 커피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거절할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한 잔 먹는 것 말고는 내 의지로 나서서 커피를 먹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럼 카페에 가서 뭘 마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주로 녹차라떼나 코코아, 홍차, 아니면 과일주스나 스무디 같은 것들을 먹었다.


  그런 내가 2021년 겨울, 카페 사장이 되어 커피를 팔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커피를 좋아했으면 이렇게까지 공부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커피를 안 먹는 내가 커피를 팔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해져서 심도 있게 공부를 했다. 바리스타 자격증부터 시작해서 라떼아트, 로스팅, 브루잉, 센서리도 배웠다. 나도 배우면서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나는 커피를 먹지도 않는데.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도 어이없어했다. 아니, 커피를 먹지도 않는 사람이.


  커피를 배우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커피는 과학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맛'이라는 자체가 주관적이고, 또 더더군다나 커피는 선호음식이므로 개인의 취향과 컨디션을 크게 탄다고 생각하지만, 커피의 맛은 객관적이어서 개인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즉, 맛있는 커피는 그냥 맛있는 커피고, 맛없는 커피는 그냥 맛없는 커피라는 사실.


  센서리(sensory) 훈련을 하면서 커피의 맛을 평가하는 걸 배우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커피 맛을 하나하나의 지표와 점수로 표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신맛은 어느 정도인지, 고소함은 또 어느 정도인지, 향은 어떤지, 바디감은 묵직한지 가벼운지, 쓴맛과 탄맛은 어떤지, 떫은맛은 없는지, 풋내는 안 나는지. 그 정도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고, 점수가 높을수록 좋은 커피, 맛있는 커피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커피를 먹지 않는 나는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커피의 맛을 평가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음~ 맛있는데요?"라고 말할 때 나는 "이건 달콤한 향이 굉장히 강하네요", 혹은 "이건 어제 먹었던 것보다 조금 더 포도 같은 신맛인 것 같아요"라는 식이었다. 덕분에 다들 가장 어렵다고 하는 센서리 과정을 비교적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온갖 커피의 맛을 보았다. 원두의 종류는 물론, 로스팅의 정도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졌고, 커피를 내리는 종류나 방법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졌다. 같은 커피인데도 뜨거울 때의 맛과 식어가면서의 맛이 또 달랐다. 어떤 커피는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었고, 어떤 커피는 얼음을 넣어 차갑게 먹어야 맛있었다. 같은 고소함이라도 견과류의 고소함과 초콜릿의 고소함이 달랐고, 과일향이 나는 커피와 꽃향이 나는 커피가 달랐다.


  그러면서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커피가 맛이 없다며 안 먹었던 것은 내 입맛이 초딩 입맛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커피 자체가 맛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그렇게 맛없는 커피만 팔았다는 사실.

  이 엄청난 깨달음 이후 여기저기 카페에 가서 커피를 먹어보면서 나는 내가 어떤 커피를 팔아야 할지를 그려나갔다. 최종 목표는 이것이었다. 커피를 안 먹는 내가 먹어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커피.


  나의 카페에서는 기본 아메리카노를 2종류로 나누어 판다. 고소 커피, 산뜻 커피. 커피를 안 먹는 내가 먹어도 괜찮은 커피여야 하므로, 나는 직접 로스팅을 하고(이를 위해 최신형의 가장 비싼 로스터기를 내질렀다), 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기 전, 각각의 커피 두 잔을 내려 맛을 본다. 덕분에 나는 내 인생에 '모닝커피'라는 단어를 들여놓게 되었다. 그것도 두 잔이나.

 






  손님들은 걱정이 많다. 내가 커피를 내려주는 동안 자꾸 말을 걸며 걱정해준다.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많이 없어서 어떡해요. 커피가 이렇게 맛있는데. 옆 가게 사장님들도 자꾸 내 가게에 와서 걱정을 해준다. 하필 이런 때 오픈해서 많이 힘들죠. 나는 '매우 친절함'을 장착한 카페 사장이므로, 그분들의 걱정에 감사함을 표하며 맞장구를 친다. 네, 맞아요. 그래도 이것만 지나가면 이제 점점 좋아질 일만 있겠죠. 이렇게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그런데 사실, 나는, 지금 이 상태가 꽤 흡족하다. 장사를 해 본 적 없는 내가 일을 배우고 생각하고 적응하기에 이만큼 좋은 시기가 어디 있을까. 오픈하자마자 밀려드는 손님들을 감당하지 못한 채, 커피맛이고 뭐고 그냥 휩쓸려 지나간다면, 아마 나는 두고두고 후회하고 속상해했을 것 같다.

  물론 월세도 내야 하고 관리비도 내야 하지만, 원래 장사 시작하고 처음 6개월은 '배우는 값'이라 생각하고 마이너스를 감수해야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코로나 핑계를 댈 수 있고, 온 동네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주고 신경 써주고 있으니, 더 바랄 것이 무엇인가.  


  나는 내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한다. 코로나 때문에 요즘 카페에 갈 수가 없어 사람도 못 만나고, 책도 못 보고, 커피도 여유롭게 못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지금 이 세상에서, 나는 사람도 많이 만나고, 책도 실컷 보고, 커피도 내가 먹고 싶은 걸로 골라서 음미하며 마신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일회용 테이크아웃 컵에 커피를 먹지만, 나는 예쁜 잔에 커피를 담아 마신다.

  화분에 물을 주고,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매일 오는 몇몇 손님들과는 벌써 절친이 되어 만날 때마다 수다를 떤다. 먹고 싶은 것들을 먹고, 마시고 싶은 것들을 마신다. 보고 싶은 책을 보고, 연락하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을 한다.


  (점심시간 이후로는 특히 여유로운데, 나는 이 시간에 새로운 커피콩으로 실험 삼아 로스팅을 해보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셔본다.

  사실, 오늘 로스팅은 망했는데, 그래도 한 번 맛이나 보자는 생각에 핸드드립을 해서 먹었더니, 역시나 맛이 없었다. 그런데 한 손님이 그 모습을 보고 좋아 보였던지, 다음에는 자기도 핸드드립으로 주문해서 먹어봐야겠다고 하셨다. 나는 케냐 AA를 추천드렸고, 우리는 좋은 날, 좋은 때 함께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오는 손님들도 전부 테이크아웃 손님뿐이라 시간도 많아서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꿈꿀 수 있다. 앞으로 가게를 어떻게 꾸며나갈지, 어떤 메뉴를 선보일지, 이벤트는 어떤 걸 하면 좋을지 구상하며 설렌다.


  이 카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카페다. '착석 금지', '외부음식 반입금지'는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노트북을 켜놔도 되고, 실컷 수다를 떨어도 된다. 반려동물도 출입 가능하다. (아직 내 치와와를 데려온 적은 없지만.)

  이 카페는 심지어 따뜻하다. 딱 들어왔을 때 따뜻한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어서 난방에 신경 썼더니, 손님들이 자꾸 난방비 걱정을 해준다. 내가 해야 할 걱정을 대신해주는 이 느낌이 또 꽤 괜찮아서 나는 그냥 마음 놓고 따뜻하게 지내기로 했다. 매일 같이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고 있지만 덕분에 나는 따뜻한 카페에서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곳은 나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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