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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Feb 01. 2021

카페 사장의 발바닥


  발바닥이 부르텄다. 


  밤에 자다가 발로 이불을 잡아당기는데 뭔가 낯설었다. 이불이 까칠까칠한 기분. 이불이 왜 까칠까칠하지. 자다 말고 일어나 이불을 보니 이불은 늘 덮던 그 이불이었다. 아무 이상 없었다. 다시 누워서 발로 이불을 잡아 끄는데 역시나 거친 감촉이 느껴졌다. 일어나 불을 환하게 켜고 이불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봤는데, 역시나 이불은 멀쩡했다. 내 발에 뭐가 묻어서 그런 건가 싶어 발바닥을 보니, 세상에, 발바닥이, 글쎄 발바닥이, 내 발바닥이 온통 부르터 있었다. 


  나는 다급히 발을 다시 깨끗이 씻었다. 뭐라도 발라야겠는데 나는 원래 피부가 별로 건조한 편이 아니어서 우리 집에는 이렇다 할 바디로션도 없었다. 나는 화장품을 뒤져서 처박혀 있던 수분크림을 꺼내 발에 발랐다. 아니, '발랐다'는 표현보다는 '뒤덮었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 같다. 나는 발에 수분크림을 뒤덮었다. 

  이대로 다시 누우면 수분크림을 뒤덮은 보람도 없이 크림이 다 이불에 묻을 것 같았다. 나는 발뒤꿈치만으로 조심조심 걸어 주방으로 가서 비닐랩을 꺼내 발을 칭칭 동여 감았다. 내용물이 너무 많아 흘러내리는 샌드위치처럼 수분크림이 자꾸만 삐져나왔지만, 나는 손으로 다시 밀어 넣으며 랩을 감고 비닐팩으로 발을 쌌다. 


  다음날 가장 건조한 피부용 바디로션을 샀다. 내가 이런 걸 사는 날이 오는구나. 이렇게 3일째, 나는 발에 크림을 뒤덮고 잠을 자고 있다. 그러나 아직 내 발바닥은 매끈해지지 않았다. 나는 다음날이 되면 또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일을 하는 모양이다. 


  운동을 매일 해도 발바닥은 멀쩡했는데, 카페일을 한 지 40여일 만에 발바닥이 부르텄다. 내 발바닥은 항상 맨질맨질했어서 다른 사람들이 발바닥 관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대체 그 발바닥은 어떤 발바닥이길래'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발바닥이 그 발바닥이 되었다.







  카페 일은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 카페 사장은 여유로운 직업이 못 된다.  


  아침에 출근하면 그때부터 약 1시간 동안은 전쟁이다. 가게 밖 빗자루질하고, 가게 안 청소 및 소독은 물론, 기계 점검을 해야 한다. 작동이 잘 되는지, 전기는 잘 들어오는지, 뜨거운 물은 잘 나오는지, 냉장고는 밤새 별 일 없었는지를 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커피다. 커피머신 세팅을 하고, 원두 상태를 보아야 한다. 원두는 공산품이 아니라서 같은 원두라도 매일매일 상태가 다르다. 그래서 아침마다 커피를 추출해서 직접 맛을 보며 조절해야 한다. 어떨 때는 이 조절에서만 한참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원두는 로스팅 상태, 기후변화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카페는 기본 아메리카노가 두 종류니까 그걸 두 번 해야 한다. 그게 끝나면 포스기에 개점 처리를 하고, 그날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틀고, 매장에 불을 켜고, 문을 연다. 


  냉장고 상태는 하루 종일 계속 점검을 해야 한다. 우유가 충분한지, 생크림 유통기한은 많이 남았는지. 우리는 샐러드와 브런치 메뉴도 있으니 그 재료들의 상태도 계속 확인을 하고 조금씩 손질해 놓아야 한다. 


  손님이 다녀가면 테이블을 소독하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3 테이블 이상의 손님이 한꺼번에 나가면 설거지옥이 열린다. 해도 해도 끝없이 밀려드는 설거지. 그 와중에 테이크아웃해달라는 손님이 있으면 설거지를 하다 말고 고무장갑을 벗고 주문을 받고 커피를 뽑아야 한다. 뜨거운 라떼를 위해 우유를 스팀하고, 차가운 라떼를 위해 얼음을 붓는다. 테이크아웃 컵을 손님에게 건네주고 나면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하던 설거지를 계속 한다. 보통은 설거지가 끝나기 전에 손님이 다시 들어오고, 다시 주문을 받고, 다시 커피를 뽑고, 다시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그러는 중에 다른 테이블이 또 나가면 끝인사를 하고 달려가서 테이블을 치우고 닦고 돌아와 설거지 더미 위에 또 설거지를 쌓고 설거지를 한다. 

  브런치 메뉴가 한번 다녀가면 설거지가 더 많아진다. 컵만 닦으면 금방 끝나고 건조대에 자리 차지도 덜 하는데, 그릇들과 포크 나이프, 쟁반은 닦는 것도 오래 걸리고 건조대에 자리 차지도 많이 한다. 

 

  중간중간 바깥에도 나가봐야 한다. 누가 우리 가게 문 앞에 빈 음료수 병을 떨어드리고 가지는 않았는지, 형형색색의 전단지가 뿌려져 있지는 않은지. 화분에 물을 주고, 화분 상태는 괜찮은지, 떨어진 잎은 없는지를 본다. 


  눈이나 비가 오면 긴장해야 한다. 혹시라도 입구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없도록 빨리 발판을 내어놓고 우산꽂이를 꺼낸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신발에 물기를 머금고 들어오니 한번 드나들면 매장 안에 온통 시꺼먼 물자국 발자국이 남는데, 그걸 그때그때 닦아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손님이 들어오면 다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고, 손님이 나가면 테이블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설거지를 하다 말고 손님이 들어오면 고무장갑을 벗고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고, 다시 설거지를 하고...


  지금이야 코로나 시국이라 그래도 비교적 여유롭게 손님맞이를 하는 편이지만, 이 코로나가 끝나고 여름이 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사실 그래서 섣불리 메뉴 추가를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나는 직접 로스팅을 하므로,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더 많이 하는 편이다. 볶은 원두가 얼마나 있는지를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오늘 볶은 원두로 오늘 커피를 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스팅 후 최소 3~4일, 보통 일주일은 놔두었다가 커피를 내려야 커피 맛이 올라오기 때문에, 다음 주에 얼마나 팔지를 예상해서 원두를 볶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원두는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로스팅할 때도 그냥 할 수 없다. 커피콩이 가장 취약한 게 습도이므로 눈이 오거나 비가 올 때는 가능한 로스팅을 피한다. 똑같은 온도로 커피콩을 볶아도 바깥 기온이 높으면 커피콩이 조금 더 많이 볶아지므로 그것 또한 신경을 써주어야 한다. 

  다음 주에 팔 커피를 예상해서 어느 정도의 양으로 커피를 볶아 놓으면, 따로 원두만 구매해가는 손님들이 원두를 사기도 하는데, 그러면 다시 또 원두를 볶아놓아야 한다. 


  밤이 되면 이번엔 청소 지옥이 열린다. 바닥을 다 쓸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한다. 닦아 놓았던 테이블을 다시 닦고, 의자도 닦는다. 걸레를 빨고, 머신 청소를 하고, 그라인더에 담겨 있던 원두를 빼고 청소하고, 시럽에 꽂힌 펌프를 빼서 닦고, 행주 더미와 린넨을 빤다. 버릴 것들을 버리고, 쓰레기 정리를 한다. 

  내일 장사 준비도 해야 한다. 냉장고를 다시 또 확인한다. 재료 상태를 확인한다. 내일 팔 원두도 준비해놓는다. 그외 재료들도 한번씩 훑는다. 테이크아웃 컵은 넉넉히 있는지, 쓰기 편한 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는지. 




  기본적인 카페 일은 이 정도인데, 나는 성격 탓인지, 조금 더 돌아다니는 편인 것 같다. 가만히 앉아있을 때는 책을 보거나 재료 주문을 하거나 브런치에 글을 쓸 때인데, 모든 것이 정리된 상태에서 카운터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 행주로 주방 작업대를 닦고, 밖에 세워놓은 배너가 쓰러지지 않았는지 보러 나갔다가 입구에 떨어져 있는 휴지를 주워 들어오고, 현재 음악 볼륨 상태가 괜찮은지 각각의 스피커 앞을 다녀보며 직접 들어본다. 

 

  우리 가게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 안이 다 들여다보이는데,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가 밖에서 다 보이는 모양인데, 옆 가게 사장님들을 만나면 항상 나에게 그런다. 대체 뭐가 그렇게 항상 바쁘냐고. 지나다니면서 보면, 내가 계속 돌아다니면서 뭘 하느라 바쁘고, 앉아서도 계속 뭘 하느라 바쁘다면서. 우리 알바생은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설거지를 하다 말고 고무장갑을 벗고 카운터를 지켜준다. 


  이래서 내 발바닥이 부르텄나 보다. 







  유유자적 카페 생활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로망이지요. 회사 그만두고 카페 차리기.  


  저는 '제대로 사고 치는구나'라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걸맞게, 상권의 중심의 큰 길가에 큼직한 카페를 겁 없이 오픈했습니다. 권리금도 비쌌고, 월세는 말할 것도 없고요. 매달 기본으로 나오는 관리비도 만만치 않은데 난방을 열심히 했더니 지난달 관리비는 조금 더 많이 나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상황이 되어서 오픈을 미룰까도 고민했지만 당장 내야 할 월세와 관리비와, 이미 들어간 인테리어 비용과 집기 비용들을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어서, 테이크아웃만으로라도 일단 시작해보자며 오픈을 했죠.


  손님은 좀 있냐며, "돈 버는 게 쉽지 않지?"라는 걱정과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저는 오늘도 가게 문을 엽니다. 쉽게 생각해서 시작한 일 아니고, '카페나 해볼까'하는 철없는 생각에 아무 계획 없이 저지른 것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고, 충분히 알아보고 공부한 이후 덤벼들었습니다. 젊은 사장이긴 하지만, 어린 사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정말 쉬운 일은 없더군요. 하나같이 크고 어려운 일들 뿐이었어요. 


  지난 1년 동안 기본적인 커피 공부 이외에, 굳이 안 해도 될 커피 공부를 추가로 계속했죠. 이 지역의 모든 카페를 다 가 보았고, 다른 유명하다는 카페에 직접 가서 그 카페가 왜 유명한지, 주력 메뉴는 어떤 메뉴인지 다 먹어보았고, 내 카페는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구상을 하며 엑셀로 파일을 만들어 정리를 했어요. 황학동, 청계천, 왕십리, 성남, 광주, 인천 등 아무튼 여기저기 다니면서 시장조사를 했고, 인터넷 검색은 정말 몇만 페이지는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모든 결정은 고심 고심하다가 큰 마음 굳게 먹고 한 결정들이었습니다. 어떤 결정은 돈을 더 써야 마음이 편한 결정이었고, 어떤 결정은 최악만 간신히 피하는 결정이기도 했어요. '포기', '하지 않기'로 한 결정도 물론 있었고요. 


  그리고 오픈 40일이 조금 넘은 지금, 발바닥이 부르텄네요. 뭐 대단한 일 했다고, 거창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놀랍긴 하네요. 우리 엄마가 예전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발에 바세린을 바르고 비닐팩으로 발을 감고 그 위에 수면양말을 덧신으면서, "바세린이 최고야"라고 했었는데, 갑자기 그 생각도 문득 나네요. 바디로션을 살 게 아니었네요. 바세린을 사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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