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워녕 Mar 08. 2021

또 오는 손님



  우리 카페는 아침 8시 30분에 문을 연다. 


  사실 이 '8시 30분'이란 시간은 나 스스로에게 정해놓은 마지노선 같은 개념이다. (참고 <쌓는 시간, 쌓이는 시간>) 나는 가능한 더 일찍 가게에 나와 오픈 준비를 하고 8시 30분이 되기 전에 문을 연다. 하지만 유난히 아침이 힘든 날이 있는데, 그런 날에는 헐레벌떡 뛰어나와 부랴부랴 당장 급한 준비만 후다닥 하고 '8시 30분'에 딱 맞춰 문을 연다. 


  한 번씩, 마음이 풀어지려고 할 때가 있다. 어차피 내 가겐데, 회사에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감시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꼭 '8시 30분'에 맞출 필요가 뭐가 있나. 하루쯤 조금 여유 부려도, 조금 게으름 피워도 되지 않을까. 알람이 이미 요란하게 울리고 있는 아침, 침대에 들러붙어 떨어지고 싶지 않은 나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물밀듯 밀려온다. 


  이런 나를 "안돼! 일어나서 빨리 준비하고 나가야지!!"라고 벌떡 일으키는 건 한 사람의 얼굴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오시는 손님이 있다. 9시에 출근하시는 직장인이신데, 항상 8시 45분~50분 사이에 우리 카페에 와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 가지고 가시는 분이다. 일주일에 다섯 번 오시는 그분은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하나도 급하지 않은 발걸음으로 카페에 들어와, 하나도 급하지 않은 말투와 목소리로 커피를 주문하신다. 

  최근에 집을 이사하셔서 출근길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아침에 조금 더 일찍 나온다는 그분은, 그래서 지난주부터 8시 30분~35분에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 오신다. 


  나의 오늘 아침은 ① 침대에 들러붙은 몸을 떼어내는데 오래 걸렸고 ② 아침 식사로 끓인 국이 너무 뜨거워 후후 불며 먹느라 먹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③ 요즘 우리 집 지하주차장이 공사 중이라 카페에 차를 그냥 두고 다니는 바람에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오늘따라 버스가 너무 늦게 왔고 ④ 늦게 온 버스는 늘 그렇듯 모든 정류장마다 타는 사람도 많고 내리는 사람도 많아서 정차 시간이 매우 길었고, 신호도 계속 빨간불이어서 10분 거리를 25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오늘 아침은 정말, 역대급으로 가게에 늦게 출근한 날이었다. 8시 26분 도착. 


  매일 아침 오시는 그분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머리도 묶지 못한 채, 겉옷과 가방을 벗어던지고 그라인더에 원두를 들이붓고 머신 세팅부터 시작했다. 두 종류의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씩 먹고 '휴, 팔아도 되겠군'이라고 생각하자마자 '딸랑' 소리가 나며 그분이 들어오셨다. 아침 내내 내 눈 앞에 어른거리던 바로 그 얼굴. 


  "안녕하세요!"하고 들어오시는 그분을 보고 나는 급히 가게 불을 켜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늘 그렇듯 그분은 하나도 급하지 않은 발걸음으로 들어와, 하나도 급하지 않은 말투와 목소리로 커피를 주문하셨다. 커피를 내리며 시계를 보니 시간은 8시 32분. 


  그분은 언젠가부터 내가 하는 인사를 나에게 먼저 하신다. 커피를 주는 내가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하기 전에 그분이 먼저 나에게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해주시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에 덧붙여 한마디 더 해주셨다. "아침에 이 커피를 한 잔 마실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아침의 나약한 생각들과 정신없던 그 모든 순간이 일순간 없는 일이 되었다. 나는 그분을 떠나보내고 하던 머신 정리를 마저 하고 머리를 묶고 앞치마를 두르며 엉엉 울었다. 







  카페 사장님들이 모여있는 네이버 카페가 있다. 나는 그곳에서 여러 정보를 얻으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데, 한 번은 거기에 어떤 사장님이 이런 글을 올리셨다. "사장님들, 다시 태어나면 카페 사장 하실 건가요? 저 2년 차 카페 사장인데, 요즘 계속 현타가 와서 질문드립니다." 이 질문에 수많은 카페 사장님들이 '아니요'라는 댓글로 대답하셨다. 카페 사장은 힘든 직업이 맞는 모양이었다. 카페 사장은 여유로운 직업이 못된다. (참고 <카페 사장의 발바닥>


  그중 "오피스 상권에서 2~3평 정도 규모에 홀 운영 안 하고 테이크아웃만 하는 매장이라면 5년 바짝 하고 그만둡니다." 하는 댓글이 보였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댓글이었다.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어제 첫 출근을 했다. 바리스타 자격증도 있고, 나름 커피에 대해 공부도 한 친군데, 첫날이라, 어색한 주방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나는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까 오신 세 분 중에 한 분은 지난주에 첫 출근하신 분이에요. 지난주 내내 얼어계시더니, 오늘은 다른 분들이랑 같이 웃고 떠들고 하시네. 금방 많이 친해졌나봐. 내가 다 흐뭇하다." "이 분은 커피를 아주 연하게 드시는 분이에요. 에스프레소 샷은 반만 넣고, 뜨거운 물도 따로 드리는 게 좋아요." 저 분은 추운 날에는 아이스커피를 드시고, 좀 따뜻한 날에는 뜨거운 커피를 드세요. 흥미롭죠."


  대체 그런 걸 다 어떻게 아냐고 알바생은 내게 물었다. 어떻게 모든 손님을 다 기억하냐고. 몇 번째 왔는지, 무슨 메뉴를 시키는지 그걸 어떻게 다 하나하나 알 수 있냐고. "그냥 알겠던데?"라며 나는 씨익 웃었지만, 우리 집에 놀러 온 손님을 기억하는 건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광고도 좀 하고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좀 해서, 그러니까 소위 '핫플레이스'가 되어 멀리서도 사람들이 찾아오게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종종 듣는다. 그런 의견을 들을 때면 나는 매우 감격하는데, 아직 오픈한 지 2달밖에 안된 우리 가게에 이런 애정을 가지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주시는 손님들은 그 자체로 이미 감동적이다. 나는 "네, 해야죠! 할 거예요! 저희도 핫플레이스 한 번 되보죠!"라고 기쁘게 대답해드린다.


  그런데 나는 작년에 카페를 하기로 결정하고 나의 카페에 대한 그림을 그릴 때 '핫플레이스'는 두 번째 목표로 두기로 했다. 첫 번째 목표는 무조건 '이 동네의 카페'였다. 나는 '동네 사람들의 카페'를 꿈꿨다.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게 하는 카페도 좋지만, 그전에, 같은 사람을 두 번 오게 하는 카페가 되었으면 싶었다. 


  작년에 다른 많은 카페를 다니면서 보니, 어서 자리를 뜨고 싶은 카페가 있는가 하면 눌러앉아 집에 가기 싫어지는 카페가 있었다. 어떤 카페는 한번 와본 걸로 충분했고, 어떤 카페는 몇 번이고 계속 와서 모든 메뉴를 하나씩 다 시켜봐야지 싶었다. 나는 나의 카페가 너무 편해서 집에 가기 싫어지는 곳이 되었으면 했고, 다시 와서 이것저것 시켜 먹어보고 싶은 카페가 되었으면 했다. 


  가끔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다. 가게로 미리 전화해서 주차할 곳은 있는지, 휴무일은 언제인지를 꼼꼼히 알아보고 오신다. 그런 분들은 "여기 괜찮다~"며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지만, 아무래도 다음에 한번 더 오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다르다. 우리 카페에는 왔던 손님이 계속 오신다. 어떤 손님은 일주일에 두세 번 오시고, 어떤 손님은 토요일마다 오시고, 어떤 손님은 매일 오신다. 혼자 오시고, 친구나 직장동료를 데리고 오시고, 가족들을 데리고 오신다. 


  한 사람이 두 번 이상 같은 가게에 온다는 건 여러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일단 맛있어야 하고, 깨끗해야 하고, 그리고 편해야 한다. 나는 맛있는 커피를 준비해야 했고, 깨끗해야 했고, 여기가 너무 편해서 집에 가기 싫어질 만한 안락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여기에 더불어, 왔던 분을 알아보고 반가움을 더해주면 손님은 함께 반가워해 주셨다.


  사실, 나는 내가 이렇게 아는 척, 친한 척하는 게 손님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조심스러웠다. 손님들은 각양각색이어서, 내가 "오늘은 날씨가 많이 풀렸네요!"라고 말 걸기 전에 먼저 "이 화분 정말 잘 자라죠! 우리 집에도 있는데 날이면 날마다 쑥쑥 자라더라고요."라며 훅 다가오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간단명료하게 주문만 하는 분들도 계신다. 할 말만 하시는 분들에게는 나도 눈치를 봐서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다. 그런 그분이 다음에 또 오시면 나는 눈빛으로 살짝 아는 척을 하는데, 그러면 그분도 아는 척을 해주신다. 나는 조금씩 친한 척을 하고, 다행히 그분은 다음에 또 오시고 또 오신다. 


조희창, 베토벤의 커피, 60p


  인간을 정의하는 여러 가지 말 중에 '호모 나란스(Homo Narrans)'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란다. 사람은 이야기하고, 이야기로 관계를 맺어나간다. 결국 사람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또 올게요!"라는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정말 또 오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또 올게요! 다음에 오면 나 기억해줘야 해요!"라고 하신 분은 정말 또 오셨고, 나는 "오셨네요!"하고 반가워했다. 우리는 이야기하며 관계를 만들어간다. 

  어떤 분들은 약속을 잡을 때 일부러 여기로 잡는다고 했다. 조금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하고 일부러 여기로 오셨다고 했다. 가끔 이 동네에서 모임이 있다고 하는 분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우리 카페에 오신다. 오실 때면 "사장님! 저 왔습니다!"하고 들어오신다. 나는 "오셨어요!"하고 맞이해드린다. 


  자주 오던 손님 중 한 분이 한동안 안 오셔서 걱정했는데, 오늘 드디어 나타나셔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하셨다.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 반가워서 "안녕하셨어요!!!"라고 인사를 했고, 그분과 함께 빵 터져 한참을 웃었다. 


손님들이 10개의 도장을 모아 사용한 쿠폰들. 사실 훨씬 더 많은데 이것밖에 못 모았다. 겨우 두 달밖에 안된 카페에 10번 이상 온 손님이 이렇게나 많다. 




  이제 겨우 두 달이 지난 나의 카페는 이런 분들의 사랑으로 꿈의 카페가 되어가고 있다. 언젠가 우리도('우리'라고 말해주셨다!) '핫플레이스'가 되어 멀리서들 기차 타고 찾아와 바글바글 앉아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말해주는 손님들 덕분에 나는 꿈을 이루고 있다. 


  아직 좀 더 해봐야겠지만, "다시 태어나면 카페 사장 하실 건가요?"라는 질문에 나는 일단 이렇게 대답하기로 했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