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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Jan 10. 2021

쌓는 시간, 쌓이는 시간

코로나와 함께하는 자영업자의 시간 


  뉴스에서 본 자영업자들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되어도 너무 안된다고, 손님이 아예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렇구나',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내가 자영업자가 되고 보니 정말 손님이 없긴 없다. 


  나의 카페는 공식적으로 아침 8시 반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는다. 아침 8시 반에 문을 열기로 한 것은 나 스스로가 정해놓은 일종의 '마지노선'같은 것이다. 아무리 늦어도 8시 반. 그러려면 아무리 늦어도 8시가 되기 전에 가게에 도착해서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저것 청소하고 세팅하고 커피도 내려서 직접 먹어보아 맛도 조절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7시 반쯤 가게에 도착해서 8시 10분쯤 문을 열었다. '첫 번째 커피:아침 8시 30분'이라고 써놓았지만, 손님들은 문이 열려있는 걸 확인하면 8시 10분이든 15분이든 그냥 들어온다. 나는 그게 더 반갑다. 나의 첫 손님을 조금 더 일찍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커피는 밤 9시 30분이다. 이때부터 청소하고 정리하고 마감하면 10시 반 정도가 된다. 

  (사실 이 영업시간은 나의 욕심이 한껏 들어간 영업시간이다. 아침 출근길 손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욕심과, 저녁 퇴근길 손님은 물론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은 손님을 다 놓치지 않겠다는, 그러니까 어떤 손님도 놓치지 않겠다는 어마 무시한 욕심.)


  오전에는 아무래도 포장(take out) 손님이 많고 오후 시간이 지나가면 자리에 앉아 마시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 2.5단계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서 손님이 없다는 것. 

  나는 처음 이 카페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아무리 오래 앉아있어도 눈치 주지 않는 카페', '계속 눌러앉고 싶은 카페, '여기가 너무 편해서 집에 가기 싫은 카페'를 만들고 싶었는데, 오히려 지금 나는 잠깐 좀 앉아있으면 안 되냐는 손님에게 '안된다'며 매몰차게 이 추운 바깥으로 내쫓는 매정한 사장이 되어버렸다. 이건 다 코로나 때문이다.  


  저녁 5시 이후로는 손님이 아예 없는 날도 있다. 날씨가 많이 추워지니 사람들은 서둘러 집에 가기 바쁘다. 하긴 카페에 앉아있을 수도 없는데 굳이 테이크아웃으로 저녁에 커피를 사들고 집에 들어가는 일은 나 같아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의 카페는 밤 10시까지 불을 끄지 않는다. 근처 다른 개인 카페들이 6시도 되기 전에 문을 닫지만, 나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조명을 다 동원해 카페를 환하게 밝혀놓는다. 덕분에 우리 가게는 이 동네에서 가장 반짝거리고 가장 밝은 가게가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 중에 우리 가게를 쳐다보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옆집 갈비집 사장님은 걱정이 많다. 원래 그 갈비집은 평일에도 줄 서서 먹는 집이었는데, 지금은 황금 같은 금요일 저녁에도 많아야 4~5 테이블에 사람이 앉아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갈비집 사장님은 나를 더 걱정해준다. 어떡해요, 오픈하자마자 이게 다 뭐람. 참, 속상해서 말이에요. 아니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시는 건지. 나는 이 걱정에, 이 진심 어린 걱정에, 마음이 요동쳤다.

  갈비집은 밤 9시까지밖에 영업을 못하므로, 마지막 손님을 9시 정각에 내보내면 그때부터 마감을 시작한다. 청소하고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면 10시 30분~11시 정도 되는데, 그러면 나와 퇴근시간이 비슷한 셈이다. 나는 그분들과 비슷하게 퇴근하고, 그분들보다 일찍 출근하니, 그것도 매일, 아무튼 나를 성실하게 봐주신 것 같다. 그러니까 걱정해주시는 거겠지. 아무리 장사가 안된다고 해도 성실하지 않은 사람을 걱정하지는 않으니까. 



  카페를 오픈한 지 3주가 되었다. 3주 차 카페 사장이다. 나는 날이면 날마다 '손님이 없어 여유로워 좋네', '오픈 날짜 맞추느라 포기했던 것들 찬찬히 꾸려나갈 수 있으니 코로나가 시간을 벌어준 셈이네', '원래 장사 시작하고 처음 6달은 배우는 값이라 생각하고 마이너스를 감수하는 거라고 했지'라고 나를 다독이고 있다. 


  요 며칠은 여기에 더해 '쌓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쌓고 있다. '항상 열려있는 집'이라는 인식을. '언제 들어와도 따뜻한 집'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은 오며 가며 우리 카페가 열려있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하겠지. 오늘도 열려있네. 벌써 열려있네. 아직도 열려있네. 내일도 열려있겠네. 언제든 와도 되겠네. 그거면 됐다. 다들 몇백만 원, 몇천만 원씩 들여 광고도 하고 전단도 뿌리는데, 이 정도 월세와 난방비로 그 인식을 쌓을 수 있다면 나는 만족한다. 


  또 하나 쌓는 것은 '친절'이다. 친절에는 법칙이 존재한다. 베푼 친절은 반드시 돌려받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 친절 법칙에는 특별히 독특한 점이 있는데, 친절은 1:1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친절을 베풀면, 내 친절을 받은 상대방이 나에게 친절을 돌려주는 게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제3자가 나에게 친절을 돌려준다.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고 집에 가면 주차장이 꽉 차 주차할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날은 안 그래도 없는 자리가 더 없어서 한참을 빙빙 돌다가 어쩔 수 없이 다른 차 앞에 조심히 이중주차를 해 놓았다. 어차피 나는 아침에 일찍 나갈 거니까. 

  다음날 아침 6시에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차를 빼라면서. 차 3대가 못 나가고 있다면서. 화가 잔뜩 난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나는 다급히 롱패딩을 뒤집어쓰고 뛰어나갔다. 아니 하필 내가 막아놓은 차 3대가 전부 아침 6시에 출근하는 차들일 게 뭐람. 지하주차장에는 까무잡잡한 아저씨 3분이 팔짱을 끼고 험악한 얼굴로 서로 큰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관리 소장님도 불려 나와 쩔쩔 매고 있었다. 나는 그 현장 속에 다급히 뛰어들어가 "죄송합니다!", "금방 뺄게요!" 했다. 아저씨들이 나에게 화를 버럭버럭 낼 걸 각오하고. 그런데 놀랍게도 3명의 아저씨들은 나를 보더니 "아침에 갑자기 전화해서 놀라셨죠. 저희도 출근해야 해서요. 얼른 빼주세요."라고 급격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심지어 싱긋 웃으며 말해주었다. 


  요즘 나에겐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 생각지도 않은 사람들이, 나에게 너무나 잘해준다. 모든 사람들이 대체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나 싶을 정도로 잘해주고 있다.


  내가 친절을 쌓고 있긴 한 모양이다. 나는 커피를 사가는 손님에게도, 앉아서 먹을 수 없다는 말에 그냥 밖으로 나가버리는 손님에게도, 그냥 괜히 들어와 길을 물어보는 아주머니들에게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친절을 끌어모아 친절을 쌓고 있으니까. 영끌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친절. 





  이렇게 하루하루의 시간을 쌓아 벌써 3주의 시간을 쌓았다. 코로나로 인한 이 비상상황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끝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사람들이 "아, 그 카페! 나 거기 정말 가보고 싶었어.", "우리 제발 그 카페 좀 가서 앉아있어 보자.", "거기 보니까 맨날 열려있던데. 오늘도 열려있겠지. 가보자.", "그때 거기서 커피 한 잔 테이크 아웃했는데 맛있더라. 거기서 커피 먹자.", "거기 브런치도 있던데, 거기로 가자.", "거기서 책 보고 커피 먹고 싶었어.", "맨날 청소하고 있던데. 정돈되고 깨끗한 느낌이 좋았어.", "거기 사장님 진짜 친절하시더라. 기분이 좋았어."라고 떠올려 주면 난 더 바랄 게 없다. 난 이 카페를 오늘만 할게 아니므로. 이 자리에 계속 있을 것이므로. 난 길게 보고 있다. 이 꿈같은 순간들을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나의 카페에서 시간을 쌓는다. 

  나의 카페는 오늘도 이렇게 나의 시간이 쌓인다. 

  소복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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