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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Mar 29. 2021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해 주시다니


  매일 오는 손님이 있다. 


  이 분은 9시에 출근하시는 직장인이신데, 항상 출근 전에 우리 카페에 와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 가지고 가시는 분이다. 일주일에 다섯 번 오시는 그분은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하나도 급하지 않은 발걸음으로 카페에 들어와, 하나도 급하지 않은 말투와 목소리로 커피를 주문하신다. (참고 <또 오는 손님>


  아침 8시 30분에 가게 문을 열면 (대부분의 경우) 그분은 나의 첫 손님이 된다. 우리는 아침 8시 30분~8시 50분 사이에 매일 만난다. 그분은 최근 집을 이사하셨고, 회사 사무실에는 새로운 가구가 들어왔고, 주로 아침은  안 드시는 편이고, 어제는 오전에 은행에 다녀오셨다. 내가 급히 출근하느라 풀어헤친 머리를 아직 질끈 묶지 못한 어느 날 아침, 우리는 긴 머리와 단발머리에 대해 이야기했고 (어쩌다 보니) 형제가 어떻게 되는지, 가족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나대로, 그분은 그분대로 그 아침에 별별 오지랖을 다 부린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뺏지 않는 선에서 오지랖을 그만두는데, 그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분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까지만 오지랖을 부린다. 나는 그분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만큼만 어제를 물어보고 오늘을 물어본다. 그분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것 같을 때 바나나 하나를 건네고, 귤 하나, 과자 하나를 건넨다. 


  그래도 차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는 질문은 하지 못했다. 뭔가 적당한 호칭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나는 그냥 그분을 '나의 첫 손님'이라고 부른다. 





  오늘은 '나의 첫 손님'이 오후 2시에 또 오셨다. 


  그분은 힘찬 발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늘 보던 그 발걸음이었다. 하나도 급하지 않은 저 발걸음. 그런데 느낌이 조금 달랐다. 뭐지, 뭐가 다르지. 뒤따라 다른 직원 3명이 쭈뼛쭈뼛하며 들어왔다. 아하. 처음이었다. 아침이 아닌 오후에 오신 것도, 누군가와 함께 오신 것도. 같이 온 다른 직원들이 그분 옆에서 얼어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분은 꽤 중책을 맡고 계신 모양이었다. 


  직원들이 우리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우와"하고, 한 바퀴 둘러보며 "우와!" 하자, 그분은 으쓱해하셨다. 그분이 "먹고 싶은 거 맘껏 골라"라고 할 때는 온몸에서 으쓱해하는 기운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마치 '이 가게 멋지지? 내가 매일 오는 가게야. 자, 내 안목이 이 정도라고.'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직원들은 간신히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나의 첫 손님'은 여긴 아메리카노가 맛있긴 하지만 그거 말고 다른 걸 먹어도 된다며 메뉴판 앞을 서성거렸다. 직원들은 간신히 '아메리카노 사이즈업'을 다시 주문했다. 주문하는 모습들을 보며 아쉬우셨는지 '나의 첫 손님'은 자기는 카페모카를 달라고 하셨다. 카페모카에 초콜릿이 들어가는지도 몰랐으면서. 아마 한껏 더 으쓱하고 싶으셨던 것이겠지.


  그때, 다른 손님들이 몰려 들어왔다. 5분도 안 되는 사이에 밀려든 다른 손님들이 갑자기 줄을 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신없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드는 와중에 흘끔, 그분을 보니, 그분은 아까보다 더 으쓱해하고 있었다. 그분은 얼어서 말 한마디 못 거는 직원들에게 온몸으로 으쓱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보라고. 내 안목이 이 정도라고. 이렇게나 손님이 밀려드는 카페라고. 내가 여길 찾아냈다고. 내가 여길 매일 온다고. 내가 이 집 커피를 매일 마신다고.


  나의 카페가 그분의 자랑이 되었다.




  오늘 오후의 이 만남에서 그분은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또 왔습니다." "낮에 오니 또 느낌이 다르네요." "우리 직원들 커피 사주려고요."라고 충분히 말할만한 분이셨지만, 간결하게 주문만 딱 하셨다. 나 또한 주문받고 커피 만들어 드린 것 이외에 다른 그 어떤 말을 하지 않았다. 오지랖을 부릴까, 몇 번 망설였지만 하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대낮에 뵙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이랑 같이 오셨네요!"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라고 물어볼 말이 많았지만 묻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몇 번 눈을 맞췄다. 그분이 이미 한가득 찍혀있는 쿠폰을 내미셨을 때, 내가 카페모카를 만들어 따로 손에 쥐어드렸을 때,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라고 했을 때. 우리는 눈을 맞추며 몇 번 눈을 찡긋 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눈 말보다 더 많은 말이 담긴 찡긋이었다.






  


  나는 '나'를 드러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 글을 쓴다는 자체로 대단한 용기를 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쓴 글을 다른 분들이 읽고 좋아해 주시면 '이런 나를 좋아해 주시다니'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내 안에 가득 찬다. 


  나의 글들이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글들이라면, 나의 카페는 나의 취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이곳에 모아놓았다. 요즘 내가 하는 일들은 이렇게 '나'를 드러내는 일들이다. 나는 매일매일 용기를 내고 있다. 나는 용감무쌍하게 나의 공간에서 손님을 만난다.  


  내 취향이 오롯이 드러난 나의 카페를 찾아주신 손님들은, 감사하게도, 카페가 너무 좋다고 해주신다. 너무 예쁘다고,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여기서 하루 종일 앉아 있고 싶다고, 어떻게 이렇게 카페를 꾸며놓을 생각을 했냐고, 이거 다 사장님이 한 거냐고, 스타벅스보다 100배는 더 좋다고. 나는 "예쁘게 봐주시니까 예뻐 보이는 거겠죠^^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사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제가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하는 말. 




  카페 사장이 되고 보니, 내 취향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유행에 민감한 스타일도 아니고, 남들이 좋다는 걸 무조건 따라 하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어서, 나는 늘 내가 좋은 게 우선이고 내 마음에 들어야만 하는 사람인데, 그래서 자칫하면 '개성'이라는 명분으로 나만의 스타일을 독단적으로 밀고 나갈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인데, 그런 나의 스타일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는 건, 카페 사장의 입장에서 복(福)이 아닌가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놓은 나의 카페에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처음 보는 손님들이 들어와 함께 좋아해 주신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책, 나의 초록색 화분, 그리고 나의 커피. 


  우리 카페는 커피를 안 먹는 내가 먹었을 때 괜찮은 커피를 팔고 있는데, 그래서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의 입맛에 어떨지 걱정이었는데, 커피를 많이 드시는 분들이 이 커피를 좋아해 주셔서 나는 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내 안에 가득 채운다. 

  종종,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니며 드신다는 분들이 오셔서 "오늘 먹은 커피는 성공이네요"라고 말해주신다. 어떤 분들은 주문한 커피를 다 마시고 나에게 와서 카드를 다시 내밀며 한 잔 더 달라고 하기도 한다. 


  "여기 커피 맛있어."라며 올 때마다 다른 일행을 데리고 오는 손님이 있다. 일행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그 손님은 "어때, 진짜 괜찮지?"라고 말하며 어깨에 힘을 준다. '자, 이게 내가 먹는 커피야. 난 이런 맛있는 커피를 먹어.'라고 온몸으로 내뿜으면서.


  나의 커피가 그분의 자랑이 되었다.




  나의 카페를 '우리 카페'라고 말해주시는 손님들이 자꾸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와 자랑을 한다. "어때! 여기 괜찮지!" "어때! 여기 너무 좋지!" "어때! 커피 너무 맛있지!" "어때! 일부러 여기로 오길 잘했지!"


  나는 온몸으로 말을 내뿜는다. 

  "제가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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