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사장이 되고 보니 손님의 일거수일투족에 움찔움찔한다.
문을 열고 들어와 두리번거리며 쉽게 자리에 앉지 못하는 손님을 보며 안절부절못한다. 대체 뭐 때문에 저분은 망설이고 있는 걸까. 손님이 살짝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해주시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수 있을 것 같다. 한 방울도 남지 않는 컵을 설거지할 때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가도, 반 이상 남긴 컵을 볼 때면 속이 쓰리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 카페의 저녁 알바생은 손님이 음료를 남기고 가면 '자기가 뭘 잘못 만들었나'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했다. 레시피대로 한 것 같긴 한데, 자기가 혹시 뭘 빼먹었나 하고 심각해진다고 했다. "쿠폰 드릴까요?"라는 말에 "아뇨, 괜찮아요"라고 하신 손님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다 말고 와서 "아까 주시려던 쿠폰 주세요!"라고 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했다. 자기가 커피를 잘 내렸구나 하고 뿌듯해진다고 했다.
손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뼈마디가 쑤시는 기분이다. 손님이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이거 있나요', '저거 있나요'하고 물어볼 때는 심혈을 기울여 듣는다.
감사하게도, 손님들은 좋은 말만 해주셨다. 온갖 좋은 말들이었다. "여기 오니 기분이 좋아요." "분위기가 어쩜 이렇게 좋죠." "커피가 어떻게 이렇게 맛있나요." "이거 먹으려고 일부러 여기 와요." "너무 좋아요." "너무 예뻐요." "너무 편해서 계속 있게 돼요."
처음에는 손님들이 이렇게 좋은 말을 해주실 때마다 너무나 좋아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래, 내가 잘하고 있어'. 그런데 언젠가부터, 손님의 좋은 말들이 마냥 기쁘게만 다가오지는 않게 되었다. 손님은 쓴소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페를 오픈한 지 6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많은 손님이 다녀가셨지만, 어떤 손님도 우리 카페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우리 카페는 장사를 해본 적도 없는 내가 조금 배운 커피 지식을 가지고 덤벼들어 이제 막 시작한 풋내기 카페다. 분명 숱한 문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손님 입장에서는 뭔가 아쉬움과 불편함이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어떤 손님도 그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오픈 초기 두어 달 동안 자주 오던 손님이 있었다. 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 오시던 분이었다. 언젠가부터 그분이 오지 않았다. 바빠서 그런가 보다고 하기엔 꽤 오랫동안 안 오셨다. 그렇게 두 달, 세 달이 지났다.
한 가지만 마음에 들어도 한 가게에 계속 다니는 게 손님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론, 한 가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다시 오지 않는 게 손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쓴소리를 하지 않는 대신, 그냥 이렇게 발걸음을 끊는구나.
지난주에 드디어 그분이 오셨다. 전에 마셨던 커피를 주문하시고 예전과 같은 자리에 앉아 한 시간쯤 앉았다 가셨다. 나는 물어보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그동안 어디 다녀오셨나요?' '이사 가신 건지, 출장 가신 건지 궁금했어요.' '뭔가 불편한 점이 있으셨던 건가요?' '혹시 제가 너무 친한 척해서 부담스러우셨나요?' '그래도 이렇게 오랜만에 뵈니까 너무 반갑네요!'
나는 그 모든 말들이 행여나 튀어나올까 꾹꾹 눌러 밀어 넣었다. 나는 그저, 아무렇지 않은 듯(하나도 아무렇지 않지 않았지만), 어제 보고 또 본 사람처럼, "어서 오세요^^"를 했고 "안녕히 가세요^^"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주가 지나고, 이번 주, 그분이 또 오셨다. 나는 또 너무나 반가워서 "어서 오세요^^"라고 소리쳤는데, 순간 내 목소리가 지나치게 호들갑 떠는 것처럼 나와 깜짝 놀라, 순간 톤을 낮춰 목소리를 밑으로 깔고 주문을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였다. 아니, 듣고 싶은 말이 산더미였다. 그동안 어디 갔다 온 건지. 우리 카페가 불편해서 오지 않았던 건지. 불편했다면 왜 불편했는지. 내가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그분은 언제나처럼 같은 커피를 드시고 같은 자리에 앉아 한 시간쯤 있다 가셨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차마 아무것도 묻지 못했고, 결국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아, 말 좀 해줬으면. 쓴소리도 좋으니 좀 해줬으면.
그분이 다녀간 이후 오신 다른 손님이 커피를 드시고 나가시면서 "커피 맛있네요."라고 말해주셨는데, 그 소리를 듣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너무나 고마웠지만 너무나 서러웠다. 아, 손님, 이런 말 말고요. 다른 말 좀 해주세요...
좋은 말만 들어서 복에 겨워서, 복에 겨운 사람의 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진심으로, 정말, 간절하게, 다른 말을 듣고 싶다.
배드민턴에는 단식 게임과 복식 게임이 있다. 단식은 나와 상대방이 1:1로 하는 게임이고, 복식은 2:2로 팀을 만들어 하는 게임이다. 프로선수가 아닌 이상 여성들이 단식 게임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주로 복식이다. 여성들끼리 여복 게임을 하기도 하고 남성과 팀을 짜서 혼복 게임을 하기도 한다. 여복이든 혼복이든, 아무튼 복식 게임은 파트너와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통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 4명이 모여 게임을 시작하지만, 그중에서도 실력의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우리 팀과 상대방팀과의 실력 차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점수가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많은 경우 이때부터 지고 있는 팀의 불화가 시작된다. 파트너끼리도 실력 차이가 나므로, 실력이 좋은 사람이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에게 조언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말이 조언이지,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셔틀콕이 날아다니는 와중에 하는 말들은 '이래라저래라'이다. 거기서 가만히 있으면 어떡하냐, 비켜줘야지 길을 막고 있으면 어떡하냐, 그건 네가 건들 공이 아니지 않느냐, 거기서 힘을 그렇게 주면 어떡하냐, 강약 조절을 해라...
이 '이래라저래라'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파트너는, 아주 가끔, 라켓을 집어던지며 코트를 뛰쳐나가기도 한다. "그래, 너 혼자 다 해 먹어라" 하면서.
내가 배드민턴 초보였던 시절, 나의 파트너는 나보다 실력이 월등하게 높은 분이었다. 우리 팀이 지는 건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나도 잘하고 싶은데, 내가 못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데, 자꾸 실수하고 땅에 공을 갖다 박다 보면 점점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 나의 파트너는 나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실수하고 잘못해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보다보다 도저히 안 되겠으면 그제야 한마디 했는데, 보통 이런 식이었다. "못 치겠는 공은 억지로 치려고 하지 마세요. 놔두면 제가 처리할게요." 그게 얼마나 고맙던지. "괜찮아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라고 말해주는 파트너 덕분에 나는 그 한 게임을 하는 동안 온통 감동에 휘감긴 채 열심히 뛰어다니곤 했다. 그리고 우리 팀은 계속 나 때문에 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고마운 파트너에게 조금씩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아니, 자기가 훨씬 잘하면서.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면 내가 좀 배울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나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빤히 보고 있으면서 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잘하고 있어요!"라고 응원만 해주는 파트너가 서운했다. 나는 배우고 싶었다. 나도 이기고 싶었다.
상대팀의 실력자는 자기 파트너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 파트너는 잔소리를 들으며 언짢아했지만, 나는 그 잔소리가 부러웠다. 상대팀의 잔소리에 귀를 쫑긋 기울였다. 네트 넘어 멀리서 하는 잔소리라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들어보려 했다. 분명 그 잔소리 중에 배울 것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내 파트너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부탁이 있어요. 저한테 잔소리 좀 해주세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말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최선을 다해 뛰어볼게요." 그랬더니 나의 파트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잘하고 있잖아요." 난 크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했다. "그냥 가만히 계시지 말고요. 화내셔도 좋아요. 혼내셔도 좋고, 소리 질러도 괜찮아요. 저 그런 걸로 상처 안 받아요. 그러니까 좀 가르쳐주세요. 저, 더 잘하고 싶어요."
내 파트너는 배드민턴 구력 20년이 넘은 베테랑 아저씨셨다. 20년 동안 수많은 파트너를 만나면서 게임을 했는데, 조금만 잔소리를 해도 파트너는 삐지거나 주눅이 들거나 같이 화를 낸다고 했다. 자기의 경험상, 그냥 잘한다 잘한다만 하면 파트너도 조용하고, 그래서 그냥 무난히 게임을 끝낼 수 있다고 했다. 어차피 무슨 올림픽을 나갈 것도 아니고, 이기고 지는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아무튼 다들 즐겁게 운동하자고 하는 건데, 싫은 소리 해가면서 할 일이 아니었다고, 20년을 배드민턴을 치며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저씨는, 나 같은 파트너는 처음이라고 했다. 잔소리해달라는 파트너는 처음이라고 했다. 괜찮겠냐고 했다. 한번 주눅이 들면 좋은 컨디션으로 운동할 수 없을 거라고도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난 그런 걸로 주눅 들지 않는다고 했다. 가르쳐주신다고 생각하고 잘 한 번 배워보겠다고 했다. 아저씨처럼, 아저씨만큼 나도 어서 좋은 실력을 갖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말했다. "저도 이기고 싶어요!"
이후 시작된 게임에서, 아저씨는 조심조심 나에게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거기 서있지 말고, 한 발짝 앞으로." "자세 낮추고!" "공 띄우지 말아요." "여기 공간이 비잖아! 비워두면 안 돼요!" "계속 움직여요" "뭐하고 있는 거예요. 빨리 이쪽으로 와야지!" "손목 꺾을 때 확 꺾고" "내가 이쪽으로 갈 때는 저쪽으로" "내가 뒤에서 스매싱할 때는 앞에서 몸 바짝 낮춰요" "네트 끝으로 공 살짝!" "그래! 그거지!" "아니 그게 아니고!!"
중간에 잠시 쉴 때 아저씨는 내 얼굴을 요리조리 살폈다. "괜찮은 거 맞죠?" 나는 환한 얼굴로 "네! 너무 좋아요!!" 아저씨는 웃었다. 게임이 끝나고 나는 "많이 배웠습니다! 내일 또 가르쳐주세요!"라고 했고 아저씨는 "그래요^^ 내일 또 즐겁게 운동합시다^^"라고 말해주었다.
잔소리로 들으면 기분이 상하지만,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면 배우게 된다. 배울 것이 있다. 배워야 할 것이 있다. 배워야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그러니까 손님들도 잔소리 좀 해주셨으면. 배우고 싶다. 분명, 배워야 할 것이 있다.
6개월이 지났다. 지금까지는 시작이었고 좌충우돌하며 사람들의 눈치나 보며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보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다음 단계로 진입하고 싶다. 욕심이다. 그래, 이건 욕심이 맞다. 우리 카페가 더 좋은 카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
나는 오늘도 일희일비하며 손님을 살핀다. 대놓고 살피면 부담스러워할 테니까 안보는 척 유심히 살핀다. 쓴소리를 하지 않는 손님의 쓴마음을 파악하고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나의 오지랖이 행여나 손님을 불편하게 하는가 싶어 오지랖도 조금씩 자제하고 있다. 이 와중에 먼저 말 걸어주시는 손님한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기세로 상냥함을 쏟아붓지만, 그러다가도 '앗, 지금 내가 너무 지나쳤어'라는 생각이 들면 브레이크를 밟는다.
오는 손님이 계속 와주시는 건 정말 너무나 너무나 감사하지만, 그분들만 바라보며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다. 좋은 소리만 해주시는 손님들로 인해 기뻐하고 흐뭇해하기보다는, 이제는, 아무 소리 없이 발길을 끊는 손님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쉬는 날, 다른 가게에 가본다. 6일 동안 사장으로 살던 나는 손님이 되어 다른 가게에 가서 남이 차려준 밥을 먹고 남이 타 준 커피를 마신다. 웃기게도, 이제 겨우 몇 달 사장으로 살아본 주제에, 나는 다른 가게에 가서 사장의 마음으로 가게를 둘러본다.
주위를 둘러보며 어떤 분이 사장님이신지를 찾아보고, 그분의 움직임과 동선을 훑는다. 카페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주방이 어떤 구조인지, 머신은 어떤 머신을 쓰는지를 본다. 메뉴판을 정독한다. 직원은 몇 명이고, 누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커피를 먹으면서 커피잔을 살피고, '음, 여기 커피 맛은 이렇군'하고 생각한다.
온전히 '손님'이 되지 못하니, 그 가게에서 손님이 느껴야 할 기분을 오롯이 느끼지 못하는 기분이다. 나는 자꾸만 그곳의 사장님이 안쓰럽고, 그곳의 대략적인 재료 원가와 객단가를 계산하면서 걱정을 한다. 아, 요즘 달걀값도 비싼데 이런 달걀찜을...
평생을 손님으로 살았는데, 그동안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가게에 왜 갔고, 들어가자마자 뭘 느꼈고, 뭘 먹었고, 그걸 왜 먹었고, 먹으면서 어땠고, 다 먹고 나올 때는 또 어땠고...
나의 메모장에는 내가 예전에 다른 카페를 다녀보며 끄적거려놓은 조각들이 있다. 어떤 카페는 '내일 또 오고 싶은 카페'였고, 어떤 카페는 '여기 앉아 있으니 집에 가기 싫어지는 카페'였다. 어떤 카페는 '한번 와본 걸로 충분한 카페'였고, 어떤 카페는 '이곳을 어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카페'였다. 대체 나는 그때 뭘 보고 뭘 느꼈길래 그렇게 적어놓은 걸까.
아마 각각의 메모에 대한 근거는 한 가지일 것이다. 좋았던 이유도 한 가지였을 것이고, 싫었던 이유도 한 가지였을 것이다. 손님은 한 가지만 마음에 들어도 그곳을 다시 찾고, 동시에, 한 가지만 마음에 안 들어도 그곳에 다시는 가지 않으니까. 아마 손님이었던 나는 분명, 그 '한 가지'를 느꼈을 것이다.
그 '한 가지'를 곰곰이 떠올려보며 쉬는 날 다른 카페에 간다. 그곳의 사장님의 모습에 자꾸만 감정이입이 되지만, 그래도 나는 쓴소리 하지 않는 손님의 쓴마음을 알기 위해 손님이 되어본다.
그 카페에서 나오면 우리 카페에 온다. 손님들의 자리에 앉아 카페를 둘러본다. 손님으로 우리 카페에 오는 건 어떤 기분인지, 나는 오롯이 손님이 되어 우리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본다. 쓴소리를 하지 않는 손님들이 답답해서, 내가 직접 쓴소리를 하는 손님이 된다.
나도 이제 초보 사장은 그만 할 때가 되었다. 어엿한 사장이 되고 싶다. 욕심이다. 욕심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