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워녕 Aug 14. 2020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이 자리에, 이 모습 이대로


  3주 동안 잠자코 있었다. 


  걷다가 갑자기 넘어졌는데, 꽤 크게 다쳤다. 넘어지면서 오른쪽 무릎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고, 피가 줄줄 흘렀다. 3일쯤 지나니 피멍이 올라왔다. 며칠 동안 무릎을 굽힐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운동은커녕,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 와중에 장마가 시작되었다. 이번 장마는 참 장마다운 장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장마는 소나기나 몇 번 오는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하루 종일 내리는 비가 몇 날 며칠, 몇 주동안 계속 왔다. 


  나는 안 그래도 다리가 아파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데 장마까지 합쳐지니, 집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한 집콕 라이프가 조금 더 심화되었다. 


  매일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며 운동하고 걸어 다니다가 이렇게 가만히 있으니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의무감이 목구멍에 차올랐지만, 그보다 나를 덮어 씌우는 건 무기력함이었다. 손가락도 까딱하기 싫은 무기력함이 내 몸을 둘러쌌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지는 못해도 평지는 이제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을 만큼 어느새 다리는 많이 나았는데도, 나는 계속 엄살을 폈다. 아직 아프니까. 아직 비가 오니까. 심지어 코로나니까. 

  그렇게 3주가 흘렀다. 나는 나의 원래 생활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만나는 무기력함이었다. 한껏 의지를 불태우며 온갖 의욕을 끌어올리던 시간이 있었는데. 




  잠깐 비가 그쳤고, 잠깐 구름이 걷혔다. 구름 사이로 살짝 햇빛이 났다. 창밖에서 매미소리가 들렸다. 


  이때였다. 나는 움직여야 했다. 걸을 수 있을 때 걸어야 했다. 


  급히 모자를 눌러쓰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늘 다니던 나의 산책 코스. 이 길에 반해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왔고, 이 길로 산책을 다니며 '그래, 여기로 이사오길 잘했어'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길 벌써 2년이 되어간다. 달릴 때도 있었고, 슬렁슬렁 걸을 때도 있었지. 음악을 들으며 걸을 때도 있었고, 친구와 이야기하며 걸을 때도 있었지. 

 

  늘 같은 코스로 산책을 하다 보면 무료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신기하게도 늘 신선한 새로움을 느끼며 산책을 한다. 

  같은 길이어도 걸을 때 다르고 달릴 때 다르다. 당연히 평지인 줄 알았는데 냅다 달려보니 오르막길인 줄 알게 된 순간에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경사 정도가 미세해서 걸을 때는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무려 1년을 아무 생각 없이 유유히 걸어 다녔는데 달려보니 이 길은 매우 험난한 길이었다. 

  특히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계속 새로움을 느낀다. 벚꽃잎이 깔렸던 길에 단풍잎이 깔리는 것이라든지, 빗길이 눈길이 되는 것이라든지, 까치소리가 들리던 길이 개구리 소리가 들리는 길이 되는 길이라든지...


  이렇게 매번 새로운 산책을 할 수 있는 것도 일종의 스탯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같은 길을 왔다 갔다 하는데, 하나도 식상하지 않을 수 있다니. 희귀 스탯이다. 나의 이 특별한 능력.


  그리고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또 다른 스탯이 있는데, 도시생활을 하면서 이걸 가진 다른 사람은 정말 없다고 본다. 


  나는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나비를 볼 수 있다. 



 

  나비가 있는 길목이 있다. 


  나는 나비가 있는 길목을 안다. 늘 걷는 이 길을 걷다가 그 길목이 가까워지면 나는 살짝 긴장한다. 신기하게도 거기에는 늘 나비가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내가 보는 나비가 계속 같은 나비 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거기에는 늘 하얀 나비가 있다. 


  처음 그곳에서 나비를 보았을 때, 아니 여기에 웬 나비가 다 있나 싶어서 한참을 서서 보았다. 괜히 말도 걸었다. 아니 여기서 뭐해? 혼자 왔어? 다른 데 있다가 온 거야? 집이 여기야? 이따가 다른 데 갈 거야? 

  그런데 바로 다음날 거기에서 또 하얀 나비를 보았다. 나는 다시 말을 걸었다. 아니, 너 또 여기 있네! 어제 그 나비니? 혹시 나 기억 나? 내가 어제 너한테 말 걸었었는데. 어디 안 다녀왔어? 그때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며칠 만에 산책을 가도 그곳에는 하얀 나비가 있었다. 나는 또 말을 걸었다. 오늘도 여기 있네. 며칠 동안 못 봤지? 잘 있었어? 혹시 나 기다리진 않았어? 다른 친구들은 종종 놀러 와? 친구랑은 보통 뭐하고 놀아?


  그렇게 나는 계속 나비를 만났다. 나는 나비가 보고 싶을 때 나비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 세련된 도시생활 속에서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참 오랜만의 산책길이었는데도 여전히 그 길목에는 하얀 나비가 있었다. 나비가 팔랑대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동안 비가 많이 왔는데, 이 날도 계속 비가 왔었는데. 잠깐 산책 나온 나처럼 이 나비도 잠깐 나온 건지는 모르겠다. 전에 봤던 그 나비와 같은 나비 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길목에는 나비가 있었다. 

 

  이 나비에게는 '무기력함'따위는 없는 건지. 이 팔랑거림은 늘 의욕적이다. 이 팔랑거림을 보고 있자니 지난 3주간 묵혀놓았던 나의 의욕도 올라오는 것 같았다. 바깥공기는 축축했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나는 계속 크게 숨을 쉬었다. 온 세상이 이렇게나 공기로 가득했구나. 




  오랜만의 산책이라 그런지, 나비의 의욕 때문인지, 온통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신호등의 빨간 불빛마저 아롱아롱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 길에, 또 하나의 신선한 새로움이 있었다. 두 마리의 하얀 토끼. 

  응? 토끼? 아니, 여기 무슨 토끼가. 아니, 무슨, 이렇게 뜬금없이, 이런 하얀 토끼가. 



  서로 똑 닮은 두 마리의 토끼는 입을 오물오물거리며 풀을 뜯고 있었다. 나는 신기해서 쳐다보다가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갔는데, 토끼는 놀라지 않고 여전히 풀을 뜯었다. 내가 계속 쳐다보자 토끼도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니, 너네는 대체 어디서 온 거야?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근데 너네 나 처음 보지 않아? 난 이 길 산책한 지 2년 정도 됐거든. 비 오는 동안은 어디 들어가 있다가 나온 거야? 둘이는 형제야? 지금 먹는 풀은 무슨 풀인지 알고 먹는 거야? 맛있어? 무슨 맛이야? 집은 가까워? 비 쏟아지면 얼른 뛰어서 집에 들어가는 거야? 


  내가 한 말을 토끼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겠지. 물론 나도 토끼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얘들도 나에게 뭐라고 뭐라고 말을 했을 텐데. 아무튼 우리는 대화를 했고, 재미있었다. 


  쪼그려 앉아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쪼그려 앉을 수 있을 만큼 내 무릎이 건강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꽃이 만발해있었다. 나는 장미나 해바라기처럼 큰 꽃보다는 송이가 작은, 자잘 자잘한 꽃들이 뭉텅이로 있는 들꽃 같은 걸 보면 그렇게 마음이 애틋해지는데, 바로 여기에 자잘 자잘한 꽃들이 바람을 타고 살랑이고 있었다. 주황색 꽃들이 저녁 밤하늘 아래에서 분홍빛도 내고 노랑빛도 내면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느낌을 냈다. 

  판타지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세상이 있다니! 이게 내가 사는 세상이라니! 수도 없이 다닌 이 길에서 나는 이상한 감미로움까지 느끼고 있었다. 비가 퍼붓던 하늘에는 구름이 마치 안개처럼 넓게 깔리면서 더욱 그런 분위기를 조성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옆에서는 토끼 두 마리가 입을 오물거리며 계속 풀을 뜯고 있었다. 들꽃 옆에서 토끼의 오물거림을 보고 있자니, 늘 다니던 이 길이 비현실적으로 고혹적인 길이 되었다. 토끼의 오물거림은 매력적이었다. 루싸이드 토끼는 sexy tokki라는 노래에서 토끼의 매력에 대해 이미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오, 그래, 그대 그렇게 내게 다가오는 거야 / 별 수 없을 걸, 내가 이렇게 섹시하게 깡총깡총 / 사람들 내게 항상 하는 말, 참 귀엽기도 하지 / 몰라서 그래, 내 안에 깊은 곳 욕망을 / 솔직히 귀엽기는 하지만, 그건 다 영리한 나의 눈속임일 뿐 / 망설이지 말고, 어서 나를 잡아봐" 


  며칠 뒤, 비가 잠깐 그친 틈을 타, 나는 또 산책을 나갔다. 나비가 있는 길목에는 여전히 나비가 있었고, 토끼를 만났던 그곳에는 또 토끼가 있었다.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팔랑거리는 나비와 오물거리는 토끼. 의욕적인 나비와 매력적인 토끼.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존재들이 있다. 아마 지금껏 그 자리에 있기까지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세찬 비바람도 불었을 테고, 갑작스러운 침입자도 있었겠지. 지금은 평화롭게 아무 일 없는 듯 그 자리에서 날개를 팔랑이고 입을 오물거리고 있지만,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었을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다. 한결같은 사람이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거나 꾸며내야 하는 수많은 상황들,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느라 이미 많이 변했는데도 또 변해야 하는 상황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나타나더라도, 그토록 재밌었던 친구와의 대화가 이제는 언짢게 느껴지더라도 나는 변한 친구만 탓할 수는 없게 되었다. 오히려 그를 이해한다. 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많은 어려움과 고민 속에서 그 친구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나와 만나기까지 여태 잘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고마워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예전과 같은 분위기로, 예전과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 나는 뭉클한 희열을 느낀다. 마치 내 안의 깊은 바다, 그 속의 아주 깊은 물들이 스르르 흔들리는 것 같다. 그들이 그 모습을 간직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지 나는 아주 일부분만 짐작할 수 있을 뿐. 그들의 시간은 사투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엄청난 시간을 보내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건 분명 능력이다. 이 능력치가 어느 레벨까지 뚫고 올라갔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공격력과 방어력 따위의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대단한 능력. 큼직한 무기나 화려한 갑옷 같은 아이템 없이 본연의 모습 그대로 쌓아 올린 이 어마어마한 스탯. 그 어떤 현질 없이 노력과 열정만으로 이루어낸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이런 사람은 나에게 직접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존재만으로 에너지가 전해진다. 이 에너지는 유일무이하다. 다른 데서 쉽게 받을 수 있는 그런 흔해빠진 에너지가 아니다. 세상에 단 한 사람, 오직 그 사람만이 내뿜는 에너지. 팔랑이는 나비가 내뿜는 삶을 향한 의욕처럼, 오물거리는 토끼가 내뿜는 삶에 대한 매력처럼. 






  내 오른 무릎은 완전히 낫지 않았고, 장마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잠자코 있지만 계속 무기력함 속에 파묻혀있지는 않기로 했다. 조금씩 의욕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몸을 움직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지. 


  원래의 나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야지. 나를 관통하는 에너지는 이것이다. 언제든, 누구에게든,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하는 것. 내가 이 에너지로 살아갈 때 삶은 매력으로 줄줄 흐른다. 그 어떤 커리어보다, 그 어떤 자격증보다 나를 으쓱하게 하는 나의 이 에너지. 이 에너지로 이 자리에, 이 모습 이대로 존재하는 것이 나의 스탯, 나의 능력이다. 


  나의 이 자랑스러운 에너지를 지지하며 나비는 팔랑이고 토끼는 오물거린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뭉클한 희열이 있길.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서 이 에너지를 느끼며 삶을 소망하길. 


 




















작가의 이전글 아, 이래서 내가 그랬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