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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Sep 13. 2023

시댁환장곡-4화 휴가와 배짱이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_4화 휴가와 배짱이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4화 휴가와 배짱이     


올해 시아버지 제사는 일주일의 정중앙에 있다. 그 말인즉 수요일이 제삿날이라서 내려가는 날, 올라오는 날까지 3일을 휴가를 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때는 해남이 참 먼 곳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하루 꼬박은 아니어도 한나절 이상은 족히 걸려 도착하는 곳, 시골집은 시집올 때도 지금도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7시 이렇게 하루에 세 번 버스가 다닌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이렇게 ‘멀리 멀리도 시집왔구나’를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곧 아이들 개학이라 어디를 가는 것 엄두가 나지 않고, 8월은 휴가철이고 육아와 스쿨맘에서 벗어나고 있는 친구들과 20대 이후 처음 여행으로 연가를 써야 한다. 그리고 만나면 긍정에너지를 받는 모임들이 연이어 대기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니 시아버지 제사로 3일이나 연가를 쓰기가 좀 그렇다. 7월 말 딸과 제주 여행으로 이미 3일을 썼고, 7월부터 개인적인 연수 일정으로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조퇴하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모두 개인적인 일정과 계획인데 그 어느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 난감하다.     


내년에는 다른 곳으로 발령 날 것이 틀림없기에, 올해는 특별한 상황 아니면 병원 가는 것, 볼일 보는 것, 여행, 연수 등 개인적인 일정에 자유롭기로 마음먹었다. 농담으로 친한 동료에게는 대놓고 ‘올해는 안식년이니 이해해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 오십이 다가오니 무서운 것이 점점 사라진다. 그리고 내 할 일 미루지 않고 최대한 소화하면서 미리미리 준비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몰래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히 복무 달고 나가기도 하지만, 조직이 나 없으면 제대로 안 돌아갈 거 같은 그런 업무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더 잘 돌아갈지 모른다.  

   

25년간 직장생활을 했지만 앞으로 남아 있는 직장생활은 그보다 길지도 않고, 더 길게 할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믿을만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쌓아놓은 것도 그다지 많지도 않지만, 직장생활에만 매여 살다 퇴직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점점 내 삶에서 직장이 가지고 있는 비중을 줄이는 것이 내 목표이다. 구체적인 목적을 목표에서 내려놓으니 방향성만 남았다. 손에 쥐어지는 결과가 없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쥔 것이 없으니 놓칠 일도 없다. 

    

남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없어서 그렇지, 남편에게도 조금 힘을 빼며 살자고, 돈 벌 궁리, 올라갈 궁리만 하지 말자고 상상도 안 해본 월척이 없는 말들을 내뱉는다. 공부하기 싫다는 딸에게 공부가 네 취향은 아닌 거 같다. 우리 집은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공부하는 걸로 하자. 우리 집은 엄마만 공부하는 걸로. 친구 만나러 매일 밤마실 나가는 아들에게 오늘 안으로만 들어오라고, 너무 늦으면 돈 아끼지 말고 택시 타고 오라고 말한다. 요즘 뭔 배짱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마음에 미움이 짜증이 없어 나쁘지 않다.      


삶이 그다지 길지 않다는 생각과 건강하게 생활할 시간은 더 적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인지 관심이 가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시간을 투여하고 싶다. 정해진 시간을 얽매이기보다 시간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하고픈 욕망이 나이 50을 앞두고 더 간절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부터 자의든 타이든 성장 위주의 트랙 위에서 내려와서 그런 듯하다. 이런 생각이 다소 분주한 나를 만들었고, 과하지 않는 선을 경계로 개인 복무가 잦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할 일을 미리 처리하고, 일주일 중 제일 여유가 있는 요일에 내가 없을 때 대신해줄 동료에게 허락을 득하고, 나도 그가 부탁할 때는 언제든 보조해주며 협조한다.

자고로, 인생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내 편이면, 편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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