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대로 삶 Sep 12. 2023

시댁환장곡-3화 제사는 언제까지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_3화 제사는 언제까지?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3화 제사는 언제까지?     


한여름 제일 더운 때, 음력 7월 13일이 시아버지 제사이다. 윤달만 아니면 제삿날이 양력으로 8월 15일 근처라서 가족 여름휴가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해남으로 제사 지내러 왔다. 처음에는 속상하고 억울하고 화나고 그랬는데 지금은 포기했는지, 지쳤는지, 가망이 없어 그런지 별생각이 없다.    

  

지금은 숙제가 되어버렸다. 안 하면 마음 불편하고, 하고 나면 의미는 없지만 후련한 딱 그 정도이다.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의 대명사이고 남성중심적이고 전통의 의미는 찾아볼 수 없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허위라고 생각하지만 난 힘이 없다. 나에겐 의무만 지워진, 이해하기 어려운, 의미가 없지만, 어머니는 왜 이것을 놓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우리도 힘들지만, 어머니 본인이 제일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철이 없는 한낱 막내며느리라서 어머니의 깊은 속내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20년 넘게 이 부질없는 무모한 제사에 함께 하는 이유는 뭘까? 어머니가 무서워서? 남편이 확고해서? 다른 식구들의 뒷말이 무서워서? 그렇다. 나는 싫은 걸 싫다고 하는 성격이 아니고 어떤 조직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보다 적응하기에 급급했기에 옳고 그름을 생각하는 것은 항상 뒷전이었다. 항상 나는 힘이 없었다. 절대적으로 미미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힘이 없고, 미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사그라져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옳든 그르든 흥망성쇠가 있듯이 이 제사의 의식도 천천히 희미해지고 사라질 거라 믿는다. 그래도 내가 갈아넣은 시간과 노력이 있는데 부디 아름답게 사라지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20년 넘게 제사를 지내면서 드는 생각은 전통적인 남성들의 전유물로 느꼈지만, 지금은 여자들이 붙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어머니가 강한 의지로 붙들고, 그리고 두 형님이 항상 불평이 한가득하지만 인내하고 감당하신다. 거기서 나란 존재가 어머니를 설득할 것은 만무하고 형님들을 향해 시간 낭비, 돈 낭비, 인력 낭비 같은 이 제사가 의미 없으니 안 지내겠다고 선언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하물며 남편도 이해시키지 못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행동들은 남들에게는 교회 다녀서 제사 안 지내려 한다, 힘들어서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정도에서 해석될 것이 뻔하다. 그리고 내가 하지 않으면 내 몫의 수고로움은 누군가 해야 하고 내가 편한 만큼 누군가 그만큼 어려움이 가중된다. 그래서 이 악순환의 고리는 끊기가 쉽지 않다.     


좀 비겁하긴 하지만 제사의 의미를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생명줄 같은 그 비슷한 것으로 정리했다. 어머니에겐 ‘제사’는 멀리 떠나있는 가족을 불러 모으는 하나의 주술 같은 거라 해석했다. 이렇게라도 내려와서 얼굴 보고 함께 부대끼기 위한 구실 말이다. 형님들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 그냥 집안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그냥 억지로 이어가는 거 같아 보인다. 언제부터인지 딸 4명은 내려오지 않는다. 장사 때문에 그리고 아이들 때문에 하루를 보내려고 해도 오고 가는 데 이틀은 잡아야 올 수 있는 해남이라 쉽지 않다. 그리고 시골에 농사짓는 친정은 내려와도 바닥에 등 대고 누워 쉴 틈을 주지 않으니 점점 소원해진다. 어머니가 올라오셨을 때야 집으로 모시는 것이 전부가 되어 간 지 꽤 되었다. 내려오는 이유와 내려오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타당하다. 하지만 딸의 선택과 며느리의 의무에서 항상 의무는 무겁게 승리한다.    

 

20년 동안 ‘제사’라는 단어에는 수없이 많은 주관적이고 경험이 포함된 감정들의 형용사가 포함되어 있다. 처음 시집와서 제사를 경험하고 아직 돌도 안된 큰아이를 업고 나와 달을 보고 그냥 서러워 울었다. 그냥 제사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이 제사가 끝도 없이 영원히 지속될 거 같은 사실이 더 무서웠던 거 같다. 지금은 요령이 생겨 많은 음식을 준비해도 남겨놓고 싸갈지언정 적당한 양만 한다. 그리고 손이 빨라지고 형님들과 손도 많이 맞아 그리고 아이들도 커서 돕는 손도 생겨 수월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두 분의 시숙님들은 변화 없지만, 남편과 조카와 아들이 나름의 방법으로 솔선수범해서 돕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힘들고 나이가 들수록 힘에 부친 것도 사실이다.      


이쯤에서 제사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지금의 제사는 누가 붙들고 있는 것인가? 말해 뭐하나. 어머니이다.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은 어머니의 건재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제사라는 것이 지금과 같이 유지되고 건재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큰형님네에는 아들이 없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둘째 형님네 조카와 우리 아들의 몫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조카와 아들의 배우자가 이 제사를 이어받을 거란 희망을 품는 사람을 아무도 없다. 요즘 세상 시댁에서 그런 것까지 바라면 살아갈 며느리가 없다는 것을 형님들도 나도 안다. 젊은 MZ 며느리들이 하라고 한다고 할 사람들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큰 시숙님과 큰 형님의 의지에 따라 방향이 정해질 가능성이 크고, 해남에 내려와 지내는 게 아니라 큰형님네 그날 모여서 지내고 헤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형제간에 사이가 원만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환갑이 넘은 큰형님, 둘째 형님의 건강에 따라서 그것도 점점 간소화되고 사그라질 것이다. 결국 여자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재단이 ‘제사’란 결론에 이른다. 몸이 늙고 병들어서야 벗어날 수 있는 족쇄라 생각하니 좀 허망하다. 그리고 어머니도 그 족쇄의 희생양인 건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 내가 서 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사의 종말을 지켜보며 그동안 나의 노력과 희생을 갈무리하리라 예상한다.


적어도 그 끝이 허무하고 부질없는 신기루라는 것을 어머니 본인은 살아서는 보지 않으리란 생각에 그것만으로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형님들을 포함한 나는 부모를 보살피지만, 자식에게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세대, 평생 얼굴도 보지 못한 조상을 위해 제사상을 차렸지만 죽어서 단 한 번도 제사상을 받지 못하는 세대가 지금 세대이다. 억울하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억울한 시대와 민족은 넘치고 넘친다. 그것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제사를 함께 모여 함께 준비하게 되었던 것은 엄청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함께하면서 ‘함께’가 주는 힘을 느끼고, 배려받으며 그동안 그 배려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제사는 ‘죽은 자를 위한 의식이다’ 하면서 산 자가 살아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느끼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살다’라는 ‘삶’이 빛이 날 수 있는 곳은 ‘죽다’라는 ‘죽음’ 옆이다. 비록 말이 전부지만 서로의 수고로움을 마음을 담아 애썼다고 말이라도 전하고, 상대의 노고하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제사’의 의미일 텐데 그런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의미가 없어졌으니 형식은 천천히 사라질 것은 당연한 순서이다. 그나저나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시댁환장곡-2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매일 추석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