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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Sep 11. 2023

시댁환장곡-2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매일 추석만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_2화_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매일 추석만 같으면 미춰버릴 거 같다.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제목: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매일 추석만 같으면 미춰버릴 거 같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고 주변 천지가 먹을 것들이다. 그리고 시골이면서 농사짓는 시댁은 가을에 온통 일투성이다. 시골의 가을은 사방이 거둘 것 햇것 천지다. 거둘 것이 많다는 것은 손이 갈 곳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골은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이기도 하기만 그냥 일거리가 많은 곳이다. 시골이 시댁이라는 것은 아이템 하나 없이 게임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조금만 센 녀석만 나와도 죽게 되어있다.      


추석이란 명절만으로 충분히 힘든 데 대가족에 가을걷이까지 처음에는 몰랐다. 알면 더 무섭다. 해를 거듭할수록 힘듦을 알기에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해지면 좋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편한 게 더 낫다. 하지만 그 말은 힘든 일 안 해 본 사람이 말한 것 같다. 몸이 힘들면 순간 ‘이게 지옥이지’ 하는 마음이 훅 든다. 시간은 일 초, 이 초 세어지도록 천천히 가고, 누가 시간이 후딱 간다고 아쉬워하는 사람에게 그 시간 다 주고 싶어진다. 어머니는 논과 밭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동 뜨기 전부터 나가 해가 지고 깜깜해질 때가 되어야 들어오니 가을 시골집은 말린 매운 고추 향으로, 들깨와 깨, 햅쌀과 거두어드린 것들이 가득한 창고로 변한다. 그리고 열매를 맺을 리 없는 살림살이는 거들떠보지 않는 어머니로 엉망 그 자체이다.      


시댁에 가는 시간만 5시간이고 추석과 명절은 민족대이동이라 7시간 이상 걸린다고 예상하고 간다. 며칠 집을 비우기 때문에 일주일 전부터 식재료를 사지 않고 일명 ‘냉장고 파먹기’를 한다. 귀성길에 바리바리 싸주실 어머니를 위해 냉장고를 비우지 않으면 들어갈 자리가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버려지기 쉽기에 미리 비워두어야 일이 수월하다. 긴 연휴 고생고생한 추석 연휴 후 집에 돌아와 집이 어질러 있으면 짜증이 확 올라온다. 내려가기 일주일 전부터 집 안을 정리하고 청소한다. 마음도 이렇게 정리되고 말끔해지길 바라는 사람처럼 열심을 낸다. 내려가는 사람도 맞이하는 사람도 추석을 맞이하기 일주일 전은 이것저것 일거리로 분주하다.      


밀리는 도로에서 오랜 시간이 걸려 시골집에 도착해도 쉴 수가 없다. 남들보다 빨리 나섰지만 제일 늦게 도착한다. 음식을 하기 쉽게 부엌 싱크대를 정리하고 냉장고를 정리한다. 버려야 다시 채울 수가 있다. 세 며느리 손발이 척척 맞춰가며 많은 일들을 해치운다. 함께 일하는 것 같지만 실은 각자의 일이 각각 있다. 한쪽에선 청소와 정리를 맡고, 다른 한쪽은 채소를 다듬고 양념을 만든다. 절여 놓은 배추를 가지고 김치를 담고, 나물을 삶고 무치고, 전과 생선을 굽고, 식혜를 끓이며 송편을 만든다. 가스레인지 불꽃은 송편을 찌고, 닭을 삶고, 저녁 찌개를 끓이느라 꺼질 새가 없다. 압력밥솥에서 밥 되는 소리가 요란하고 바닥 밥솥에서는 식혜 밥이 알알이 올라온다. 어머니와 남자들은 밭과 산소에 가서 풀을 베고 농약을 치고 거름을 주고 농사일을 거둔다.     

 

전쟁 같던 추석 음식 준비가 끝나면 추석 전날, 저녁 먹고 설거지가 끝나자마자 기름때와 땀내를 씻겨 내고 나면 둥근 달을 볼 기력도 없이 눕기 바쁘다. 눕자마자 자동으로 ‘아이고, 아이고’ 말이 자동 재생된다. 온몸이 안 아픈 곳 없으니 일로 추석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추석 전날, 추석날만 고생하니까 어찌어찌 이어 가고 있지 매일 매일 추석 연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추석 때 차례 지낼 음식 장만과 성묘만 해도 한결 수월할 거 같으니 말이다.   

   

추석 연휴는 왜 이리 긴 건지 연휴 끝 출근이 그리워지는 기현상을 부른다. 안 바빠도 바쁘고,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되는 나만 아는 웃긴 상황극을 하면서 추석 당일이 지나면 올라갈 궁리만 한다. 모르고 결혼했지만, 시골 농사짓는 집으로 시집가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결혼 후 나의 추석은 만만치가 않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코로나 이후 점점 간소화되고 편해지고 있다는 거 알고 있다. 차례를 생략하고 산소에서 만나 성묘만 하고 근처 관광지나 맛집을 찾는 가정도 늘고 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들으면 놀러 다니는 것도 마냥 좋은 건 아닌 거 같다. 몸은 편해지고 있고 할 일은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 여전히 추석이 힘든 이유는 왜일까? 그리고 시골에서 보내는 추석이 아닌 도시에서 지내는 추석도 힘들다 느끼는 이유는 왜일까? 어머니 세대처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집안일, 밭일에 시부모님 모시고 살지 않는데도 힘들다 죽겠다는 말이 나온다. 연휴에는 사소한 것부터 큰 싸움까지 사건이 끊이지 않는 건 왜 그런 것일까?      


여전히 시댁은 며느리를 환장하게 만들고 있는 걸로 보아선 단순히 일의 힘듦이나 음식 장만의 번거로움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 결혼하고 확장된 가족관계로 더 풍요로워져야 하는데 우리에게 시댁은 불행으로 이끄는 블랙홀이 되었다. 시댁은 모든 존재를 삼키고, 상식과 경험에 역행한다. 풍성한 추석은 상처만 풍성하게 남긴 채 끝나기 일쑤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에 진절머리, 도리질이 절로 난다. 이제는 공감이 있는 조용한 끄덕임이 있는 추석을 만들어야 원래 추석의 의미를 살리고 추석이라는 명절은 오래오래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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