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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Sep 13. 2023

시댁환장곡-5화 휴가씀씀이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5화 휴가씀씀이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5화 휴가씀씀이     


이래저래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으로도 일 년 동안 연가가 빠듯하다. 때문에, 돌아오는 수요일 시아버지 제사 때 3일 휴가를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수요일 단 하루만 휴가를 쓸 예정이다. 다소 무리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화요일 퇴근한 남편과 하교한 아이들이 데리러 오면 곧바로 출발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전에는 해남에 내려가면 청소와 빨래도 다 해놓고 짐을 꼼꼼히 싸야 해서 며칠 전부터 준비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안 했다. 아침 출근하기 전에 간단히 입을 옷과 소지품만 챙기고, 휴가이고 방학인 가족들에게 집 안 정리와 집단속을 부탁했다. 어쩔 것인가! 내가 안 하면 남편과 아이들 몫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할 때가 왔다.     


‘나 아니어도 다 돌아간다. 더 잘 돌아간다’가 나의 요즘 슬로건이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스트레스도 안 받고 상대방에게 짜증도 나지 않고 피곤하지 않아서 좋은 거 같다. 이제야 깨달은 거 같아 내가 좀 바보 같기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편안하니 괜찮다. 평일 저녁시간은 막히지 않아서 11시 안 되어 도착했다.


어머니에게 절을 하자마자 이불을 펴고 수면 모드에 들어간다. 왜냐고? 내일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푹 자야 한다. 다음날 10분도 허투루 쓰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가끔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때가 있다. 컨베이어 벨트 같다는 느낌도 들고, 전을 부치고 생선을 재빠르게 구워 낼 때는 생활의 달인, 극한 직업에서 나오는 그 비슷한 사람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제사를 지내고 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목요일 출근하려면 새벽 3시에 일어나 3시 30분에 출발해야 집에 도착해 물건 정리하고 샤워하고 출근을 할 수 있다. 후다닥 올라가는 막내네가 서운한지 어머니는 말없이 이것저것 짐 거리를 챙기신다.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나는 당당하게 ‘곧 개학이라 출근해야 해요, 추석 때는 여유 있게 있다가 갈게요’ 말한다. 어머니는 ‘그래, 빠진 거 없이 잘 챙겨가고, 조심해서 살살 올라가라’고 당부하신다.     


속으로 ‘나란 사람 참 많이 컸다. 옛날에는 어머니에게 사정 이야기, 마음에 있는 말 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웠는데 이렇게 스스럼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편하고 의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상황이 안 되는 데 눈치 보다가 말 못해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해야 할 도리에 최선을 다하면서 솔직하게 말을 하는 것을 선택했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한결 편하다. 


하지만 보령 부근에 너무 많은 비에 사고 난 차량을 보며 몸과 마음이 주말까지 몹시 힘들었다. 

하늘이 열린 듯한 폭우에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면서 무리한 일정은 좋지 않다 느꼈다. 서울, 경기는 비가 오지 않은 도로를 달리며 지난 새벽 비는 신기루처럼 느껴졌고, 무사하고 안전하고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감사한 날이었다. 


집과 시댁의 왕복 거리 700Km 와 소소하게 오고 간 거리까지 합쳐 3일 동안 1,000km 가까운 거리를 오고 갔다고 생각하니 국토대장정이라도 종주한 느낌이다. 운전하느라 고생한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뭐든 씀씀이는 넉넉하게 여유 있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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