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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Sep 15. 2023

시댁환장곡-6화 왜 나는 항상 바쁘고 힘들게 일하는..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6화 왜 나는 항상 바쁘고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6화 왜 나는 항상 바쁘고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관계에 기대가 생기려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   

   

결혼해서 시댁이란 것이 생기고 나서 맺어진 관계들은 참으로 견고하다. 어머니와 나의 관계에서 나는 영원히 며느리이다. 어머니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에 가까운 사실이다. 그리고 파생되는 관계들이 너무 많다. 올케이고 동서이고 제수이고 형수이다. 외숙모, 작은엄마, 막내며느리, 누구 엄마, 아내 나란 존재는 상대에 따라서 부르는 이름이 달라지는 이유는 시댁이란 공간은 관계를 통해 유지되는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묘한 역학관계가 사람 수만큼 존재하는 곳이 시댁이다. 이런 이름들은 명패라기보다 역할에 가깝고 시댁이란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 변하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조직이 시댁이란 공간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들이다.      


참 신기하다. 친정엄마에게 나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 관계가 참으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데 그러한 논리는 시댁은 허용되지 않는다. 요즘 나아졌다고 하지만, 친정 식구들은 나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다. 내가 뭘 하든, 해주길,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없다. 있다면 자신의 갈 길을 착실히 찾아 차곡차곡 가는 거면 족하다. 그 안에서 나다워진다. 이기적이어도 무해 하고, 무심해도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널브러져 있어도 아무도 관심 없어 거리낌 없는 ‘나’가 된다.      


그런 내가 시댁이란 시간과 공간 속에 자리하면 다른 사람이 된다. 시댁에서 밥을 먹고 그냥 거리낌 없이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훌렁 누울 며느리는 몇이나 될까?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고, 설거지는 내가 해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며느리는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 곳, 눈치껏 조심스럽게 다음의 할 일을 물어야 하는 곳이 시댁 아닐까? 어떤 식으로든 ‘나다움’이 퇴색되는 곳이 시댁의 본질이 아닐까. 상대적으로 시댁에서 많이 배려해주고 챙김을 받는 요즘 며느리들도 시댁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건 아닐까?      


객관적인 지표가 나아졌다고 하나 다가오는 부담감이 줄지 않았다면 나아진 것이 아니다.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 것이지만 요즘 며느리들은 이전 며느리들과 비교해서 더 바빠지고 다양한 일들을 하고 살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젊은 세대 며느리들이 시댁에 투자하는 비중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데 남편들이 혼자 부담했던 많은 것들을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빼고 편해졌다고 평가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으로만 바라본 것이다.     


바쁘고 번잡스러울수록 다른 일에 신경을 안 써도 되는 이상한 원리가 작용하는 것이 시댁이다.

회사는 처음 입사하면 신입사원이다. 대리, 차장, 과장, 부장 등 오르지 못할지언정 시간이 지나면 연차와 직급이 변하듯이 나의 위치와 권한이 바뀐다. 포기도 빠르고, 타협도 쉽고, 어떤 부분은 꽤 능숙해서 우쭐해질 때도 생긴다. 사람들이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공존하는 회사라는 조직은 시댁이라는 조직과 비슷한 것 같지만 결이 다르다. 시간이 흐르면 회사는 익숙해지지만, 시댁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만 행사와 모임이 반복될 뿐이다. 수틀리면 회사는 집어치우면 되지만 시댁은 그렇게 하기엔 그리 만만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지금 맞고 있는 폭풍보다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다.   

  

모든 조직에는 고인 물이 있고 대게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그래서 조직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고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올해 발령받아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조직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가 아닌 이상 하기 싫은 일, 불편하고 복잡한 일, 상대적으로 많은 일이 배정 받으면서 조직의 생태라는 것이 신규에게는 원래 가혹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같은 맥락에서 시댁은 근본적으로 일이 많은 곳이다. 그리고 며느리라는 신규 외부인에게 많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배정되는 건 당연한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배려받았다고나 하나 오랜 세월 함께 보낸 시댁 식구들을 이길 수가 없다. 시댁 식구들에게는 익숙하고 쉬운 일도 며느리에게는 낯설고 태어나 해본 적이 없는 그런 일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며느리는 노력해도 도통 적응이 안 되고, 시댁과 관련된 모임, 행사 예를 들어 제사, 설날, 추석은 부담되는 일이 되어버렸고, 두렵고 무서운 나머지 싫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시간이 흘러도 시댁 테두리를 벗어던지지는 못하고 의도한 것은 아니고 더더욱 계획을 세운 건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아이를 키우느라 고단하고, 직장을 구해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며 시댁의 불편함을 그냥 덮고 살게 된다. 시댁에서는 새로운 것을 아예 만들지 않고 이전부터 이어져 오는 것들 하나씩 흐지부지 만들면서 최소한의 것들만 하려고 하면서 말이다. 시어머님 생신, 시아버님 제사, 추석, 설 연휴만 간신히 챙기며 산다. 솔직히 그것도 꾀가 나서 못 갈 궁리만 찾으면서 말이다. 25년이란 시댁의 테두리에 어슬렁거리며 익숙해지고 편해진 것도 많다. 하지만 나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좋지 않은데 어쩔 것인가. 불편하고 씹히지 않는 이물감은 나아졌을지라도 사라지지 않고 입안을 계속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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