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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20. 2023

시댁환장곡-26화 설명절 슬기로운 남편의 처세는?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26화 설명절 슬기로운 남편의 처세는?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26화 설명절 슬기로운 남편의 처세는?


왜 시댁에 다녀오면 감정의 찌꺼기들이 생기는 걸까?


웃고 떠들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 항상 서운한 마음, 짜증 났던 상황과 어색했던 제스처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나란 사람의 그릇이 원래 크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인데 내 그릇의 치수를 시댁과 관련된 일에서 확인하게 되는 건 싫다. 넉넉하지 않지만 작다는 말은 안 듣고 살고, 멋지진 못해도 예민하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는데 말이다. 잘 숨겨왔던 내 마음의 어두운 바닥을 끄집어내는 일련의 일들이 싫은 게 본심이다. 비록 속이 좁은 사람이라도 속이 좁은 것을 확인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시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곱씹게 된다. 시숙님의 무례한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 한 내가 더 싫다. 시키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이름도 시누이인가? 본인이 일하면 상대도 일해야 하는 무한이기적인 관계는 수다를 사랑하는 나도 입을 다물게 만든다. 동의하지도 않은 일을 당연하게 하려니 하는 것을 따지는 것도 우습다. 우스갯소리인 거 알면서도 뼈와 속내가 느껴지는 건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어머니는 오로지 일, 일할 생각만 한다. 그래서 복잡하게 교묘하게 고단수로 힘들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리적 일의 양만으로도 고개가 절로 흔들어진다. 집안일은 노력하면 되는 거지만 농사일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어머니에게 며느리는 사랑하는 가족, 자식 같은 남의 자식이 아닌, 그냥 일꾼인 거 같다.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도 스스로 하는 일이 아니면 괴롭다. 시댁에서 하게 되는 일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은 없다. 애초에 즐거움을 찾기를 바랐던 마음이 잘못된 것이다. 맞지 않음을 맞지 않다고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내가 더 미운 건 내 그릇 크기 때문이다. 작은 그릇에 그것도 채우지 못한 속내는 내 몫이다.  

    

시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감정이 대부분이다. 어떤 문제를 보더라도 그것을 해결할 능력도 없고 명분은 없다. 결정이 나면 그것을 수행할 뿐이다. 단순히 시댁에서 며느리는 여러 가지 정황상 현명하게 처신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막내며느리에게는 생각하고 결정할 권리 또한 없다. 결정의 영역에 속해 있지 않기에 나의 현명함은 있더라도 진주처럼 조개 속에서 묻혀 있어야 한다. 그런 현실은 답답하고, 냉소적으로 만들고, 짜증과 불만이 쌓이게 만든다. 그런 감정의 상태를 모두에게 열심히 숨기지만 숨길 수 없는 숨기지 않는 사람이 남편이다.    

  

며느리에게 남편은 숨통일까? 먹통일까?


시댁이란 공간에서 낳아준 엄마와 사랑하는 아내 사이에서 슬기롭게 처신할 수 있는 남편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슬기로운 남편이 어떤지 고민하기 이전에 그것이 가능한지부터가 더 의문이긴 하다. 가능하지 않다면 슬기로운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남자주인공들은 멋진 외모만큼 환상을 심어줬다. 그들은 모두 자기 부모, 형제보다 사랑하는 연인, 아내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잘 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주인공도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데 하물며 보통의 생각, 이기적 남성인 내 남편이 엄마와 아내 사이에서 누구에게도 나쁘지 않고, 누구라도 희생시키지 않고, 상처를 입히지 않는 것이 가능한 건지 의문스럽다. 여기서 슬기롭다는 말은 양쪽 모두를 아우르는 만족스러운 답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확실하게 인식한 남편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입장을 지지해주는 것이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해 안 되는 결혼한 남자들의 행동 중 하나가 결혼과 동시에 효자가 되는 것이다. 원래 효자이고 자신의 엄마를 끔찍이 생각했더라면 받아들이기 쉬웠을지 모른다. 왜 결혼해서 어른 되는 것이 효자 코스프레로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고 옳고 그름을 떠나 남들처럼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엄마와 아내 사이에 있는 남편이 슬기롭게 처신하고 싶다면 이런 조언을 해주고 싶다. 여자를 만족시키는 일은 예술 행위와 같다. 아주 섬세하고 꼼꼼함이 필요하다. 대충 자기 성격 그대로 고수하면서 인심이나 좀 쓰려고 생각하려고 하는 거라면 아예 시도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섣불리 했다가 욕만 한 바가지 뒤집어쓰고 양쪽에서 원망만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일 어려운 일은 같은 상황에서 저번에 맞았다 하더라도 이번에 맞을지는 대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신비의 묘약으로 결혼하자마자 효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아내를 외면하고 엄마를 선택하면 지금 당장은 무사할지 몰라도 노후에 힘들어질지 모른다. 남편의 처지에서 효를 실천한 것뿐인데 아내로서는 그건 배신이기 때문이다. 선택은 남자들의 몫이지만 시간은 아내의 편이라는 사실을 알기를 바란다. 머리가 있다면 생각해봐라. 결혼해서 엄마와 아내 중 누구와 더 오래 살아갈 것인지, 그리고 자신의 삼시 세끼를 누가 차려 주는지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누구의 영향력이 커질지 생각해봐라. 회사에서 오래오래 일하고 싶으면 줄을 잘 잡아야 하듯이 집에서 오래오래 밥 얻어먹고 싶으면 누구 편에 들어야 하는지 말이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다.     


남편은 나의 편이기보다 항상 엄마와 형제들 편이었다. 낯선 시댁보다 남편의 서운함이 어쩌면 더 속상했는지 모른다. 남편과 나는 사랑해서 결혼했다. 결혼이 남편이 더하기였다면 나에게 뺏기였다. 나는 결혼이라는 것으로 가족도 일도 모든 것들이 바뀌었는데 남편은 변한 것은 없었다. 남편의 그려놓은 꽃밭의 풍경에 나는 나비처럼 익숙하고 당연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뒤바뀌고, 전복된 환경 속에서 나 자신도 주체 못 할 때 평범하고, 편안한 남편의 일상은 짜증이 났다. 결혼이란 제도는 여성이라는 무대 속 현실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고 인식하게 된 첫 번째 경험이다. 그리고 그 연극무대의 배경은 시댁이고 대본이 정해져서 해야 할 말이 정해진 역할만 하는 배우였던 것이 싫었다. 나를 잊고 새로운 인물을 살기 위해 배우는 무대를 선택한다. 하지만 나는 나를 찾고 싶었지, 배우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엄마와 아내 사이에서 슬기로운 것은 포기하고 원망은 받고 싶지 않다는 남편이 조언을 구한다면 ‘따뜻한 침묵’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다. 시댁에서 남편이 엄마 편만 들면 있던 정도 없어진다. 그렇다고 속없이 아내 편만 들면 마음이 편하냐 그렇지도 않다. 몸은 편할지언정 마음은 불편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내의 편을 들 때 편을 들어주는 아내 관점에서 고맙기는 한데 뭔가 들킨 거 같은 발 연기하는 아이돌 남자처럼 보기가 쉽지 않다. 편을 들어줘도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잘 모른다. 


남편 속마음은 ‘봐라, 내가 네 편 들어준 거 봤지?’ 라는 마음가짐은 초등학생이 눈높이 수학 대충 풀어놓고 밖으로 나가 노는 그런 느낌이랄까. 편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편들어 줬다. 같은 결과를 나타내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남자들은 모른다. 코치를 받아서 편들어주는 것은 연기이고, 일회성에 끝난다.


매번 연기지침과 대사를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때 아내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씁쓸해진다. 잘하고 싶은 남편에게 뭘 해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같이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꼭 내 편이 되어주지 않더라도 그게 진심이면 한발 물러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항상 아내 편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자신의 속마음과 생각을 전달하고 이해를 구하는 일에 게을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자들은 어떤 결과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성의가 없음에 화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편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다른 것으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보답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게 무슨 일이든 말이다. 아내에겐 시댁이지만 남편에겐 그냥 자기 집이다. 자기 집에서 무슨 일을 하든 누가 신경을 쓰고 뭐라고 할 것인가 말이다. 표시 나지 않게 말하지 않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속상했을 지점, 상황, 말들을 아내가 먼저 꺼내기 전에 먼저 꺼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짜증이 났던 상황도 상황이지만 그것을 먼저 입에 올린다는 것은 또 다른 짜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남편들이여 이런 말은 그냥 외워라.      


아내에게….

1. 아까 불편했을 텐데 잘 참더라. 나보다 당신이 어른인 거 같아. 배울 점이 많아.

2. 결혼해서 나만 편해진 거 같아 미안해. 당신이 어떻게 하면 편해질 수 있는지 알려줘.

3. 나는 내 집이라 편한데 낯설었을 텐데 고생 많았어. 집에 돌아가면 다 시켜. 내가 다 할게.

4. 고생했어. 고맙게 생각해

5. 항상 당신 편인 거 알지? 모르면 알고만 있으라고.     


엄마에게….

요즘 회사에서 힘든 일이 많은가 봐요. 그만둘까 봐 저도 안 건드려요.

전화 왜 했냐고? 나보다 00 엄마가 엄마를 더 걱정하는 걸로 봐서 아들은 소용없는 거 같아.

맘에 안 들어도 이해해줘요. 00 엄마가 편해야 내 인생이 편해.

엄마, 건강하고 사랑해요. 결혼하니 이런 말도 하고 철들었지?

항상 엄마 편인 거 알지? 서운하다고 생각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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