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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19. 2023

시댁환장곡-25화 시어머니는 며느리만 힘든 게 아닙니다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25화 시어머니는 며느리만 힘든 게 아닙니다.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25화 시어머니는 며느리만 힘든 게 아닙니다.


대외적으로 객관적으로다 시어머니가 올라오시면 누가 힘들까? 에 대한 질문은 너무 쉽다. 마치 1+1=2 라는 계산식을 푸는 것과 같이 말이다. 며느리가 부담스럽고 수고로울 거란 생각이 상식으로 통한다. 이런 생각은 일단 맞다. 하지만 실상을 조금 더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알고 있는 것,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설 연휴에는 아들형제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설음식을 준비하기에 육체적으로 힘든 걸 피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명절연휴 음식을 중심으로 하는 가사노동은 특히 음식 장만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점점 간단하고 조촐해지고 솥뚜껑운전 경력 20년이 넘은 사람이 며느리만 3명이다. 마음만 먹으면 한나절이면 후다닥 해치울 수 있는 일이다.     

     

연휴가 지나면 어머니는 아들자식들 집에 돌아가면서 지내는데 왜인지 막내인 우리 집에 더 많이 머무신다. 시숙님 네에서 낮에 종일, 형님들이 늦은 귀가로 저녁에도 혼자 계시면 남편이 안부전화하면서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와서 그러한 듯하다.     


남편들 문제의 99퍼센트는 물어보지 않고 일단 지르고, 행동하고 통보하면서 생기는 것은 아닐까? 남자들의 뇌구조는 역사적으로 이기적 유전자가 박혀있어서 본인이 개의치 않고, 불편하지 않다고 느끼면 다른 사람들도 그러하다고, 그럴 거라 생각하는 거 같다.

     

남편의 이런 생각 없음에 결혼하고서 이해가 도통 되지 않았고, 따지고 서운해 하는 나를 이해 못하는 남편에게 처음에는 화가 났고 나중에는 변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답답함이 되어 단단한 벽이 되었다. 벽은 소통을 막고 소외를 낳지만 궁극에는 며느리인 나는 ‘가족’이 아니라 ‘타인’이라고 인정하게 만든다. 가족이라는 소속감을 획득할 수 없기도 하지만 책임감도 가질 필요도 없다. 30대 아니 40대까지도 노력하면 가족이 되고, 함께한 시간만큼 소속감도 자연 생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가족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의 무지가 만들어 낸, 시댁 식구들의 이기심으로 쌓은 견고한 벽은 이젠 나에게 숨을 곳이 되었고, 타인이 되어 끼어들지 않고 관전만 해도 되는 후방지역이 되었다. 벽이라 보이지 않으니 눈 감으면 그만이고, 단단한 벽이라 기대어 쉬면된다. 그리고 지금은 그 벽이 싫지 않다.     

결혼해서 온통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믿을 건 오로지 남편이고 우린 사랑하는 하나인데 남편에게 시댁은 오랜 세월 익숙하고 편안한 곳인 반면, 며느리인 나는 낯설고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부부가 ‘한 직선’이 아니라 ‘평행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고나니 더이상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 오늘 회사에서 동료와 업무적으로 의견이 안 맞았다고 사표를 쓰지 않을뿐더러 잠을 못자는 건 아니니까. 나와는 달리 업무를 바라보고 처리하는 것을 보고 맞지 않아도 조용히 거리두기하고 접점을 만들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시어머니 며칠 집에 와계셔도 퇴근길에 장 조금 봐와서 불고기 전골 같은 국물 있는 메인요리, 도토리묵, 계란찜, 무나물 등 부드러운 반찬들 몇 개만 하는 저녁한 끼 해드리면 된다. 밥 하는 것이 귀찮고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동안 무엇을 하든 저녁 한 끼니는 하면서 살았기에 어려울 것도 없다. 요점은 어머니가 오셔도 평상시보다 신경 쓴 저녁준비해서 다 같이 먹고, 과일 먹고 커피마시면서 거실에서 TV보다가 잠자러 가거나 일한다고 공부한다고 서재 방에 들어가면 힘들 게 하나 없다. 완전히 자유롭다는 말은 못하지만 도저히 못 하겠다는 아니란 말이다.     


대내적으로 주관적으로 시어머니가 올라오시면 제일 힘든 사람은 며느리인 내가 아니라 손녀인 내 딸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솔직히 설 연휴가 지나고 나면, 나는 출근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딸은 너무 시간이 많은 관계로 그리고 알바도 하지 않기에 3월 신학기까지 자유 그자체이다. 하지만 그 자유가 할머니로 불안해졌다. 낮 12시가 넘어서까지 자는데 눈치가 보이나보다. 그리고 본 것은 있어서 뭔가 챙겨드려야 할 거 같은 마음이 생겨서 커피도 타 드리고, 귤이나 고구마도 드리고 산책이라도 나갔다오면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빵 등을 사가지고 온다. 그리고 종일 거실에서 트로트가요나 언제적 드라마인지도 알 수 없는 드라마를 무한 시청중인 할머니로 인해 거실도 편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행성이라 밤에 친구들과 전화나 줌으로 수다도 떨어야 하는데 편하게 말하기 쉽지 않아 눈치가 보이나보다. 안방에 침대2개를 붙여나서 넓어서 같이 주무시자고해도 아들, 며느리 안방 차지했다는 말은 듣기 싫어서인지 잠은 꼭 딸 방에서 주무시기 때문에 딸이 더 힘들다. 할머니가 오시면 아빠와 오빠는 아무런 침해도 없고 힘들지 않은데 자신만 힘들다 생각하니 억울하고 속이 상한 듯 하다. 감정이 상하는 건 힘듦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슈퍼싱글침대라고 해도 둘이 자기엔 좁다. 엄마를 무지하게 좋아하고 스킨십도 잘하는 딸이지만 잠은 혼자 자는 것을 고수하는 습관이기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유튜브 영상 틀어넣고 자기 방에서 운동도 하고 싶고, 밤늦게까지 영화보고, 음악도 자유롭게 듣고 싶은 듯 하다. 자기 시간을 못 보내니 여간 힘들었나보다.     


부담스러워하고 불편해하는 딸에게 나는 그냥 편하게 하라는 말밖에 그리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눈치 보지 말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하고 안쓰러웠지만 현명하게 뭐라 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내 문제는 해결된 거 같은데 딸 문제는 해결해주기가 쉽지 않았다. 이것은 해치워야 하는 일이 아니라 미묘하고 부자유스런 감정이기 때문이다. 딸을 포함한 요즘의 청년들은 누구와 공간을 나누어 써 본적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일상을 침범 받는 것도 싫어한다. 이것은 이기적이어서도 아니고, 싸가지가 없어서도 아니다. 우리의 일상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훨씬 더 취약해져 오는 감정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엄마인 나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편안해지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도 나이 먹고 늙어 가다보니 젊은 청년들이 늙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꺼려하고 불편해하면 이해하면서도 조금 서글프다. 젊은 그들에게 서운하다고 할 것이면 관계가 나아질 수가 없다. 늙어갈수록 젊은 너희들보다 더 지혜롭고 더 멋진 일상과 앞서가는 가치관으로 무장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다짐한다. 속으론 젊은 사람들의 깔끔함이 실은 속좁음이라고, 정확하게 본 현상은 실은 입체가 아닌 단면만 본 작은 시야라고 생각하지만 접는다. 알면 젊음인가 모르니까 젊음이지 하고 넘긴다.     

할머니가 화장실 사용하면서 화장지를 변기에 넣지 않고 휴지통에 아무렇게 넣는 것을 질색하는 딸에게 ‘엄마도 늙으면 할머니보다 더 할 수 있어, 할머니가 잘 했다는 건 아닌데 늙으면 그렇게 되더라. 우리가 이해하자.’ 딸은 다른 건 다 이해하고 참을 수 있는데 화장실은 극복이 안 된다며 아무렇지 않게 치우는 엄마인 나를 존경의 눈빛을 보낸다. ‘부족한 건 나쁜 건 아니니까, 너도 불편하겠지만 할머니도 표현을 안해서 그렇지 편하지만은 않을거야. 참 어려운 문제다. 엄마는 이해가 되기도 해, 그런데 엄마가 네 나이였을 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건 아니야. 10대, 20대 나이에는 이런 게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감당되면 50대 맞이하는 엄마는 좌절될 거 같아. 20대에게 도통 이길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뻔뻔해지고 얼굴이 두꺼워져서 싫은 소리에도 끄떡도 안한다. 그리고 미안한 말도 상처가 되는 걸 알면서도 해야할 말이라면 말을 한다. 편안해진만큼 더 나아지려는 노력도 안한다. 화내고 울고불고 난리쳤던 아우성을 ‘사랑해’라는 말로 해석의 오류가 발생하는 걸 보니 늙어가고 있는 건 사실인가 보다.     


앞으로 딸이 불편해하고 속상할 때, 내가 어떻게 말을 전하고 그런 마음을 좀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과제가 하나 생겼다. 설명절과 시어머니 올라와 계실 때, 딸에게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하고 공감과 위로가 부족한 지금의 나처럼 과거의 남편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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