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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21. 2023

시댁환장곡 30화 아들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30화 아들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30화 아들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대부분 아내는 자기의 남편이 효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시댁에서 힘들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효자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공자, 맹자 이야기하는 효의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 없다. 내용과 의미는 사라지고 다만 효자라는 단어만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현재 결혼한 남자를 효자라고 지칭될 때는 존경이나 긍정적 메시지는 아니다. 남의 시선과 잣대를 중요시하는, 자발적이기보다 ~해야 한다는 강박에 하는 고루하고 답답한 옆의 사람 미치게 만드는 발짝 버튼처럼 되어버렸다. 아무튼 효자라는 단어가 결혼 전의 남자에게는 ‘마마보이’로 결혼한 남자에게서는 ‘아내 고생’으로 프레임으로 작용한다.   

   

사적인 대화 속에서 백이면 백 남편을 설명할 때, ‘효자예요’ 그 말에 돌아오는 말은 ‘힘들겠다’이다. 그리고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더 안 들어도 알겠다는 강한 끄덕임의 제스처가 현재 효자의 이미지이다. 남자들은 반감이 들지 모르겠지만 현재 결혼 한 남자는 불효자이거나 효자인 척하는 자로 나눠진다. 그럼, 효자는? 미안하지만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야박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부모님이 돌아가신 아들은 모두 효자가 된다. 그러면 좀 화가 누그러지지 않을까.      


부모님 살아생전에 남자는 효자 되기 어렵다. 아내와의 엄청난 갈등을 이기고 선택해야 하니까 말이다. 이걸로 효자가 못 되는 이유를 아내라고 결론 냈다면 그런 논리의 전개와 단순함에는 답을 할 수가 없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은 모두 진심이다.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모두 옳은 것이 아닐 수 있다. 내게 한 없이 좋으시고 헌신과 존경의 대상이 되는 부모님도 상대방에겐 한 없이 이기적이고 나약함과 모순덩어리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에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많은 갈등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차이를 인정하기 전에 아는 것도 중요하니까 말이다.     


공식적인 통계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출산의 형태를 보면 아들에 대한 가치판단에 변화가 생긴 건 확실한 거 같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던 시기 2000년 전후에는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 건 언제 낳느냐의 시기적 차이를 고민하지, 낳는 건 당연하였다. 그리고 낳으면 셋은 엄두가 안 나지만 하나 보다는 둘을 낳는 것이 보편적 정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는 둘에서 하나로 요즘에는 결혼한다고 아이를 다 낳는 것도 아닌 거 같다. 


그리고 첫애를 낳고 육아가 엄청난 에너지와 일상의 변화를 불러온다는 것을 겪은 후 둘째는 거의 낳지 않는 거 같다. 요즘은 안 낳거나, 하나만 낳거나 아니면 못 낳거나 이런 경우의 수가 많아진 거 같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주변 사람들 통계치이지 객관적인 지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둘을 낳은 부부를 보면 첫애가 아들일 경우가 많다. 딸을 낳고 싶어서 둘째를 낳는 추세이다. 첫애가 딸이면 거의 출산이 끝난다. 그리고 아들이 둘이면 주위에서 안쓰러움과 걱정의 시선과 위로의 말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아들의 가치는 많이 폭락했다. 주식시장으로 치면 상장 폐지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성장주, 기술주도 아닌 잡주식에 가깝게 취급된다고나 할까. 우리는 지금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 세상, 점점 제사를 안 지내는 집이 많아지면서 아들만의 고유한 영역이 사라지면서 가치는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조금 늦고 빠르고의 문제지 확실한 미래인 것이다.     


아들의 가치는 그러면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아들도 아들 나름이라고 꽤 괜찮은 아들 하나는 딸 5명보다 낮다고 생각한다. 다만 많지 않아서 그렇지, 존재한다. 꽤 괜찮은 아들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결혼해서 너무 심하게 어머니와 형들과 누나들을 챙기는 남편을 보고 절망했다. 남편은 나도 사랑하지만, 어머니와 형들, 누나들도 사랑하고 있었다. 


절망스럽기까지 한 것은 내가 도저히 30년의 세월의 벽을 넘을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 남편의 인생에서 나를 사랑한 시간은 불과 2년이 채 안 되었지만, 어머니와 형들과 누나들을 사랑한 시간은 30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경제적 지원은 남편에게는 고마움이자 마음의 빚이 되어 삶에서 우선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결혼하고 나서 알았다. 다 나 같은 줄 알았다. 친정엄마를 사랑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무조건 따르진 않았다. 오빠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나이 차가 없어 친구처럼 자라서 무언가를 주고받을 처지가 안되어 마음의 빚이 자리할 건더기가 없었다. 

   

남편이 효자면 아내는 피곤한 것은 사실이다. 시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오시면 항상 고속버스터미널로 모시러 가고 큰 시숙 님댁에 모셔다드렸다. 큰 시숙님 댁에 아무도 없으면 우리 집으로 모셔 와 저녁 준비를 나에게 시키고 나서 큰 시숙 님댁에 모셔다드렸다. 시골에서 바리바리 싸 온 농산물을 누나들이 사는 집에 일일이 배달하여 전달하고 어머니가 딸 내 집에 가고 싶어 하거나 무료하다 느끼면 모시고 데려다주는 일을 도맡아 했다. 모시러 가고 오는 건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논농사를 짓고 있을 결혼 초창기에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주말이나 연휴에 어머니 농사일을 도우려고 해남에 내려갔다. 농약을 쳐야 한다는 이유였지만 엄마 얼굴을 보고 오려는 마음이 컸다고 생각한다. 7년 전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을 때 전화를 받자마자 모일 것을 멈추고 해남으로 내려간 사람은 남편이었다. 7남매 모두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자기 일을 열심히 한 사람들이라 가게를 닫고, 아이를 놔두고, 사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술하고 입원 기간 돌아가면서 간병하더라도 자기 순서는 당연하고 다른 사람이 안 되면 자신이 하고 갈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그리고 퇴원 후 셋째 누나네에서 머물고 있을 때도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을 사다 날랐고, 누나에게 더 살갑게 했었다. 

    

아내로서 남편이 효자도 아니면서 효자인 양 굴면 짜증이 나지만 효자인 것 같이 느껴지면 조금 양상이 달라진다. 결혼해서 시댁의 복잡한 인간관계와 제사와 명절로 힘들었다. 하지만 결혼 전보다 친정엄마에게 더 잘한 것도 사실이다.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 바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반만 하더라도 좋은 딸이 되어가고 있었던 거 같다. 


비록 내가 힘들지만, 진심이 깃든 행동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부모에게 잘 하고 싶은 건 죄가 아니다. 다만 덩달아 내가 피곤하고 분주해지는 문제가 있지만 그건 남편을 사랑하는 한 감당이 되는 범위이다. 남편들이 아내에게 잘해야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어떤 아내도 남편이 미워 죽겠는데 시댁에 잘 하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남편을 보면서 아들이 있다면 남편 같은 아들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 같은 아들이라면 굳이 딸을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50세가 넘은 남편은 어떨까? 글쎄다. 자기 코가 석 자라서 그런지 어머니에게 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다. 역시 부모님 살아생전 효자는 없구나! 다시 확인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남자들이 끝까지 능력 있고 좋은 성격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들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겠지만 괜찮은 아들은 열 명의 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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