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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21. 2023

시댁환장곡-29화 시어머니가 제일 두려워 하는 것은?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29화 시어머니가 제일 두려워 하는 것은 뭘까?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29화 시어머니가 제일 두려워 하는 것은 뭘까?


처음 결혼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어른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건 결혼해서 시댁이 처음이었다. 어려서 외갓집에 제사도 많아서 매달 저녁에 부모님을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어려선 외갓집에 가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층 거실에 책들을 마음대로 보고, 종일 놀고 빈둥거려도 바쁜 어른들은 신경 쓰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마냥 좋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상상력과 자유로운 영혼은 그때 형성되었을 거라 확신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을 꿈꾼다. 그리고 결혼은 사랑의 행로라고 생각했고, 아이는 결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생각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환상이었다는 점을 결혼하고 첫 추석을 맞이하고 나서였다. 시댁이 시골집 그리고 대가족의 농사짓는 집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시골은 도시 생활에서 모두 뒤처진다. 그 말인즉 편의시설뿐만 아니라 사고방식과 전통도 옛날의 방식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0년에 결혼했는데 1970년에 결혼한 느낌이 드는 건 시어머니와 시숙님 그리고 시누이들이 그때의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처음 시댁에 대한 인상은 대한민국의 교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최우선인 것이 교회 같다. 시어머니는 예수님이고 목사님처럼 그의 마음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 성도 간에 돈독하고 나누고 경계가 없는 것이 형제애이다. 첫째부터 막내까지 위계질서가 중요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챙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말을 거역하는 법이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정엄마는 오빠와 나에게 최선을 다해 챙겼다. 두 명이 전부였기에 각자의 취향대로 음식과 옷을 준비해 주셨다. 항상 시선은 오빠와 나의 필요가 무엇인지 살피는 환경에서 지내다가 내 것, 네 것 없이 모두 함께 사용하는 생활은 너무 버거웠다. 수저와 베개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별거 아닌데 처음으로 그동안의 내 삶을 되돌아본 계기가 되었다. 결혼 전 내 삶은 나만 생각해도 되는 인생이었다. 작은 인원 속에서는 자신을 인식할 필요가 없다. 비교할 대상도 나눌 물건도 함께할 공간도 없기에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니까.     


시댁에서의 생활은 내 것을 포기해야 하는 삶의 시작이었다. 남편은 자기 것이 생기고 나는 내 것이 없어지는 것이 결혼에 대한 차이점이다. 형제라고 해 봤자 오빠와 내가 전부인 관계에서는 갈등이 증폭되지 않는다. 섬과 섬이라고 할까. 각각 독립된 존재이기에 미치는 영향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대가족에서는 아주 작은 불씨도 쉽게 화재로 이어지고 수습해도 피해가 크고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개인의 행동은 위험하고 위태롭게 만들기에 형제라는 큰 틀, 가족애라는 테두리를 만들어 서로를 챙기면서 단속할 수밖에 없다. 결혼해서 남편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막둥이 아들, 막냇동생이었다. 관계가 바뀌면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달라진다. 거짓은 아니라 또 다른 면일 것이다. 그것도 그 사람의 일부였다. 다만 결혼 전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는 점이다.    

 

우리 시댁은 대가족이다.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시어머니, 7남매, 그리고 그 형제가 결혼해서 생긴 배우자가 7명, 그리고 집집이 2명의 자녀를 낳았다. 친척 하나도 안 모이고 가족만 모여도 29명이다. 결혼해서 10년 동안 해마다 백일잔치, 돌잔치가 있었다. 돌잔치 끝나면서 10년 동안 해마다 고3이 있었다. 그것이 끝나면 결혼이 해마다 이어질 거로 생각했다. 다행인지 2명의 조카가 결혼하고 나서 한동안 잠잠하다. 결혼이 늦어지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회적 흐름이 우리 집에도 반영된 것이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7남매와 7명의 며느리, 사위들의 환갑이 시작되었다. 환갑잔치의 순서가 나에게 오면 끝난다. 그리고 조카들이 한 명씩 결혼하고 손주들을 나겠다 싶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가 되어있겠다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한다. 사회가 개인화되고 분절화되는 흐름 속에서 삶의 대소사에 모여 함께하고 축하해 주며 사는 것은 참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만 있는 것은 앙금 없는 단팥빵 같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많이 한다. 그래서 뭘 해도 마음이 담긴 행사와 모임을 하고 싶다. 몇몇 소수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는 제사와 상차림은 이제 싫다. 그리고 행사를 위한 행사, 의무감에 모인 모임은 거절하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평생을 7남매를 바라보고 사신 시어머니에게 시선이 간다. 어떻게 저렇게 사실 수가 있지? 고생이 몸에 배 힘들다 하면서 농사를 놓지 못하신다. 큰돈이 안 되는 걸 알면서 있는 땅에 뭐라도 심으면 자식들 챙겨줄 거리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못 놓으시는 것 같다. 늙고 병든 몸 그리고 살날보다 죽을 날이 가까운 인생에서 원이 있다면 자식들이 하는 일이 순조롭게 승승장구해서 아빠 노릇, 엄마 노릇 잘하며 알콩달콩 사는 모습 아닐까, 생각되었다. 사네 못사네! 그런 말 안 하고, 자식들이 죽고 못 사는 손주들 잘 되어 자식들 마음 편안해지길 바라는 건 아닐까. 


시어머니 나이가 85세이다. 그 나이에 젊은 사람도 힘들다는 농사일을 하는 현역이다. 규모가 집 앞 텃밭이 아닌 정말 이걸 혼자 한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양이 많다. 어쩌면 그 욕심이 있었기에 혼자되어서도 굶기지 않고 7남매를 키워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 사랑이 7남매에만 향해져 있는 것이지만 그건 바꿀 수 없는 혈육의 정이니 인정한다고 해도 며느리로서 생각은 조금 다르다. 어쩜 한결같이 딸보다 아들이 중하고, 아들이 잘 못해도 아들 편만 들 수 있는지 존경스럽다. 나도 자식 있고 엄청나게 사랑하는데 시어머니의 자식 사랑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고 했다. 시어머니의 가장 큰 약점은 아들이다. 그리고 언제부터 난 그 약점을 틀어쥐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아직 모르실 거다. 알릴 필요도 없고 말이다. 약점을 쥐고 흔들 생각이 없으니까 말이다. 약점을 이용하면 왠지 하수 같아지는 거 같고 그런 대물림은 이제 나의 시대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믿으니까. 상대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 그건 무기가 되고 여유를 만들어 낸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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