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대로 삶 Oct 21. 2023

시댁환장곡-28화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하시나요?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28화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하시나요?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28화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하시나요?

 

추석, 설날, 생일, 제사, 어버이날 등 이름은 다 다르지만 결국 ‘모임’을 의미한다.


모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여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결국 먹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좁혀진다. 먹기 위해서 재료를 사고, 재료를 다듬고, 많은 종류의 음식을 준비한다. 고기와 생선, 과일과 한과, 전과 나물, 갈비찜과 잡채, 닭을 삶고 고기를 삶는다. 그리고 디저트 할 케이크와 쿠키 등 넘쳐난다. 준비하는 과정은 힘겹지만 조용하고 조촐하게 지내는 분위기 속에서 풍성한 음식은 어머니와 형님들의 넉넉함에서 나오는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음식 준비는 손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에 손맛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 건지 모른다. 음식 준비에서 오디오를 채우는 것은 칼질, 물소리와 불에서 음식이 익어가는 소리에서 수다가 채운다.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음식 준비는 세 며느리가 모여서 해서 근황을 묻고 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세 명의 며느리 한가한 사람이 하나 없다. 그래서 항상 오랜만에 만난 모임이 된다. 큰형님은 재료를 씻고, 손질하는 것을 하고, 둘째 형님은 나물을 삶고 무치며 저녁 반찬을 만든다. 그러면 셋째인 나는 거실 바닥에 앉아 동그랑땡, 꼬치전, 생선전을 부치고 나서 각종 생선을 굽는다. 전과 생선은 음식 솜씨가 없어도 가능한 일이기에 내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전 선생’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능숙해졌다.


세 며느리가 모여 재료를 손질하며, 나물을 무치고, 전을 부치며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안 본 사이 잘 지냈는지? 안 좋은 일은 없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안부를 주고받는다. 설마 일부러 그런 거 아니겠지? 모두가 하루하루 바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남편들은 하나 같이 마누라 소중한지 모르는지, 아픈 것으로 치면 무슨 대회 하는 것처럼 안 아픈 곳이 없다. 


며느리들은 별일 없이 살면 안 되는 존재인가. 편안하게 살면 왠지 잘못 사는 것인 양 삶이 녹록지 않다. 솔직히 이만치 사는 것이 감사하고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이 운이 좋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시댁에서는 속 편하고 몸이 한가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거 같다. 그러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이 혹시나 뭔 짐이라도 지어줄까, 바리케이드를 치는 건 아닐까? 그런 앓은 소리도 인사말처럼 그러려니 한다. 안부에서 애들 근황으로 넘어간다. 직장은 잘 다니는지?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는지? 사귀는 사람은 있는지, 결혼했으면 아이는 안 생겼는지, 무슨 진로를 고민하는지 애들이 들으면 기겁할 질문들을 서슴없이 묻고 아무렇지 않게 답한다. 


우리 시댁의 장점 중 하나가 모두 한마음으로 자식들이 건강하고 진로를 잘 선택해 자리를 잘 잡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점이다. 좋은 일에 축하가 진심인 것만으로 모임이 즐거워질 수 있다. 세 며느리는 아주 친하고 서로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조카들이 진심으로 잘 되고 행복하길 바라는 점은 감사한 일이다. 며느리들의 수다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기-승-전-남편 흉으로 끝난다. 서로의 남편이 얼마나 구제 불능인지, 누가 더 이기적인지를 세세한 에피소드를 들면서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있으면 순화해서, 없으면 미운 감정까지 실어서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세 며느리는 천하의 나쁜 남자들과 결혼한 한없이 가엽고, 가련한 운명의 주인공들이 된다. 


남들은 남편에 대해 흉볼 일이 그렇게 많냐고 물을지 모른다. 대답은 끝이 없다. 왜냐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기적이라는 성격에 세세한 에피소드는 계속 만들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편의 욕과 시숙님들의 흉을 시댁 안에서 해야지 밖에서 하는 건 별로다. 왜냐하면 시댁과 무관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시댁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부인하더라도 그 시댁이 가족으로 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밖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내 가족 욕하기, 내 얼굴에 침 뱉기’라고 생각한다. 속일 생각은 없지만 굳이 남에게 나서서 욕하고 흉보기는 싫다. 이 무슨 이상한 감정인가 말이다. 


그리고 며느리들끼리 이야기해야 생생하고 흥이 난다. 무엇보다 남편을 아는 사람들에게 욕을 해야 강력한 리엑션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많은 설명을 안 해도 하나를 말해도 열은 알고 끄덕이는 것은 후련함과 위로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주고받는다. 나이와 상황이 조금 다르지 모두 어머니가 낳은 자식들이라 똑같지는 않지만, 어떤 부분에서 행동하는 결은 비슷하므로 열 받는 포인트가 얼추 맞아떨어진다.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어도 시댁에 모임과 행사가 없으면 만날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참 신기하지? 모두 30분 거리 안에 살고 있는데 제사, 설날, 추석, 행사가 없으면 만날 일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시댁 모임 자체가 어머니가 살아계시고, 의무감이 없으면 만남이 성사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관계가 무거운 건지 가벼운 건지 잘 모르겠다.      


20년 넘게 추석과 설날을 겪으면서 음식 만들기에서 좌우명은 ‘속도가 생명’이라고 바뀌었다. 하기 싫고 힘든 상황을 벗어날 힘이 나는 없다. 그래서 속도를 빨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벗어날 방도였다. 최고로 맛있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먹지 못할 정도의 평범한 음식을 추구한다. 하지만 속도는 포기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최고의 속도로 평범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한 요리 철학은 명절 음식에서 일상 음식을 만드는 것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음식은 끼니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댁 모임에서 좌우명은 ‘뒷담화가 최고의 사이다’로 바뀌었다. 남편과 시숙님들은 이상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될수록 며느리들은 단결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노동에는 노래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오랜 전통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추석과 설날 명절의 고된 음식 노동에 뒷담화와 흉보기는 노동요이다. 아무리 재료가 좋아 보여야 양념이 가미되지 않는 음식을 맛있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는 시댁 모임에서 ‘뒷담화 대환장 파티’를 추구한다. 그것이 시댁 가는 맛이다. 

난 그렇게 쪼잔한 사람이다.      

작가의 이전글 시댁환장곡-27화 설 명절의 진정한 피해자를 찾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