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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21. 2023

시댁환장곡 31화 지금 바라는 건, 약간의 여유와 자유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31화 지금 바라는 건, 약간의 여유와 자유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31화 지금 바라는 건, 약간의 여유와 자유


나이 사십보다 오십이란 나이가 더 가까워지면서 시댁에 관한 생각은 또 달라진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결혼했던 20대 중반, 둘째를 낳고 두 아이의 엄마였던 30대 초반, 친정엄마를 잃고 혼자 분투했던 3대 중반에서 40대 중반까지 시댁에 관한 생각과 감정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달라진다.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관계에서는 증명의 이유가 점점 없어진다.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삼각형의 내각 합이 180도라는 것을 모든 삼각형 도형의 문제에서 증명하고 문제를 풀지 않는 것과 같다. 여러 가지 사건 사고로 증명이 되었기 때문에 설명이 생략되고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편해질 수밖에 없다. 포기할 부분을 포기도 하면서, 체념도 하면서, 약간의 허물은 눈 감기도 하면서 이해는 못 하지만 받아들인다. 시간이란 이리도 모진 것인가 보다. 못 볼 것도 못 할 것도 없이 만들어 버리는 신비의 묘약 같기도 하다.     

 

마음은 누그러지고 몸은 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시어머니도 연세가 많아질수록 모든 면에서 약해지셨다. 그리고 암 진단이 그 꺾임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제사와 명절을 놓지 못하셨다. 오히려 더 큰 집착으로 보이는 건 왜일까? 큰 수술을 하시고 그 해는 농사를 쉬시고 그다음 해부터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농사는 어머니에게 생명을 상징하는 어떤 행위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리지 못했다. 건강하고 건재하다는 증명 같아 보였다. 그리고 가족 묘지를 조성했다. 일반적으로 가족묘라고 하면 무덤을 정리해서 화장해서 모아놓는 것을 상상할지 모른다. 아니다. 흩어져 있던 묘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어머니는 시아버지 옆에 자신의 자리까지 마련해 놓으셨다. 넓은 부지로 인해 내가 들어갈 자리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왠지 과거로 역행하는 느낌은 왜일까? 묘역을 형성한 모습을 보면 어머니는 흐뭇하고 뿌듯해하시는 그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고집과 소망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갈 듯 말 듯 하다. 


하지만 해마다 벌초하는 걸 보면서 이것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생각에서 멈춘다. 처음에는 7남매가 건재할 때까지는 어찌어찌 유지될지는 모르지만, 그 이후에는 쉽지 않을 텐데 거창하게 가족 묘역을 만드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어지든 그렇지 않더라도 어머니 소원은 성취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로 했다. 그 이후에 일어나는 것들은 그때가 되어 판단하고 정하면 되는 것이다. 생각한다고 해서 생각대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시대가 다음 세대 아이들 결정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누그러뜨림으로 편해지고 반복으로 인한 익숙함이 생긴다. 하지만 편하고 익숙해졌다고 해서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강한 것이 약해지면 좋을 거 같지만 이상하게 서글퍼지기도 한다. 


약해짐에는 나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권과 결정권이 올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지는 지금 치열한 고민과 타협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한 거 같다. 내가 당했던 억울했던 모든 것은 나만의 추억으로 만들 그릇을 키우고 싶다. 제사의 의미를 생각하고 추석과 명절 가족들과 함께하면서 다가올 50 이후 시댁의 모습은 모든 면에서 달라지길 소망하게 되었다. 그 누구든 불편하지 않고 넘기지 못하는 이물감으로 남지 않기를 말이다. 


시댁에서 지금 바라는 건, 단순히 음식 준비에서 해방되고, 집안일이나 행사에서 제외되어 내 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나를 잃지 않는 관계, 상대의 다름이 인정되는 행사, 무조건 참석하고 함께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열린 관계와 유연한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이 50이 가까울수록 싫다는 자기표현도 쉬워지고, 참석할 여건이 힘들면 너무 미안해하지 않게 되고, 참석하고 싶지 않으면 과감하게 안 가는 배짱이 생기고 있어 참 좋다. 지금 바라는 건, 대단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나이가 허용하는 신체적인 여유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약간의 자유이다. 


아주 소박하지 않은가. 과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허락을 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실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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