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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21. 2023

시댁환장곡 34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34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친정엄마_시어머니)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34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친정엄마_시어머니)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서 쓸쓸함은 기본값이다. 피할 도리가 없는 거 같다. 


며느리들은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결이 다르다. 친정엄마는 의지의 대상이고 시어머니는 의무의 영역이다. 어머니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렇게 다른 두 가지 영역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 신비롭다. 그러고 보면 좋은 감정, 나쁜 감정도 모두 한 끗 차이 아닐까? 감정은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아들과 딸이 있으니, 친정엄마도 시어머니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은 앞으로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삶이 타인의 것이 되지 않고 다가올 확실한 미래로 받아들여진다. 처음 결혼해서는 시댁이란 곳에서도 나는 딸이었고 며느리였다. 


딸과 시누이, 며느리, 형님과 동서 친정엄마, 시어머니라는 참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20년이란 세월이 흐르니 역할이 명확해 보이지만 실은 한 사람이었다. 시간은 나를 딸에서 친정엄마로 며느리에서 시어머니로 탈바꿈시킨다. 딸, 시누이, 며느리,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그 이름들을 거치며 존재하는 나란 존재가 있다. 모두 별개로 각각 양극단에 대립각을 세우며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20년이 걸려버렸다. 이제야 깨달은 어리석음을 한탄해야 할까? 이제라도 알게 되어 축배를 올려야 할까?      


딸이라는 측면에서 친정엄마의 삶은 “무한 보증 A/S 센터”이다. 나는 다 큰 어른이었는데 결혼은 했지만, 아내로서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수시로 와서 살림하는 것을 봐주고, 모를 때마다 언제든지 알려주어야 했다. 일주일 한번은 들여다보며 냉장고에 밑반찬을 채워놓았고 고단한 딸을 위해 잠시라도 쉬게 해주려고 우렁각시처럼 빨래도 해주고, 밀린 다림질을 해줬다. 아이를 어떻게 씻겨야 울지 않는지, 감기 안 걸리게 옷을 갈아입히고 보송보송한 피부를 관리하는 것을 일일이 보여주며 알려주셨다. 기저귀가 불편한지 배가 고픈지 그리고 어디가 불편한지 살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도 맞벌이한다는 이유로 두 아이를 맡겼다. 마음 편하게 일을 하려면 아이들을 사랑으로 책임으로 맡아줄 사람은 친정엄마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편하고, 말하지 않아도 어려움을 헤아리기 때문에 손주를 맡아준다. 손주는 너무 예쁘지만 얼마나 손이 가고 수고스러운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친정엄마는 모든 하소연이 모이는 정류장 같은 곳이다. 안 갈 사람처럼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탈 버스가 오면 후다닥 타고 가버릴 것이 딸들이다. 귀신같이 비빌 언덕을 친정엄마에게 찾아낸다. 정말 미안하고 염치없다고 생각하지만, 부탁을 안 드릴 수 없다. 결혼한 며느리가 된 딸은 믿을 구석은 친정엄마밖에 없다. 지금 생각하면 고맙다 생각하지만 참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부탁은 잠시라고 생각했고 갚을 길은 살면서 두고두고 천천히 갚아나갈 생각이었다. 빚진 것을 다 갚고 사는 인생이 많지 않다는 것을 친정엄마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깨달았다. 딸들은 친정엄마에게 갚지도 못할 빚을 지면서 산다. 친정엄마의 기쁨이자 서글픔이다.     


살면서 시어머니처럼 강하고 굳센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에 90도보다 더 숙이고 농사를 짓는다. 비가 와야 쉬는 날이다. 고추와 마늘, 참깨와 들깨, 고구마, 쌀과 잡곡, 말린 나물 등 생선과 고기만 사 먹고 산다. 철없던 신혼에는 날 것 그대로 올라오는 원재료를 해 먹을 줄 몰랐다. 해 먹을 줄 알게 되었을 때도 너무 많은 양에 감사보다 부담이 컸다. 올려온 재료는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을 들여야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었다. 그래서 숙제처럼 생각했다. 며느리란 자기 힘든 것만 생각하는 종족이다. 힘든 사람은 주변을 들여다볼 여유는 없는 게 당연하기에 바라지 않아도 나이를 먹어도 꾀만 부릴 줄 알지 알아서 더 나서지 않는다.     

 

지금 시어머니는 85세 나이로 농사를 짓고 시골집에 혼자 사신다. 7남매 모두 서울 대도시에 살고 있지만 보고 싶어 올라오셔도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는 것처럼 돌아가면서 자식들은 걱정거리를 안겨준다. 이번에 둘째가 속이 썩이면 다음에는 셋째에게 힘든 일이 생기고 큰아들이 마음을 잡지 못하거나 둘째 아들 사업이 불안하거나 또 누가 아프거나 정말 아무 일 없는 날이 단 하루도 없는 거 같다.

      

평생 농사를 지어서 땅을 놀릴 수도 없어서 뭐라도 심고 움직이면 자식들에게 철마다 이것저것 줄 수 있는 것이 제일 큰 낙으로 산다. 마늘과 고추로 목돈을 만들고 고사리, 고추장, 된장 등으로 소소한 용돈벌이 해서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서 좋다. 돈 들어갈 일에 자식들에게 바라지 않고 척척 쓰면서 산다. 자식들이 어쩌다 주는 용돈 10명도 넘는 손주들 얼굴 볼 때마다 돈 주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 그래도 돈 주는 맛으로 일하고 산다. 조막만 한 것이 하나둘 결혼도 하고, 취업도 해서 봉투에 용돈 담아서 주기라도 하면 ‘오진다.’ 한 마디로 기분이 좋다.    

  

작년에는 힘들어도 못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올해는 정말 힘에 겹다고 생각한다. 몇 년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내년에는 자신이 없다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농사 안 지면 뭐하나 싶은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동네에 동무들이 많았다. 봄철 바쁜 거 지나면 관광버스 전세해서 전국 안 가본 데 없이 다녔는데 부녀회장이라고 농협과 시에서 여행도 많이 보내줬다. 같이 구경하면서 자식들 기념품 하나씩 챙겨오는 맛으로 재미있게 살았는데 지금은 죽거나, 살아도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들어갔거나, 몸 어디가 안 좋아 아들 따라 올라갔다가 소식도 모르고 산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남편과 친구들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추억을 더듬는 것도 기억이 남아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프면 자식이 7남매가 되어도 어느 집도 편하게 이부자리 차지하고 있을 곳이 마땅하지 않다. 생업을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올 아들이 있을까? 시어머니에게 필요를 채워 줄 사람은 며느리인데 내려올 것인가? 


딸이 넷이나 되어도 아프다고 만사 제치고 내려올 딸이 있을까? 제 오빠들에게 전화나 하는 선에서 끝날 것이다. 사위가 나쁘지 않으나 장모 병시중할 사위는 하나 없다. 누워서 그 꼬락서니를 보느니 아들네서 눈치 보며 있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이렇게 농사일하다 아프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평생 농사짓고 살던 노인이 농사 안 짓고 사는 일상은 어떨까?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다가올 현실이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여성적이라면 시어머니는 남성적이다. 친정엄마는 살림이 전부였고, 시어머니는 농사가 전부였다. 친정엄마는 남편과 친정 부모님 그늘에서 남매를 키웠다. 시어머니는 억세고 굴하지 않는 고집으로 7남매를 홀로 키워오셨다. 둘 다 남편과 일찍 사별했지만 살아 온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하지만 자식들이 최우선으로 사신 삶을 사셨다. 사랑의 결은 다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과하게 사랑과 돌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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