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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21. 2023

시댁환장곡 33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33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아들_삼형제)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가장 많이 변한 건 아마 나 자신일지 모른다. 나는 눈물이 많고 감성적인 사람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른 남자는 그냥 무섭다. 그런데 처음 시댁에 인사하러 갔을 때 어머니를 뵙기 전에 두 분의 시숙님들을 먼저 만났다. 그때를 기억하면 지금도 너무 무섭고 덜덜 떨린다. 세상에 그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을 처음 보았다고 생각했다. 시댁 식구들은 모두 덩치가 있고 얼굴이 크면서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그래서 인상이 강해 보인다. 일단 인상에서 80퍼센트 먹고 들어간다고나 할까?     


큰 시숙님은 너무 강한 인상을 받아서 무슨 질문을 해도 제대로 대답 하나 못했던 거 같다. 그리고 인정은 많으나 성정이 불같다. 목소리가 크니 그냥 무섭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리고 둘째 시숙님은 능력도 많고 똑똑하다. 말이 칼처럼 예리하고 상대방의 급소를 정확하게 찾아 찌르기에 항상 상처가 되었다. 둘째 시숙님이 무슨 말만 해도 서러워 울기만 했다. 한 번 쏟아진 눈물은 쉬이 멈추지 않아 고역이었고 수치스러웠지만 내 눈물 수도꼭지는 항상 고장이 났다. 마음 써주는 말 한마디도 매섭다 느껴 서럽게 울기만 했다. 그래서 결혼해서 내 별명은 ‘울보 제수씨’였다. 울지 않은 적이 없었다. 시댁에 가서 울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강한 인상만큼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과 전통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했지만, 실은 이기주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며느리들이 무슨 머슴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댁에 와서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는 분들이다. 형님들도 이겨 먹지 못하는데 개미 새끼 같은 내가 무슨 힘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것들인데 너무 당연하게 그것이 통용되었다. 


시어머니의 조상숭배가 그것을 좌시했고, 어머니의 뜻을 따른다는 시누이도 동조했고, 농도는 덜할지라도 어머니와 형들이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힘들겠지만 대가족이 유지되고 희생이 필요한 노동을 기반인 제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는 도움이 안 된다. 가부장적 사고방식이란 어떤 특별한 내용이 아니다. 불평등이라는 뿌리에서 무수히 많은 희생을 가지치기하는 것이다. 아들들은 집안의 영웅으로 자리 맺음을 하고 수없이 상을 차리게 하는 것으로 권력을 휘두른다. 정말이지 힘들었다. 돌아서면 밥을 하고 차리고 먹고 나서 치우면 또다시 끼니가 돌아오는 이 미칠 것 같은 쳇바퀴는 3일 정도 하고 나면 지쳐 나가떨어진다.     


그런 두 명의 시숙님은 모두 환갑이 넘었다. 전처럼 여성비하 발언을 대놓고 하지는 못한다. ‘여자가 말이야, 며느리는 자고로, 옛말에, 제사를 지내야’ 이런 서두는 집안에 다 큰 딸들이 가만있지 않을뿐더러 나이가 들수록 예전처럼 말했다가는 여기저기서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다만 그 가족일 것이 시어머니와 7남매만 해당하는 것이 불행이라면 불행일까. 결혼하고 10년 동안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려고 진심 노력했다. 지금은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서 아쉽지도 않다. 들어가 있다면 다시 나올 예정이다. 테두리 밖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테두리는 경계를 구분한다. 이제는 그런 경계가 있는 것이 편안하다. 그리고 나에게 올 문은 내가 열어줘야만 열리는 문으로 바꿀 예정이다. 각각의 우주에서 각자가 행복하길 바란다.      


시간이 흘러 유해지고 친절해지고 말도 조심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기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서투르게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속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 알 수도 없고 딱히 알고 싶지 않다. 이젠 타격감이 많이 없어졌다. 아들들이 약해진 건지 며느리들이 맷집이 세진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둘 다 모두 해당할 것이다. 아무튼 고집 센 남편과 가부장적 시숙님들 때문에 나는 웬만해선 남자 어른이 무섭지 않다. 극히 강한 빨간 맛을 보아서인지 웬만한 빨간 맛은 싱겁다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강하게 나올수록 그 이면은 약하기 그지없다고, 목소리가 클수록 켕기는 게 있다고 믿는다. 모두 허세이고 허풍이고 빈속임을 알아버렸는지 모른다. 화투판에서 판이 끝나갈수록 상대의 패가 나가리라는 것을 보지 않고도 안다. 조용히 그냥 끝까지 치면 되는 것이다. 상대는 피박에 광박이다. 흔드는 수밖에 도리가 있나. 질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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