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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22. 2023

시댁환장곡 41화 시댁이 좋아질 20가지 상상들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41화 시댁이 좋아질 20가지 상상들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41화 시댁이 좋아질 20가지 상상들


속으로 욕하는 것은 죄가 안 되는 세상인데 마음껏 상상하는 것은 자유다. 시댁이 좋아질 50가지 상상들이란 제목을 두고 이런 생각을 했다. 굳이 시댁을 좋아질 상상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어떤 것은 상상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시댁의 행복한 상상의 끝은 서글픔 한 수저와 씁쓸함 한 국자이다. 행복한 상상은 현실이 불행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극심한 불행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불편한 일상으로 결론지을 수는 있다.      


그래도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시댁은 나의 현실이고 내가 연기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배우는 할당받은 배역에 충실해야 관객은 공감하고 더 나아가 감동한다. 무수히 반복되는 공연 속에서 배우가 배역에서 새로운 자아를 창조해 내듯이 몰입이 주는 숭고함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시댁이 좋아질 상상들을 시작해 볼까? 그런데 20가지나 필요할까? 무수히 많은 행복한 상상 중에서 몇 개는 아니 한두 개만이라도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경우의 수는 많을수록 좋다. 상상하고 쓰면 실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아직 현재 실현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가시화시킨 것은 맞으니까. 가시화는 현실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할 것이다.     


1.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제사와 추석 때 막히는 데 힘들게 내려오지 말고 알아서 연휴를 보내라고 하시며 전화를 끊었다. 이거 정말 실화냐?  

   

2. 시어머니는 7남매 생일은 잊어도 항상 내 생일을 잊지 않고 챙기신다. 뭘 좋아할지 몰라 돈 20만 원을 계좌로 보냈으니 맛있는 거 사 먹거나 필요한 작은 거라도 사라고 하신다. 올해 시어머니 생신 때 뭐해 드렸더라?     


3. 큰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간단히 안부를 묻고 본론을 꺼내신다. 나는 설날 연휴에 무슨 음식을 하고 어떻게 나눠서 할지 의논하는 전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올 설날은 어머니와 삼 형제 부부 모두 4박 5일 일정으로 제주도에 다녀오자고 하신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큰형님이 항공권을 둘째 형님이 호텔을 예약했으니 미안하지만, 대여 비용만 대면 어떻겠냐는 전화였다. 당연히 콜이죠. 이런 건 일방적으로 정해도 됩니다.     


4. 추석에 삼 형제 가족이 다 모였다. 우리 아이들까지 집집이 합쳐서 6명이다. 아니 이게 웬일이니? 큰조카와 우리 아들은 벌초에, 고추밭에 약주기, 비료 포대 옮기는 것을 척척 한다. 큰 집 조카 2명과 내 딸이 추석 장보기, 시골집 청소하기, 전이나 나물, 갈비를 재고 잡채까지 다 만들었다. 차려진 식탁에 밥을 천천히 먹고 나서 과일과 커피 서비스까지 제공받는다. 아이고야 이래서 자식을 낳는 거구나. 좋구나! 좋다.     


5. 큰 시누 형님네 조카가 이번에 승진했다고 추석에는 힘들게 송편을 빚지 말고 맛있게만 먹으라고 서울 종로 유명한 떡집에서 송편을 한가득 맞춤해서 보냈다. 양이 많아서 올라가는 길에 집집이 싸가도 될 양이다. 

   

6. 큰 시숙님이 새해부터 금연에 성공하셨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하나 없는데 시숙님이 담배를 피워서 힘들었다. 담배는 기호식품이기는 하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는 찌든 담배 냄새가 난다. 그리고 큰 시숙님은 담배를 밖에서 피우고 오는 것이 아니라 베란다에서 피우신다.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냄새가 안으로 다 들어와 힘들었는데 너무 좋다.      


7. 손 하나 까닥하지 않는 둘째 시숙님이 추석 연휴 내내 설거지를 하셨다. 음식은 못 만들지만, 설거지는 할 수 있다고 두 손을 걷으셨다. 굳이 한다는데 말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8. 이번 추석 연휴는 하루만 휴가를 내면 일주일을 쉴 수 있는 황금연휴이다. 며칠 휴가를 더 내서 아예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냉정과 열정 사이 영화의 배경인 이탈리아 두오모 성당 꼭대기에 올랐다. 세상을 다 가진 느낌 어쩔.     


9. 8월에 시아버지 제사에 딸 4명이 모두 내려와 시골집 청소와 제사음식을 다 마련해서 할 일이 없었다. 같이 거들고 제삿날 다음날은 명사십리 해수욕장에 가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물이 맑고 얼마나 시원한지 더운지도 몰랐다.     


10. 전날은 해수욕장에 갔으니, 다음날은 해남 대흥사로 향했다. 소나무 숲속을 걸으니, 맛이 못 느끼는 공기도 상쾌하고 청량한 맛이 났다. 폐를 지나 깊숙이 숲속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 평온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유명한 오리 집에서 오리구이와 탕을 먹었다. 더 건강해진 느낌이다.


11.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대흥사를 이틀 다녀왔더니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아무 곳도 가지 않고 시골집에 머물면서 쉬기로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집에 머물며 영화를 종일 봤다.     


12. 아침 일찍 두견새 소리로 일찍 일어났다. 밥을 안쳐 놓고 반찬은 따로 하지 않는다. 시누들이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가득가득 채워놔서 꺼내서 먹기만 하면 된다. 스트레칭을 하며 마을 산책을 한다. 아기자기한 시골길에 은은한 아침 햇살이 너무 좋다.     


13. 오늘 저녁에는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기로 했다. 삼 형제 부부가 모여서 큰 시숙님이 생닭과 목살과 삼겹살 그리고 껍데기 곱창까지 사 와서 구워 먹는다. 당연히 손질된 상태다. 둘째 시숙님이 선물 들어왔다며 소고기 투플러스 등심을 꺼내 소금 살살 구워서 며느리들 고생 많다며 손수 입으로 배달하신다. 고기가 다 없어질 때까지 굽기 담당이다. 입에서는 너무 맛있는데 배가 불러 더 못 먹는 것이 억울할 따름이다.     


14. 추석날 저녁달이 보름달이지만 슈퍼문이다. 그냥 시골집 대문 밖에 걸려 있는 거 같다. 눈을 감고 달을 보며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다. 달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어두운 시골길에서 선물처럼 반딧불을 만났다. 와! 영화의 한 장면이다.

     

15. 오후 5시경 더위가 가시고 저녁노을이 시작될 때 시골집 근처 저수지로 향한다. 하늘의 노을이 저수지를 물들었다.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고 산에서 오는 바람이 땀을 다 씻어낸다. 작은 하루살이 같은 벌레만 없으면 천국이다.     


16. 8월 시아버지 제사를 핑계로 이번 여름은 전라도권을 싹 도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17. 순천에서 순천만 생태습지를 돌고 정원박람회에서 온갖 꽃을 구경한다. 꽃이 예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번 여행으로 확인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순천에 가면 꼬막 비빔밥을 꼭 먹길.  

   

18. 순천에서 여수로 향했다. 엑스포의 지역답게 활기가 넘친다. 유명하다는 삼겹살 새우 가리비 낙지를 넣은 볶음에 소주 한 잔 마시니 이것이 행복이지 싶다. 그리고 야간에 거북선 유람선을 타고 여수야경을 보면 여름 바다의 정취에 취한다. 장범준의 여수 밤바다가 무한 재생된다.     


19. 신안은 원래 섬이다. 섬과 섬이 연결되는 다리가 생겨 접근성이 좋아졌다. 그래서 이번엔 아는 지인이 소개해 준 코스로 신안 섬 티아고 순례를 떠난다. 이리 아름다워 섬이 우리나라에 있다니.     


20. 광주는 해남 가는 길에 항상 지나가는 곳이었다. 남편이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곳에 온 가족이 가서 오랜 전통의 남편 모교를 산책하고 광주 비엔날레 전시와 5.18 관련 역사관에 들렀다. 마음이 무겁고 무서웠지만 역사는 아프고 쓰라린 것일수록 직면하는 것을 피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진지한 마음으로 임했다.     

올해부터 시댁에 가는 것이 여행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설레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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