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기10-무지개 뜨는 언덕

2021.4.26. 사진일기10-무지개 뜨는 언덕

by 제대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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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지개 뜨는 언덕


매년 음력 3월 18일은 친정어머니의 기일이면서 시어머니 생신이다. 2009년 음력 3월 18일 엄마는 시어머니의 생일날 아침에 돌아가셨다. 그해 시어머니는 본인 생일을 뒷전으로 하고 제일 바쁜 농사철인데도 불구하고 시골에서 올라와 친정엄마의 장례식장에 오셨고 장례가 끝날 때까지 계시다가 이틀을 더 지내고 다시 고향 집으로 내려가셨다. 이렇게 내 인생의 두 어머니는 생(生)과 사(死)로 연결되어 현재의 나와 공존하고 있다. 2021년은 양력으로 친정엄마의 기일은 살아생전의 날로 지내므로 4월 28일이고, 시어머니의 생신은 4월 29일이다. 두 날짜 모두 평일이므로 지난 주말에 친정엄마 추모공원에 다녀왔고 이번 주말에는 시어머니 생신, 어버이날 핑계로 해남에 다녀올 예정이다.


친정엄마의 추모공원은 내가 거주하고 있는 김포 신도시 내 호수 공원 옆에 있는 시립봉안당이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좀 우습긴 하지만 우리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납골당 느낌이 안 들어서였다. 집에서 산책하듯이 호수 공원을 향해 15분 걸으면 도착할 수 있고, 주말마다 남녀노소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외롭지 않아 보여서, 그리고 공원과 함께 봉안당을 시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선택했다. 친정엄마의 봉안당은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이고 시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집은 집에서 자동차로 쉬지 않고 5시간은 가야 하는 땅끝마을이다. 이렇게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두 어머니는 (生)과 사(死) 사의 아득한 거리만큼 공간적으로도 극과 극에 놓여있다.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 ‘죽음’이란 나의 영원한 질문이고 숙제이다. 죽음이란 답을 찾고 그 의미를 풀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의 ‘삶’의 목적도 명확해 지리라 믿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매년 4월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진정한 의미의 추모란 무엇일까?’ 고민한다. 시댁에서의 추모는 ‘제사’이다. 더 설명할 것이 없다. 모두가 제사라고 하면 떠올리는 ‘제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사의 효용성, 정당성을 따지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며느리로서 마땅히 가족의 일원이긴 하지만 집안이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인지 인습인지에 대한 발언권도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정엄마의 기일은 다르다. 오빠와 내가 상의하고 서로가 합의하면 추모의 방식은 모든 형식을 다 취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다. 그러한 자유가 추모라는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남들의 시선에서는 맥락도 없고, 기준도 없고, 더더구나 종교도 전통도 따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해 그해 상황과 여건에 따라 어머니를 추모한다. 그러다 보니 매해 똑같은 형식으로 보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그런 우리 남매를 보고 남편은 대놓고 말은 않지만본인의 사고방식과 그동안의 경험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신경 안 쓰는 편에 속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친정엄마의 죽음으로 전부는 아니지만 하나하나씩 시선에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고 새로운 시도에 도전한다. 형식은 중요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형식만 남겨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만큼 공허한 게 더 있을까 싶다. 그렇다고 시댁의 제사를 폄하하거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굳이 차이를 두자면 친정엄마의 기일은 나에게 의미가 그다지 없다는 것이다. 기일자체가 의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겐 365일이 모두 기일이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그립고, 매 순간 생활하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운명 같은 사랑 믿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냥 ‘사랑’이다.


이번 학기에 시창작 연습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올해 나의 추모 방식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써서 추모공원 사진함에 꽂는 것이다. 부끄럽고 쑥스럽지만 올해 추모방식은 ‘헌시’이다.


무지개 뜨는 언덕

피부에 닿는 바람이 느슨해지면

문턱 가까이 봄이 기다린다.


벚꽃이 흩날리는 어지러진 시절을 지나

나는 무지개 뜨는 언덕으로 간다.


갈라진 틈에서도 일어서는 꽃에서

무시할 수 없는 봄이 왔음을

그리운 생명이 있음을


웅크리고 있던 것들도 저렇게 기지개 펴는데

땅속 보이지 않던 저 아무개도 싹이 되어

땅 위 꽃으로 올라오고 있는데

꽃 피우지 못하는 이유

봄 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생명 없기 때문이다.


누구는 봄을 보며 감탄하고

나는 봄을 보며 탄식한다.


2021.4.25. 김명자 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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