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기-17-2021.5.8. 어버이날 버킷리스트
제목: 어버이날 버킷리스트
태어난 인간이라면 부모가 있다. 그 부모가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존재 부모는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나이 40이 넘어서부터는 생일, 크리스마스, 어버이날, 어린이날 뭐 그런 날들이 시큰둥한 걸 보니 나이를 먹긴 먹은 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예전보다 덜 챙기더라도 크리스마스날 캐롤 안 듣고, 12월 31일 연예 대상 안 보고 그냥 지나가면 아직은 허전하긴 하다.
그래서 오늘의 이야기는 어버이날 관련된 것을 써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군 복무하면서도 전화를 잘 안 하던 아들은 어버이날이라고 먼저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걸어도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건 아닌데도 고맙다. 살가운 딸은 할머니한테 용돈 받았다고 남편과 나에게 커플 운동화를 선물했다. 티격태격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며 툭 건넨다. 나만 나이키 운동화 사달라고 일주일 전 옆구리 찔렀던 것이 딸은 자신이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엄마, 아빠가 출퇴근하면서 신을 수 있는 운동화를 선물했다.
솔직히 부모가 되어 자식이 사주는 음식, 선물, 용돈은 그 어떤 것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부모도 챙길 만큼 다 자랐나라는 생각과 함께 굳이 선물은 아니더라도 색종이로 만든 카네이션꽃 한 송이, 편지 한 장, 심부름 쿠폰이라도 건네면 내가 잘 못 사는 건 아닌 거 같아 기분이 잠시라도 한껏 좋아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번 선물은 딸 처지에서 큰돈을 썼다 싶었다. 내가 딸의 통장 잔액 상황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이 운동화를 사고 나면 돈이 별로 남지 않게 된다. 미안한 마음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딸의 지갑 사정을 걱정해준다. 딸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잘 골랐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서 샀어! 엄마가 엄마 선물에만 올인하라지만 딸로서 내가 어떻게 그래 지금부터 또 공부해야지 뭐. 딸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는 모습을 보며 또 한 명의 딸인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는 제대로 된 어버이날 선물을 해드린 기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전에는 학생이 돈이 어디 있어서, 최대한 엄마에게 손 안 벌리게 효도라고 생각했다. 돈 벌만 하니까 후다닥 결혼해서 살림을 이끌다 보니 부모님에게 드리는 것을 아끼게 되었다. 간신히 어버이날, 추석, 생일 등 명절과 생일 때 선물과 용돈 드리는 것만으로도 벅차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 할 수 있었는데 더 여유가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렇게 빨리 내 곁을 떠날 그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거 같다. 그리고 그건 부모님이 살아계신 분들은 과거의 나처럼 지금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식의 나이가 언제이든 자식은 부모에게 항상 충분히 해주지 못하고 보내드린다. 자식이란 존재가 그리 현명하기가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과 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목록을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고 한다. 중세 시대에 교수형을 집행하거나 자살을 할 때 올가미를 목에 두른 뒤 뒤집어 놓은 양동이(bucket)에 올라간 다음 양동이를 걷어참으로써 목을 맸는데,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잭 니콜슨·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버킷 리스트>가 상영된 후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문득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한번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두 분다 안 계시니 쓸데없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부모의 입장이 되어서 아이들과 함께 실천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
첫째, 환갑, 칠순, 팔순을 꼭 챙겨 드린다. 내가 챙겨 드리지 못해 제일 안타까운 부분이다. 환갑 때는 엄마가 너무 젊어 보였다. 그래서 칠순으로 해도 무방하리란 생각 했는데 칠순을 넘기지 못하셨다. 지금은 조상들이 환갑, 칠순, 팔순을 만들어 놓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거창하게 아니더라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시댁 해남에 모시고 가기. 엄마도 서울에서 태어나 평생을 서울에만 사셔서 나와 비슷하게 시골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으셨다. 결혼 초에는 식구들도 많이 내려가고 시골집이 옛날 흙집이어서 엄마를 모시고 가도 잘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모시고 가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집을 다시 지으셨을 때 솔직히 제일 먼저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도 모시고 와서 같이 농사일도 하고 마당에서 바비큐도 먹으면 좋아하셨을 거로 생각했다. 살아계셨더라면 지난주에 함께 모시고 내려가 두 어머니 어버이날도 함께 해드렸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인생에서 나중이란 정말 없는 거 같다.
셋째, 둘만의 부산 여행과 제주도 여행을 가는 것이다. 결혼 전에 엄마와 단둘이 부산 해운대에 3박 4일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호텔은 아니고 근처 유스호스텔에서 머물다가 왔지만, 너무 좋았다. 지금이라면 부산 해운대 조선호텔에 모시고 가서 뷔페와 카페와 수영장에서 플렉스를 느끼게 해드리고 싶다. 그 외에도 같이 서울의 호텔 하나 잡아서 네일 아트, 영화도 보고 에르메스 가든파티는 못 사주더라도 에트로나 구찌 정도는 12개월 할부로 사줄 수 있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모두 그때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도 내가 놓치고 사는 부분이 있는지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