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기29-어떻게 쓸 것인가2

by 제대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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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떻게 쓸 것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부록)


스승의 반 팔자(p437)

능률적인 독서를 위해서 독서 습관의 형성이 필요하듯이 글쓰기 훈련의 경우에도 글쓰기의 습관화가 필요할 것이다. 반드시 긴 글일 필요가 없다. 프랑스의 앙드레 모로아는 <한 줄도 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없다>는 뜻의 라틴말 격언을 벽에 걸어놓고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읽은 책의 요약이나 소감을 간단히 적어보는 것도 글쓰기 습관 형성에 기여할 것이다. 글쓰기는 마음속의 막연한 느낌이나 헝클어진 생각을 정리하면서 그것을 고정시키고 객관화하는 것이다.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적어보든 것은 정독에도 도움이 되고 자기 생각을 분명히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글쓰기는 또 자신에 대한 환상을 버리게 하고 비교적 균형 잡힌 자기 인식을 갖도록 해준다. 머릿속의 느낌이나 생각이 제법 그럴 듯하게 여겨지더라도 막상 글로 적어놓고 보면 맥 빠지는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글 쓰는 또 일정한 단계를 지나면 글이 스스로 써지게도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주어는 동사나 술어를 갖게 마련이고 따라서 일단 잡아놓은 주어에 걸 맞는 술어가 저절로 굴러오기도 하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이 말하는 영감이라는 것은 과장된 것이고 글쓰기의 실상과는 동떨어진 허구이지만 언어의 성질에 따라 글이 저절로 써진다는 국면과 관련하여 생겨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글쓰기의 막중한 실천적 효용은 좋은 글을 알아보는 감식력을 크게 향상시켜 준다는 점이다. 어떠한 형태의 것이건 글쓰기의 경험은 공들인 글과 뛰어난 글의 미덕을 식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는 만큼 치졸한 글과 산만한 글도 가려준다. 제어되지 못한 혼란에서 나온 아리송한 불명확성과 참으로 깊고 심세한 사고에서 필연적으로 우러나온 어려움을 식별할 수 있게 해준다.


웬만큼 책읽기에 익숙해지면 매력적인 생각이나 표현이 책속에서 눈 앞으로 튀어나올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나 표현은 또 기억에 남게 마련이고 심층 속에 머물러 있던 생각은 그 나름의 변용과정을 거쳐서 언젠가는 의식의 차원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읽은 것이 기억 심층에 남아 있다가 의식 수준에 떠올라와 글로 표현될 때 그것은 인유의 성질을 띠게 마련이다.


글 쓴 주체의 사람됨과 현실적 내면적 경험의 총화를 딛고 글로 씌어지는 것이다. 글쓰기는 연마하고 세련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기술에 속한다. 글쓰기는 사람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글쓰기는 궁극적으로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호소이다. 호소하는 주체의 그릇과 크기와 높이와 깊이와 섬세함이 글을 결정하는 것이다. 높이와 깊이에 대한 지향 없이 사람을 고양시키는 글은 씌어질 수 없다. 좋은 글쓰기의 길은 결국 성숙한 인격으로 가는 길과 다르지 않다.

진정 개성적인 글을 쓰고자 할진대 줏대 있는 주체는 타자의 암시나 유행에서 초연해야 할 것이다. <유행은 죽음의 어머니>라는 시인은 노래했지만 오늘의 유행가는 십 년 후의 흘러간 노래이다. 또 타자의 암시는 믿음직스러운 것이 못 된다. 글은 짤막할수록 좋다던가 재미있게 써야 한다던가 하는 등속의 권유는 묵살하는 것이 좋다. 글쓰기에 관한 한 좋은 글의 작자보다 의지할 만한 스승은 없다. 글을 통해 좋은 스승을 선택하고 그를 따르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다. 부모가 반팔자라고 하지만 스승이야말로 반팔자이다. 좋은 스승을 알아 모시는 것이 나머지 그대의 몫인 것이다.


-위의 글을 읽고 현재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카페가 생각났다. 솔직히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게 되겠어? 강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많은 독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처음부터 참여하기를 망설였다. 대학원 수업과 과제를 따라가기도 버거운데 나의 능력 밖이라 생각했고 나는 아직 글을 쓸 준비가 안 되었다는 변명으로 숨었던 거 같다. 지금은 글을 쓸 준비가 되었냐는 질문에 여전히 대답은 ‘아직’이다. 하지만 일단 써야 함을 느꼈다고나 할까?


적당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공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려면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고 입장해 수건을 받아들고 옷을 다 벗고 들어가야 하는 게 상식이고 맞다. 그게 정 싫다면 집의 작은 욕조에서 목욕을 할 수 밖에 없다. 목욕을 하고 나왔을 때 어떤 것이 제대로 한 목욕처럼 느껴졌을지는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공공목욕탕에 가기’가 버킷리스트 번호 하나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입은 옷, 걸친 악세사리를 내려놓고 그동안 쌓아놓았던 묵은 때를 열심히 벗기고 뜨거운 탕 속에서 잠시나마 느긋하게 쉬는 것은 아닐까? 함께 간 딸아이에게 등도 내놓고 밀어달라고 하고 그리고 기진맥진될 때까지 딸아이의 온몸의 때를 벗겨내는 것처럼 말이다. 정말이지 글도 글이지만 목욕탕 사우나와 뜨거운 욕조가 무지 그리워진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까? 그것을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듯이 어떤 글을 쓰게 될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 무엇을 읽을 것인가? 무엇을 쓸 것인가?를 읽고 또 스스로 대답하면서 좋은 글로 씌여진 한국문학을 반복적으로 계속 읽으면서 새롭게 출판되는 다양한 서적을 속독하는 것을 읽기의 지침으로 삼았다. 그와 함께 일기라는 형식에 빗대어 사진, 영화, 도서, 일상 등과 더불어 글쓰기를 하다보면 진정 쓰고 싶은 것을 발견하리라 믿는다.

시창작연습 14강에 작가와의 인터뷰가 나온다. 질문은 기억이 안나고 대답은 너무 좋아 받아 적어놓았다. 대답이 되지 않을까 싶어 첨부하면 다음과 같다.


"문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 대한 그만큼 큰 위로가 또 있을까 싶어요. "

"스스로에게 가장 진실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학'이고 자신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같아요"

"정말 많은 문예공모전에 고배를 많이 마셨다. 저보다 더하신 분들도 많겠지만 일단 놓지만 않으면 반드시 된다는 것은확실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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