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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Aug 06. 2021

공부일기2_서사학 강의_9장 매체 간 각색, H.포터


공부일기2__서사학 강의_9장 매체 간 각색, H.포터 애벗     


H.포터 애벗의 서사학 강의는 매번 느끼는 거지만 너무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책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특히 9장부터는 분량은 앞의 장들보다 길이는 길지만 내용은 점점 말랑말랑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9장은 매체 간 각색은 똑같은 서사여도 책과 연극과 영화에서 다르게 표현될 수 밖에 없음을 매체가 가지는 특징 즉 제약과 한계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고 보았다. 개인적으로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를 너무 좋아해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어도 꼭 챙겨보는 편이다. 원작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만큼 수많은 연극과 영화로 계속 상영되고 영화화되고 있지만 똑같지가 않은 이유를 9장을 공부하면서 조금이나마 이론적으로 접근하게 된 기회가 되었다. 연극이나 영화는 서사문학에 비해서 심리묘사나 간접화법이 불가하고 방대한 장편들의 모든 내용을 120분이내에 담을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연극과 영화는 서사문학의 검증된 마스터플롯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원작속에 묘사된 배경과 세계관을 이미지화하여 보여줌으로 독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우의 연기와 대화를 통해서 그리고 몽타쥬 기법의 편집기술로 영화매체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지평을 제공했기에 서사를 표현하는 매체로 중요한 위치를 점령했다고 보았다. 각각의 매체의 특성을 정확히 알고 작가가 글을 쓴다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와 서사구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서사학 강의 9장을 읽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정리, 발췌한 것이다.     


9장 매체 간 각색   

  

창조적 파괴로서의 각색     

연극대본을 무대 위에 상연하면 이 둘 사이에는 창조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 변화의 격차가 꽤 크다면, 각색을 통해 한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경계를 넘나들 경우 발생하는 간극은 엄청날 것이다. 이는 불가피한 결과이다. 영화 또는 연극을 가리켜 원작을 조잡하게 ‘번역translation’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평론가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매체 간 각색이 결코 번역이 아니라는 사실(p216)     

일종의 바꿔쓰기라고 할 수 있고 이때 소설은 생소재로 간주된다. 조잡한 영화가 어떤 식으로 뛰어난 소설을 ‘파괴’하는지 밝혀내기란 어렵지 않다. 그리나 이러한 파괴가 불가피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영화 제작자는 기존 저자의 번역자가 아니라 자신의 명의를 내건 새로운 저자가 되는 것이다.

반델로가 쓴 스토리는 스토리텔링의 걸작으로 손꼽히지만, 셰익스피어는 그 작품의 예술적인 형식은 무시한 채 그 안에 서술되어 있는 순수한 사건만을 취했다. 각색자는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침입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을 훔쳐보고 나머지는 버린다.

영화는 문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두 예술의 등장인물과 내용이 상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p217)     


등장인물

우리는 소설의 등장인물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앞서 존재하는 유형들types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무대 또는 스크린 위에서 등장인물의 내면을 보여주는 일은 휠씬 더 힘들다. 우리는 배우의 독백을 통해서 사적인 생각의 연속적인 흐름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연극과 영화의 관객들은 시각과 청각에 압도적으로 지배되기 때문에, 단지 추측에 의해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예술에서의 제약이란 언제나 양면성을 갖고 있다.(p226)     


비유적인 언어

산문서사는 시각적 장면과 청각적 효과가 주는 직접적이면서도 실제적인 활기는 놓칠지 몰라도 비유를 유연성 있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다.

그러나 무대나 스크린이 이러한 재원을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류이다. 서사에 인물들이 있는 한, 인물은 차례로 묘사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대사를 사용하는 서술자가 될 수도 있다. 드라마와 영화는 언어에 맞먹는 효과적인 자원인 시각적 효과를 전략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p228)     

틈은 모든 산문서사에 존재한다. 서술자는 어쩔 수 없이 청중 또는 독자들로 하여금 틈을 메워줄 것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일부 서사학자들은 무대 위의 행위를 서사의 유형에 포함시키지 않고, 그 대신 ‘미메시스’ 또는 ‘사건제시’ 등과 같은 범주에 넣기도 한다.

틈에 대한 영역에서 영화는 극적 서사를 혁신적으로 발전시켰다. 영화는 시계적 시간과 결합되어 있던 미메시스를 독립시키고, 그 대신 산문서사에서 볼 수 있는 서사적 유연성을 부여헀다. 영화예술은 틈을 조정하는 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예이젠시테인은 이러한 기술을 ‘몽타주’라고 불렀다. 프랑스어 ‘몽타주’를 말 그대로 옮기면 ‘조립assembly’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몽타주 기법은 우리의 눈에 연속되는 것으로 보이는 서사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길이의 필름을 조합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사건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기능은 몽타주 기법의 단면에 불과하다. 몽타주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영화는 서사적 움직임을 좀더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으며, 이는 소설가들이 누리는 자유에 필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p231)     


초점화

연극에서는 물론 본다는 환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관객이 보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경험적 실제로, 주로 실제 시간 속에서 공연하는 배우에 의해 구현되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연극에서 초점화는 대개 관객의 시각 중심에 놓여 있으며 고정되어 있다. 다른 매체로 각색하는 과정을 거진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이, 이 경우에도 너무 많은 제약 조건이 오히려 솜씨를 단련시키는 결과를 낳는다.(p236)     


시장의 제약

문화는 모든 서사를 제약한다. 관객들은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한계를 설정하고 자신들의 반응을 통해서 어떤 서사가 반복되고 어떤 것은 폐기되는지를 선별한다. 

영화는 막대한 자본의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유형화된 등장인물에 의존하거나 마스터플롯을 가볍게 손보는 식의 작업이 영화 산업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는 팀에 의해 창작되고 관객들에 의해 테스트를 받기 때문에 대기업에서 만든 영화는 검증된 시장 잠재력을 지닌 등장인물, 배우, 상황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한 ‘하이콘셉트’의 틀로 전락했다.

그러나 영화 내용에 대해 점점 더 큰 문화적 전략을 가하는 시장의 거대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만한 일탈의 시도가 이루어졌다.(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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