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멋진 날

중년 택시 기사님과의 대화

by 채 은


궂은 날씨였다. 약속에 늦게 될 것 같아 급하게 택시를 탔다. 15분 남짓의 거리를 갔는데, 내리면서는 연신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를 수차례 외쳤다.


몇 살이냐고 물어보시기에, ‘대학교 2학년이요.’라고 답하며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지나고 보면 그때가 제일 좋아요.’ 같은 말로 유독 별로였던 하루를 일궈버리거나 ‘대학 어디? 우리 며느리는~‘하고 대화의 포문이 열릴 것이 뻔했다.


그러나 툭 이어진 중년의 한마디에 나는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잠시 잊었다.


“많이 불안하죠? 갑자기 어른하기 힘들잖아요. “


순간 멍하니 대답을 머릿속에서 뒤적이다 멋쩍게 멍청한 답변을 했다.


“아.. 제가 아직 어른인지 잘 모르겠어서요..”


뜸 들이다 들은 대답 치고는 퍽 김이 새는 문장인데도 택시 기사님은 마치 그 기분 잘 안다는 듯 웃으셨다.


“저도 그랬어요. 나는 지금 대학교를 졸업한 아들이 있는데, 걔도 아직 그렇고요. 어렵고 서툰데도 불안함을 견디는 게 어른인가 싶어. “


머릿속의 탁수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문장을 쪼개서 생각해 봤다. 어렵고, 서툰데도, 불안함을 견디는 게, 어른.

부모님도 그랬다. 사회에서 봤던 노련하고 멋진 산 같은 어른들도 다 그랬다. 그들도 견뎌서 살아냈다.


중년은 이어 말했다.


“나는 여태 많은 실패를 하고 적은 성공을 했어요. 그리고 바라고 바랐지만 늘 부족했던 것이 있었고요. 근데 나는 그게 지금 날 여기까지 데려온 것 같아요. 이제 나 스스로 단단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 자, 집으로 가서 이제 한숨 자면서 더 멋진 날을 생각해 봐요. 나중에 멋진 사회인 돼서 또 인사해요. 잘 들어가요.”


실패와 결핍, 불안과 역경은 그에게 원동력이었다. 받아들일 줄 아는 그가 핸들을 거머쥔 두 손은 정말 무엇보다 단단해 보였다. 모처럼 멋진 날이었다.


/


나는 멋진 사회인 되어 또 인사하자는 말씀의 전제조차 아직 이루지 못했고, 더 멋진 날을 생각했던 때는 그렇지 못한 날의 절반도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불안함과 어려움을 만끽하라는 말은 아직 나에게 너무도 어렵고, 좋은 어른들이 주변에 많았음에도 나의 초라함을 내가 견딜 용기가 없으므로 연락도 잘 드리지 못하고 지낸다.


땅으로 쑥 꺼지고 싶은 날들. 아무도 날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훌쩍 날라버리고 싶은 날들.


그 사이에서, 계속 이렇게 몸을 부딪히다 보면 날 어여삐 여겨주시는 때가 있겠거니 요행 아닌 요행을 바라는 날들을 꾸역꾸역 삼켜가며 모처럼 멋진 날을 회상해 글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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