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편이 되어주려면 필요한 마인드셋
주황 조명, 날 덮는 이불, 아직 넣지 못한 겨울옷, 키 작은 꽃나무, 햇빛 받은 덤불, 양지에서 낮잠 자는 길고양이, 왁하고 놀래키는 남동생과 번번이 놀라는 엄마, 이어지는 술래잡기, 간지럽힘에 넘어가는 웃음소리, 잠든 척하기 놀이, 아빠 목마 위에서 맡은 팝콘 냄새, 공항 리무진 안으로 휙휙 지나가는 가로등, 광활한 땅 위로 펼쳐지는 야경.
어떤 글자들의 모임은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선명하고 단란한 시야를 잠시 비춰준다. 정확하게 모를 봄에 봤던 몇 개의 장면과 집에서 실실 웃으면서 봤던 장면들, 설렘에 눈 못 붙이게 하던 별세상의 나열.
이런 사소한 즐거움과 잔상 같은 장면들이 있다면 삶은 흔들릴 수 있지만 적어도 무너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고, 앞으로도 이것이 유일한 숙제일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애정 표현은 일상적인 것을 발굴해 내어 묻은 흙을 씻고서 행복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삶을 살아가며 내가 궁극적으로 간절히 원하지만 어쩌면 영영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시리우스를 마음속에 품고 사는 것은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미미한 즐거움을 포착하고, 살갗에 문대고, 숨 막히게 끌어안아 마음까지 닿도록 만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부신 빛으로 새하얗게 담긴 마지막 장을 제외하곤 필름이 텅 비어있을지도 모른다.
목표는 자주 수단과 혼동되거나 타인의 것이 나의 것이 될 때가 있고, 성취는 강렬하다.
하지만 삶은 연속적인 장편 영화다. 이 영화의 대부분을 다채롭게 채우고 서사를 완성하는 것은 결국엔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면들이다. 현재의 나와 목표 지점의 나는 선 위에서 각각 점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싶다.
무언가 버겁다고 느낄 때쯤 되새긴다. 삶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누구처럼 매우 특출 난 재능으로 인류를 구하고 문명의 발전에 일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혹은 남들을 제치고서 타고난 운으로 일확천금을 얻어 나와 주변 사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앞에 항상 더 좋은 것이 남아있다고 믿자. 이 사람이, 이 조직이, 이 직업이, 이 길이, 이 나라가 아니어도 나는 그런대로 좋고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이다. 이 믿음으로 인해 시리우스는 어쩌면 수시로 바뀔 수 있다.
그리하여 이제 걸어야 하는 길이 늘 걷던 길과 전혀 새롭게 바뀌었다고 해도, 우리는 허무함과 매몰 비용에 압도되지 않고서 설렘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좋은 것이 앞에 있다는 믿음으로.